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예술] 삐에르 부르디외(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저서 <구별짓기> 상권(새물결, 2005)의 “1부 취향에 대한 사회적 비판” 요약 및 비판적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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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취미와 예술] 삐에르 부르디외(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저서 <구별짓기> 상권(새물결, 2005)의 “1부 취향에 대한 사회적 비판” 요약 및 비판적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1부 취향에 대한 사회적 비판
  1) 취향과 아비투스
  2) 아비투스는 어디에서 형성되는가?
  3) 아비투스와 계급(계층)구조
 2. 서 평

Ⅲ.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로 종속되고 타율화되었다. 즉, 어느 계급이나 인간의 자율성, 능동성을 잃어버렸다. 이것이 결국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와 귀결된다. 여기서 부르디외는 자본주의의 문제라는 거시적인 접근보다는 주요 요인 중의 하나인 인간의 타율성에 대한 근거로 사회계급에 대한 각기 다른 입장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취향에 대한 객관화된 이론적 고찰을 위해 사회계급에 대한 아비투스를 분석한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부르디외가 ‘구별짓기’에서 다루고 있는 사회학적 분석 내용은 취향과 사회계급에 대한 것이다. 그는 취향이란 선척적인 이데올로기, 본성화, 조기교육과 학교교육을 통한 무의식적 학습의 결과로 사회계급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감각취향이라고 규정했다.
문화적인 생활에서 계급을 나누는 것은 그들에게 자신의 신분의 우월감과 동시에 사회적 안정망을 추구한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도 언급하다시피 상류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운동의 종류에서 항상 타자와 분류하려 했다. 특히 골프, 테니스, 승마, 요트 등은 그것이 정말 수준이 있다는 사실보다는 그것을 즐기려 하는 것에서는 막대한 경제적 지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현대사회의 인간은 자신들이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기 위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를 즉 자신의 상품적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소비를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자본주의와 밀접한 것이라고 본다. 자본의 구조와 그리고 자본의 구조만이 아닌 고상함과 신성성이 서로 겹쳐있기 때문이다. 가령 사회의 존경받는 그룹에선 반드시 돈으로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관료적, 혹은 학문적 영역도 존재한다. 그 중 교수를 보자. 교수들은 비싼 음식과 운동을 하지 않는다. 특히나 문학, 철학, 인문계통 교수들은 산책이나 등산을 좋아하고, 거기서 사람들과 대화하기도 좋아한다. 상류계층이라면 상류계층이나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적 영역이고, 문화생활을 중시한다.
문화생활이라면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것이 문화생활일 수 있다. 작은 월급으로 음식재료에 많은 지출을 하는 농민이나 공업노동자들의 생활 역시 음식문화, 소비문화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식사하면서 대화하고, 가족들과 즐기는 것 역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문화라고 인식하기보다는 문화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생존의 필요성이다. 유명한 옛 단어처럼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사는가? 식도락과 생존의 영역에서 우리는 어떻게 문화적일까? 라고 판단해볼 수 있다.
경제적 부분에서 학력의 상승과 동시에 일자리의 부족과 임금문제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본력이 중시된다. 이 책에서 아버지가 자영업, 공업노동자, 농민, 교수, 관료이면 그 후손들도 높은 확률로 이어졌다. 결국 문화자본, 경제자본, 학력자본 등은 인간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기 보다는 계급 재생산이라는 의미심장한 현상들을 만든다.
비정규직이 그대로 비정규직으로 가는 것은 불가피한 처사이고, 일부 소수자만 상위로 올라간다. 특히 스펙 관리는 구별 짓기를 효과적으로 몰아붙인다. 경제적 자본이 학력자본과 문화자본까지 말이다. 하지만 경제적 자본력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 그것에 비례하는 다른 영역에서 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취미와 취향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급예술이나 운동을 배우거나 높은 교육조건을 갖추는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 사람보다 우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가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고로서 그들을 조롱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것 역시 남발할 수 없는 입장에 놓였다. 그렇게 조롱하는 사람들 역시 고상한 취미와 취향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아비투스가 가진 고정관념에서 본다면 문화자본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계급에서의 능동적인 순수취향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취향의 고정관념에 대한 반발, 타율성에 대한 의식적 거리두기, 미학이나 관심사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계발이라는 접근으로 생각해보면 순수취향은 누구에게나 교양화 된 쾌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순수취향을 지속적으로 계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자본주의에서도 인간의 자율성과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힘은 이데올로기나 권력이 아닌 개인의 능동적 의지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바로 '돈'으로 보았다. 자본, 다시 말하면 계급이다. 역사적으로 자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잉여 생산물의 등장과 함께 사유재산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빈부의 격차와 자본가-노동자 계급이 나뉘게 되었다. 재산이 상속됨에 따라서는 계급적 지위 역시 세습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특히 아비투스 관점에서 계급의 구분은 권력(힘)보다 자본이 앞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본이 계급을 만들고 문화적인 개인의 취향을 결정한다는 것이 놀라운 사회화 이론의 발견인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분명, 과거처럼 자본이나 교육의 잣대만으로 아비투스를 설명할 수는 없다. 가상의 문화, 혼재된 문화의 사회 속에서 우리의 후세들은 보다 파편적이거나 하이브리드적인 아비투스를 지닐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으로도 취향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지고 행동양식은 보다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의 혼돈과 모순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적절하고 유효한 개념인 아비투스를 제대로 파악하되, 이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롭게 인식하고 적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고상한 취향을 지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천박한 취향을 지고 인생을 불행하게 살 것인가는 자신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천박한 취향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결코 그 사람이 불행하지 않으며, 고상한 취향을 지고 있다고 해서 결코 그 사람이 행복하다고 애기할 수 없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피에르 부르디외 / 구별짓기 (상권) / 새물결
- 양은경 저 / 문화와 계급 / 동문선
- 홍성민 저 / 취향의 정치학(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읽기와 쓰기) / 현암사
  • 가격2,3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3.09.02
  • 저작시기2012.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47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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