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상생철학시대의 종교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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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포스트모더니즘과 상생철학시대의 종교이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배경
-211세기,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독교적 비판과 수용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독교에 대한 영향
참고도서

본문내용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으며 신학은 그렇게 불순하지도 주관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과학과 신학은 모두 어떤 종류의 “데이터”를 해석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한 은유와 이론을 양산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어디에서 은유와 이론이 끝나고 “사실”이 시작되는지 항상 명쾌하지 않다. 우주와 신이 항상 인간의 마음이 담기에는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과학과 종교에서의 우리의 생각 또한 항상 수정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과학과 종교는 우리가 비판적 실재론이라고 부르는 것의 규칙을 따라 진행하기로 동의할 때에만 의미있는 접촉을 할수 있다. 그러므로 과학과 종교 사이의진정한 “접촉”의 기초를 제공하는 것은 실재에 대한 비판적 개방성의 공유인 것이다. 과학과 종교 상생의 길을가다. 존호트 지음 구자현 역 ,코기토 출판사 p10-34
과학은 인간의 육체를 부요하게 했을지 모르지만 인간 정신의 공허를 확장시켰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힘 중 대표적인 이 둘의 보조화가 우리의 문명을 잡식하고 있다는 말이 그리 과장은 아닐 듯하다. 인간의 물질생활은 그 이전과 비교할 수도없이 풍요로워졌지만 인간의 정신생활은 더 피폐해졌다. 이것은 자연히 20세기말 과학에 대한 반성과 종교의 새로운 약진을 유발했다. 하디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과학과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정리된 생각을 갖지 못함에 따라 많은 혼돈을 겪고 있다. 과학과 종교 상생의 길을가다. 존호트 지음 구자현 역 ,코기토 출판사 p306
해방과 초월로서의 종교 -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님 안에 쉴 때까지 편안함이 없나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자신의 삶의 여정 가운데서 느꼈던 끊임없는 불안감을 표현한 것이다. 불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불안은 인간의 지적·도덕적 불완전성에서 비롯되고 궁극적으로는 죽을 수밖에 없은 인간의 운명에 기인한다. 아마 불안이 인간의 참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불안을 떨쳐 버리기 위해 무엇인가 일을 기획하고 거기에 매달린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다 쓸데없는 정열일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산다고 해서 반드시 그대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쌓아 온 것을 미화하고 이를 고수하고자 한다. 반면에 젊은이들은 이를 비판하고 무너뜨리고자 한다. 어쩌면 역사는 쌓고 또 쌓은 것을 무너뜨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는 인간 생활에 이상을 가져다줌으로써 인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인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종교만은 아니다. 과학·기술·발명·발견·정치·경제도 모두 다인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종교는 인간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종교에 비하면 다른 영역의 문제 해결 방식은 상대적이다.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돈이 인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인간이 죽음 앞에 설 경우, 어떠한 막대한 부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 이상은 상대적 가치밖에 지니지 못한다. 의학은 질병을 치료한다. 하지만 의학은 인간의 건강 문제만 담당할 뿐, 한계가 있다. 이와 같은 많은 해결책들은 상대적이면서도 한계성을 갖고 있다.
종교는 인간 문제라는 과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 “궁극적”이란 인간 생활에 비추어 볼 때, 한량없이 넓고 깊게 인생을 꿰뚫어보는 위치에 서는 일을 뜻한다. 대체로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관점에 서서 인생을 보는 일을 뜻한다. 이것이 종교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인간 생활의 궁극적 의미다. 단적으로 궁극정이란 무한 우위를 뜻한다. 이 말은 종교가 갖는 문제 처리 능력이 문제의 어려움 여하에 관계없이 언제나 그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뜻이다.
인간 생활의 궁극적 의미를 명확하게 밝혀 인감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종교적 활동은 현실적인 종교적 집단들 안에 나타난다. 종교 집단은 제각기 독자적인 구상에 따라 조직적인 체계를 세우고 그것을 처리하는 구체적 방법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 종굘ㄹ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방법의 유효성을 믿고 있다. 또 그 방법으로 목적이 달성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으므로 그 종교 집단에 속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특정 종교 집단이 성립하려면 신자들이 그 특정 종교가 갖고 있는 종교적 구상의 유효성을 확신해야 한다. 그러한 확신 없이는 특정 종교의 종교적 생활의 무의미하게 된다. 그렇지만 종교 집단이 제공하고 있는 구상들을 신자들이 확신하고 있다는 것과, 그 수상이 실제로 얼마만큼 효과가 있느냐 하는 문제는 별개다. 하지만 종교는 그 효과성이 확신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즉 종교는 믿어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종교는 단순히 믿어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며, 현실적으로도 그 효과를 갖고 있다. 그러라 종교 집단이 갖고 있는 신념 체계들은 그 효과를 보고 나서 믿는다고 하기보다는 믿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학술총서 28 상생의 철학, 도서출판 동녘, 이부현, p283.
나오면서
폭력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가장 성스럽고 평화적이어야 할 종교에까지 깊이 내재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절망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러나 폭력의 문제는 냉철한 숙고를 요한다. 폭력을 일반화시켜서 이해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것을 어떻게 문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예수의 가르침을 철저한 비폭력주의라는 양보할 수 없는 입장으로 고정시켰을 경우, 정당한 이유를 갖는 온갖 형태의 전쟁이나 무장폭력과 유혈폭력은 반복음적이고 반기독교적으로 판단될 수 있다. 아울러 폭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역사적 기독교는 온갖 형태의 폭력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들 그리고 체계들 내에 스며들어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정직한 자기비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도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신학 ,이문균, 한기독교서회,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김영한. 숭실대학교 출판부,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 김의환
과학과 종교 상생의 길을가다. 존호트 지음 구자현 역 ,코기토 출판사.
학술총서 28 상생의 철학, 이부현. 도서출판 동녘,
  • 가격1,4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5.05.24
  • 저작시기2015.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69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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