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경제개혁, 한국산업, 금융시스템, 버블경제, 노동시장]1990년대의 경제개혁, 1990년대의 한국산업, 1990년대의 금융시스템, 1990년대의 버블경제, 1990년대의 노동시장, 1990년대의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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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90년대, 경제개혁, 한국산업, 금융시스템, 버블경제, 노동시장]1990년대의 경제개혁, 1990년대의 한국산업, 1990년대의 금융시스템, 1990년대의 버블경제, 1990년대의 노동시장, 1990년대의 노동조합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1990년대의 경제개혁

Ⅱ. 1990년대의 한국산업

Ⅲ. 1990년대의 금융시스템

Ⅳ. 1990년대의 버블경제

Ⅴ. 1990년대의 노동시장

Ⅵ. 1990년대의 노동조합

참고문헌

본문내용

력을 높이기 위해 임금연동제를 최종적으로 폐지하고 공공지출을 장기적으로 축소하는데 집중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당시 재개된 삼자협상에 대해서 도 CGIL내 비판세력인 \'에쎄레 신다카토(Essere sindacato)\'와 그 창설자인 베르티노띠(Fausto Bertinotti)6)가 \"비민주적 정치제도와 온건한 사회관계를 유지하려는 지배계층은 보 수적 개혁(controriforma)을 통해 대중을 수동화하고 임금노동자들을 \'정치적 실어증(afasia politica)\'에 걸리게 하고자 한다.\"고 제기한 비판은 적절했다(Bertinotti, 8쪽). 베르티노티에 의 하면 91년 6월 협약으로 노조는 \"상담역할로 격하되고 현실과 유리\"되는 오류를 범했다고 한다.
92년 임금연동제의 완전 폐지에 관한 삼자협상에서 이루어진 세 노조의 동의는 그러한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이 협약 체결은 곧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급격한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서 80년대의 약화된 정치적 역량을 미처 회복하지 못한 채 90년대 초반 과도정부의 공세에 수동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현실과 유리\"된 결과였다. 당시 트렌틴(Trentin)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고통\"(L\'Unit?/i>, 1992.11.5)의 시기였다고 탄식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노조 내 비판세력을 중심으로 한 자발적 투쟁은 소생하고 있었고, 이는 92년 가을 의 재정법 반대 투쟁과 94년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연금관련법 무효화 투쟁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세 노조 또한 80년대의 약화가 정치적 협약이 재개된 90년대 초반에까지 이어지 는 가운데 자성의 소리를 높여 갔다. 특히 CGIL의 경우는 89년 공산당의 당명개정과 92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 가입으로 이어지는 노선변화 논쟁의 상황에서, 88년 피찌나토 (Antonio Pizzinato)를 승계한 트렌틴에 의해 조직 내 분열을 종식시키고 나아가 노조의 통일을 이룩하여 사회개혁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었다. 곧 91년 트렌틴은 CGIL 내 다수파인 공산계 모임을 해체하고 조직 내 논쟁을 정당정치적 정파가 아니라 강령노선에 따른 정파로 재편하고자 했다. 그러나 때는 아직 트렌틴 자신의 탄식처럼 \"고통\"의 시기였고, 이듬해 11월에는 정파해소에 실패했음을 자인해야만 했다(La Repubblica, 1992.11.18).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와 \"고통\"도 정치적 노조운동과 통일운동이 재생하기 위한 탄생의 진통이었다. 곧 노조통일운동의 급진전은 93년 \'제1공화국\' 몰락과 \'제2공화국\' 성립의 기점 에서 새로운 사회질서의 창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93년 1월 19일과 20일 양일간 CGIL 운영위원회는 고용과 생산체계의 유지 및 국가 재정문제를 투쟁의 주요사안으로 설정하는데 합의하고 정부와의 회담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Lauzi, 210쪽). CISL 지도부도 1월 21일과 23일 회의를 통해 새 정부의 선택을 조건지을 수 있는 거대하고 강력한 통일노조를 건설해야 한다고 입장을 정리했고, UIL도 통일의 원칙과 새로운 질서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같은 책).
중도-우파 정부 성립 후 세 노조는 정부와의 직접 대결을 통해 선거국면의 분열을 극복하 고 -- 94년 선거에서 세 노조는 다시금 정당정치적 정파성에 따라 분열되었고, 조합원들 중 적지 않은 부분이 베를루스코니의 선동정치에 휩쓸려갔었다 -- 이미 재생하기 시작한 통일운동과 정치사회적 역량을 급속도로 확대해 나갔다. 94년 5월, 연령 원칙(senioity pensions: 일정한 연령이 되면 연금을 받는 것)을 분담금 원칙(35년 동안 분담금을 내면 언 제 든지 은퇴하고 연금을 수령)으로 변경하고자 한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연금법 개정 시도에서 촉발된 이른바 \'제2공화국\' 출발 정국의 긴장은 노조운동의 승리로 돌아갔다. 세 노조간뿐만 아니라, 노조내부의 비판그룹들까지 일치된 행동을 보였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반응도 유도해 내었다. 결국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사용자단체조차도 정부의 강경한 태도를 반기지 않은 가운데, 북부동맹이 연정을 탈퇴하는 내부 분열을 직접적인 계기로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물러나게 되었다.
이탈리아 노조운동의 베를루스코니 정부에 대한 이러한 성공적 투쟁은 직접적으로는 노조의 동의 없이 사회보장과 관련된 공공지출을 변경할 수 없음을 확인함과 동시에, 전체적으로는 노조운동이 다시금 70년대의 정치적 역량을 회복하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었다. 또한 노조간뿐만 아니라 노조내부의 이견그룹들간에도 일치단결하여 전개된 투쟁은 직접적으로 노조통일운동을 가시화했고, 전체적으로는 정당정치적 정파성을 극복하는 계기도 마련했다.7)
특히 중도-좌파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치무대에서의 정파간 대립이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해소되면서 통일의 기운은 무르익어가고 있다. 96년 7월 2일-5일간 열린 CGIL 13차 전국대의원대회는 12차 대회에서의 통합기구 발족 제안을 재차 확인하고 자율, 민주, 다원주의에 입각한 통일노조 건설의 의사를 분명히 하여 이를 새 강령에 성문화했다(Documento congressuale, 54-57쪽; Il nuovo Programma fondamentale della Cgil, 31-32쪽). CISL 또한 97년 5월 21일-24일간 열린 13차 전국대의원대회를 통해 CGIL의 제안을 수용하고, 모든 노동자들 을 위한 대표체로서의 통일노조가 가질 위상과 단체협상 기능을 강조하였다(NRS, 1997.5.27, 1쪽과 1997.6.3, 1쪽).
참고문헌
김신행(2003), 버블경제의 성장, 서울대학교경제연구소
송홍선(2005), 금융그룹화 현상과 금융시스템 안정성, 한국경제발전학회
윤희숙(2012),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 구조변화가 빈곤구조에 미친 영향과 정책적 함의, 한국개발연구원
이병기(1990), 1990년대의 산업발전 전망, 한국산업은행
이정현(2007), 1990년대 후반 기업복지에 대한 노동조합의 영향, 한국인사·조직학회
허재준(1997), 1990년대의 노동시장 변화와 노동시장정책과제, 한국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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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01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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