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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민족주의, 민주주의, 세계화, 연대관]아시아의 개념, 아시아의 민족주의, 아시아의 민주주의, 아시아의 세계화, 아시아의 연대관, 아시아의 독도영유권, 아시아의 인권, 아시아의 주권, 아시아 관련 제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아시아의 개념

Ⅲ. 아시아의 민족주의

Ⅳ. 아시아의 민주주의

Ⅴ. 아시아의 세계화

Ⅵ. 아시아의 연대관
1. 동아경륜의 지사들
2. 내촌감삼의 의전론
1) 명치아시아관
2) 청일전쟁의 의의
3. 자유민권파의 아시아관
1) 문명의 논리 채용
2) 식목지성, 궁기도천, 길야작조, 준정등길(대동합방론), 판원퇴개
4. 문명론과 아시아관의 모순 해결방법
1) 세계정부론으로 승화하는 방향
2) 아시아 연대를 잘라버리는 방향
3) 문명의 논리를 잘라버리는 방향
5. 복택유길의 「탈아론」
6. 강창천심의 『동양의 이상』

Ⅶ. 아시아의 독도영유권

Ⅷ. 아시아의 인권

Ⅸ. 아시아의 주권

Ⅹ.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본문내용

그 근거는 인권이 약자와 소수를 강자와 다수로부터 보호하듯이 주권은 약소국을 강력한 패권적 국가의 횡포로부터 보호해준다는 것이다. 요컨대, 인권과 주권 모두 현실적으로 균등하지 않은 힘을 규범적으로 균등하게 재분배하는 원칙인 것이다(Tatsuo 1999, 30-33). 그러므로 국내 문제에 있어서 약자와 소수를 보호하는 인권을 묵살하고 국제적으로 자국의 주권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임에 틀림없다.
Ⅹ. 결론 및 제언
중앙아시아가 포함된 구소련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한반도로부터 이주한 이민의 역사가 가장 오래인 사람들이면서도 가장 심한 수난과 충격을 감수한 사람들이고 아직도 시련이 끝나지 않은 말하자면 가장 긴 시련 속에 있는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겠다.
재소한인들은 한국이 가장 살기 어려웠던 시기에 러시아의 연해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민의 이론으로 말하면 한국으로부터의 축출력이 러시아의 흡인력보다 강한 조건에서 한반도를 떠났다. 따라서 러시아의 연해주라 하여 경제적으로는 한반도보다 유리한 곳이었으나 그만한 심리적인 대가를 치러야 했던 곳으로 이주하였다.
한국의 초기 유이민사는 농업이민과 망명이민을 특성으로 한다. 살기 어려워 한반도를 떠난 사람이 농업이민이라면 기우는 나라를 되살리기 위하여 한반도를 떠난 사람이 망명이민이다. 초기에는 농업이민이 주류를 이루고 망명이민이 후에 따르지만 국권을 상실한 후에는 농업이민도 망명이민과 같은 우국지사가 된다.
국권을 상실하였던 시기 불라디보스톡의 신한촌이 해외 항일운동의 중심지라 하지만 그곳에서의 의병활동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러시아의 연해주나 중국의 북간도가 의병활동의 무대였으나 연해주는 북간도보다 불리한 곳이었다. 그것은 러일전쟁에 패배한 러시아가 전승국인 일본의 요구를 듣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국이 러시아의 원동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시베리아전쟁 시기 한인은 러시아를 위하여 러시아인 보다 더 강하게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일본을 물리친 여세로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일본을 몰아내는데 협력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인의 기대와는 달리 시베리아전쟁은 오로지 러시아를 위한 전쟁이 되고 한인의 희생은 아무 갑도 없는 것이 되었다.
1937년의 강제이주는 한인들이 피땀을 흘려 이룩한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무효로 만든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한인들의 항일투쟁과 소비에트를 위한 노력이 적성민족이라는 누명 하에 아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한인들은 적성민족으로 국어를 빼앗겼으며 거주지 공화국 이외의 지역을 갈 수 있는 여행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전시에 군인으로 참가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민족으로 취급된다.
이러한 모독적이고 불리한 조건을 조성하여 준 러시아를 한인들은 주어진 조건으로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한인들은 이것을 토대로 자기의 삶을 설계하였고 자기의 정체성을 유지하여 왔다. 무엇보다 그러한 악조건을 한인들은 성실로서 극복하여 전 소련에서 모범적인 소수민족이 된 것이다.
이러한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에게 제3의 시련이 도래한다. 여태껏 열등시한 중앙아시아의 민족이 하루아침에 지배민족으로 군림하여 이제 이들에게 복종하여야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중앙아시아의 환경변화는 1937년 강제이주를 당한 시기보다 감수하기 어려운 심리적 전환기 내지 시련기라 생각된다. 새로운 조건을 감수하고 다시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삶과 새로운 의식을 구축하여야 하느냐 이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신천지를 개척할 것이나 하는 갈등은 스탈린에 의하여 선택의 여지없이 숙명적으로 주어지던 조건과 환경과는 너무 다른 따라서 너무나 고통스러운 조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에게 더욱 힘들고 어려운 의식의 고통은 한국에 관한 조국관이다. 구소련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여태껏 북한을 조국이라 생각하여 왔다. 소련은 북한을 건설하는 주역을 담당하였으며 특히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은 해방된 북한에 각종 고문관으로 파견되어 실제 북한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당지도부, 군부, 언론계, 학계 등 모든 분야에서 산파역을 수행하였다. 비록 이들 소련파가 북한에서 숙청을 당하였으나 그들의 공로는 지대한 것이었다.
88 서울 올림픽으로 한국과 소련이 수교하기 전까지 소련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인식하는 남한은 북한을 통하여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남한은 가난하고 불쌍한 나라였고 북한은 소련에 의지하는 불쌍한 나라였다. 말하자면 두 조국 모두가 가련하고 불쌍하여 조국이라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운 나라들이었다. 그러나 가깝기로 말하자면 북한이 가까운 나라였고 남한은 적대국 이였다.
88 올림픽을 계기로 새로이 인식된 한국은 과거 선전에 의하여 들은 것과는 너무나 다른 나라였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소련 전역에서는 고려인협회가 조직되고 한국을 가까이 하려는 열기와 한글을 배우자는 열기가 급등하였다. 그러나 여태껏 친교를 맺어온 북한을 하루아침에 거부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은 조국이 둘이 있으면서도 갈 곳이 없는 민족이라 생각하고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를 한국사람도 아니고 조선사람도 아닌 고려사람이라 정체화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소련시대를 경험하고 구소련의 와해에서 중앙아시아 각국의 독립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기의 운명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하여야 하며 조국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조국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이 고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조성하는 힘든 과정에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범묵, 인권의 보편성과 상대성에 관한 연구 : 동아시아 인권담론을 중심으로, 한국교원대학교, 2011
김연규, 세계화, 지역화, 그리고 동아시아,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2004
이창헌, 아시아 민족주의에 대한 고찰, 조선대학교 통일문제연구소, 1982
조희연 외 1명, 아시아의 민주주의 투쟁들과 \'과정으로서의 시민혁명\', 5.18기념재단, 2010
최희식, 한일회담에서의 독도 영유권 문제, 세종연구소, 2009
Chee Soon Juan 외 1명, 아시아의 민주주의 : 지나온 자취화 향후 여정, 아태평화재단,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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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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