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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철학의 정의, 철학 방법, 철학 기본영역, 철학과 교육철학, 철학과 체육철학, 철학과 통치철학, 철학과 고객중심 관리철학, 철학과 헤겔철학, 철학과 예술철학, 철학과 일원철학, 철학과 송명철학, 철학과 불교철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철학의 정의

Ⅲ. 철학의 방법

Ⅳ. 철학의 기본영역
1. 형이상학(Metaphysics)
2. 존재론(Ontology)
3. 우주론(Cosmology)
4. 인식론(Epistemology)
5. 가치론(Axiology)
6. 윤리학(Ethics)
7. 미학(Aesthetics)
8. 정치학(Politics)

Ⅴ. 철학과 교육철학
1. 교육관으로서의 교육철학
2. 철학적 이론 내지 지식으로서의 교육철학
3. 철학적 탐구방법으로서의 교육철학
1) 분석적 기능
2) 평가적 기능
3) 사변적 기능

Ⅵ. 철학과 체육철학

Ⅶ. 철학과 통치철학

Ⅷ. 철학과 고객중심 관리철학

Ⅸ. 철학과 헤겔철학

Ⅹ. 철학과 예술철학

Ⅺ. 철학과 일원철학

Ⅻ. 철학과 송명철학
1. 역사적 배경
2. 학문적 배경
3. 정치적, 종교적 배경

ⅩⅢ. 철학과 불교철학

ⅩⅣ.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현재는 영원성의 단자(單子, monad)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된다. 막힘이 없이 다방향으로 열려져 있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 시간이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홈그라운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역사가 수직적이지 수평적이 아니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에서 하는 말이다. 단 한 번의 깨달음으로 과거와 미래가 돌파될 수 있다면, 영원과 초월이 단숨에 현재 안에서 획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시타니에 따르면, 이런 불교의 역사관에서는 종전의 직선적인 사관이 가지고 있는 약점으로서의 목적론적인 사관이 극복된다. 이 역사관에서는 절대자로서의 신(God)이 없기에 신의 의지에 의해서 역사가 좌우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향할 목표가 신에 의해서 미리 디자인되고 예정되었다는 기독교의 역사관과는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결단은 언제나 역사의 드라마를 엮어 가는 데 있어서 자유로울 수 있고 따라서 창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불교의 역사관은 다른 한편으로 순환사관이 가지고 있는 역사 결정론과 허무주의도 극복한다고 니시타니는 주장한다. 현재의 실존적인 결단이 영원을 획득하게 만든다면 역사는 이미 과거의 힘에 의해서 결정된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되며, 따라서 결정론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불교의 역사관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더 이상 길게 토론할 지면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단지 필자는 이 자리에서 화이트헤드의 역사철학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불교철학의 특징을 비교해 보기로 하자.
우선 불교의 역사관과 시간관은 매우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화이트헤디안과 같은 과학도의 입장에서 보면 철저히 제한된 언명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불교적 시간관이 허락하는 입장은 지극히 종교적인 언명이기에 이를 액면 그대로 과학에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큰 제한점은 불교의 시간관은 인과율을 부정하게 된다는 데 있다. 불교의 사사무애의 시간관이 어떻게 해서 인과율을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가를 보자.
사사무애의 차원에서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모두 막힘 없이 원융회통한다는 말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현재의 사건과 과거의 사건은 물론, 미래의 사건마저도 과거 및 현재의 사건과 막힘 없이 통한다는 말이 된다. 이런 식이 아니면 사사무애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즉 현재가 과거와 막힘 없이 융통한다는 말은 엄밀히 말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를 들어 과거의 유전인자는 현재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정신과 신체에 그대로 내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는 과거의 내적인 영향 하에 있으며, 과거는 현재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있다. 현재가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체의 특성과 정신이 가지고 있는 성격은 30분 후나 1년 후에도 약간의 변화는 있을지 몰라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에서 현재의 방향, 그리고 현재에서 미래의 방향으로의 시간의 이동과 거기에 근거한 인과율의 법칙을 말하는 데에는 불교의 사사무애 시간관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을 생각해 보자. 이미 우리가 보았듯이 사사무애의 다중적 시간관은 막힘없이 모든 방향의 사건들이 서로 상즉상입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미래도 현재에 막힘없이 들어온다는 뜻이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불교의 시간관에서는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과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이 똑같다고 할 수 있다.
ⅩⅣ. 결론
철학이라는 말은 사실에 있어 서양철학을 동양에서 수입하면서 ‘필라소피(Philosophy; Philosophie; φιλοσοια)’라는 말을 번역한 말이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대학의 철학과의 교과과정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대학의 철학교과 과정의 3/4 이상이 서양철학 교과이다. 그런데 서양철학이 한국에 수입되어 전국의 대학에 철학과가 생겨 본격적으로 왕성한 학문활동이 있어온 이후로 근 20년이 지나고, 한국의 신채호가 우리 정체성의 존망의 위기를 지적(『조선상고사』)한 이후로 75년이 지나고 현재에 서양철학을 전공한 많은 학자들이 ‘이땅에서 철학하기’를 시도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우리의 철학을 하려고, 다시 말해 원효가 그랬듯이, 그리고 퇴계가 그랬듯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건네는 존재의 부름에 응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우리는 서양철학의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과학기술문명의 지배하에 있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조선 말기 이후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대화 즉 서양철학에 뿌리를 둔 사회문화와 과학기술을 도입하는 동안 우리의 정체성을 상실해왔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서구 문화권에서는 전지구적으로 대동소이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채호는 이와 같은 위기를 75년 전에 이미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늘 이후는 서구(西歐)의 문화와 북구(北歐)의 사상이 세계사의 중심이 되었는데, 우리 조선은 그 문화사상의 노예가 되어 소멸하고 말 것인가, 또는 그를 잘 씹고[저작(詛嚼)하여] 소화하여 새 문화를 건설할 것인가”
그런데 하이데거는 「철학의 종말과 사유의 과제/Das Ende der Philosophie und die Aufgabe des Denkens」에서 철학의 종말을 선언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의 철학은 유럽적 사유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해되는 철학으로서 그러한 유럽적 철학의 종말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적 방법론에,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철학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 김정한(1992), 교육철학, 서울 박영사
- 김정효(2009), 체육철학 : 체육원리와 체육철학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탐구, 한국체육철학회
- 김일환(1984), 송명철학에 있어서의 이에 관한 연구:주자와 왕양명의 사상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 서경전(1998), 소태산의 일원철학(少太山의 一圓哲學), 한국원불교학회
- 이인범(2010), 조요한 예술철학 연구 시론, 한국미학예술학회
- 조선신보(2008), 우리정부의 통치철학 재정립 촉구,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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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14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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