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간(淸華簡) (繫年)의 비판적 검토 - 진(秦)의 기원과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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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초록

本文通過從幾個角度檢討最近與秦的起源有關的重要資料≪繫年≫ 第3章的記錄, 來反駁秦的“東來說”。幷意圖對最近過度信賴出土資料的 硏究風潮加以批判, 以重讀最古典和最重要的≪史記≫的記錄。長期以 來?多硏究者利用≪史記≫進行硏究時, 實際上沒有看出司馬遷的眞正 意圖。他們認爲≪史記≫似乎是把多種關聯史料原樣匯總而成的一本 書, 幷只抽出自己需要的幾條史料加以利用。筆者認爲, 只有先理解司 馬遷的書寫意圖, 才能判斷是否信賴≪史記≫的記錄, 而且對選擇性利 用考古學資料的硏究方式也有反省的必要。這些問題都與≪繫年≫第3 章的記錄有關, 所以筆者試圖對其再次加以討論。 所謂秦的“東來說”, 以西周時期?西地區已經受到中原文化的影響爲 “東來說”的考古學依據, 强調屬於同一?姓的許多氏族處於東方, 進而認 爲≪史記·秦本紀≫中秦的祖先在“中國”活動, 認爲在≪繫年≫裏出現 的“秦之先”似應讀作“秦的祖先”, 將商奄之民作爲秦的起源來理解。但是, 如果依照以下本文的分析來看, 可以說“東來說”的大部分的論據幷不妥當。 首先, 是對考古學資料的再檢討。從秦故地?西地區的地理環境來看, ?山造成其與中原的地理隔絶, 從考古學上看, 秦文化也有不同于中原 文化的獨特之處。?外, 飜越?山有連接兩者的交通路線, 這條路線與 秦初期的地名和移動路線一致。這條路線還是?西的秦與中原的西周接 觸的地方, 也是秦被分封的地方。因此, 我以爲旣往硏究中在?西地區 尋?中原文化的影響有點勉强。 其次, 是對≪史記·秦本紀≫的再檢討。考察貫穿于≪史記·秦本紀≫ 中秦分封之前的記錄的主要書寫意圖可知, 司馬遷在追溯秦的譜系的同時, 還著重記載了秦的祖先與中原王朝的關係。秦的祖先以幇助舜禹的功績 而受封?姓, 之後在夏代末期活動于商側, 周初以後轉而與周形成友好的 關係, 結果又受到周的分封。這是司馬遷要說明的一個核心。與秦的祖 先同屬於?姓的一些支派, 因爲與中原王朝發生密切的聯繫, 也被司馬遷 一倂記錄下來。而這些支派有的在中國居住, 因此秦的起源好像在“中國”。 但是,≪秦本紀≫也明確記載, 秦在被周分封以前, 秦的本系大駱和非子 以犬丘爲中心地與西戎居住在一起。 最後, 是對≪繫年≫第3章記錄本身的再檢討。第一,≪史記·秦本紀≫ 與≪繫年≫之間有根本的內容差異, 二者有不同的史料來源,≪繫年≫作 者的寫作目的和對史料的取捨也與司馬遷不同。第二, 可以確認,≪繫年≫ 與旣有文獻有明顯的不同內容。≪繫年≫中的三監不包括武庚 (卽祿子耿), 幷且幇助周的東遷不是襄公而是秦仲。因此≪繫年≫未必全都可信。第三, 從≪繫年≫來看, 不能說商奄之民是飛廉的種族, 他們只是商奄滅亡 之後根據種族分散政策而被遷徙的族群而已。他們被遷徙的地方位於越 過?山的交通路線的入口附近, 是西周用以抵禦西戎的地區。商奄雖然 被遷徙到這裏, 但幷不能說他們就是秦的祖先。第四, 如果按照旣有的 讀法來讀,≪繫年≫中的“秦先人”和史籍中的“×先人”的內涵不同。史籍 中的“×先人”均是指某個部族王室的祖先。筆者認爲,≪繫年≫中的“秦 先人”的內涵也當理解爲“秦王室的祖先”, 因此, “是秦先人”之前應當斷 讀。這樣一來,≪繫年≫的全部內容是:通過周成王殺害飛廉及遷徙商 奄之民的史實來記述秦與周不和。之後,秦與周的關係好轉, 秦的先人世 世代代作爲周的根幹。西周衰亡平王東遷時, 秦也起了?大的作用。因 此, 春秋以後秦得以非常强盛。

국문초록

본고는 진의 기원과 관련해 최근 중요한 자료로 떠오른 「계년」 제3장의 기록을 여러 각도에서 검토함으로써, 진의 ‘동래설’을 논박하고자했다. 진의 ‘동래설’은 이미 서주시기에 농서 지역에 중원문화의 영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 고고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사기』 「진본기」에서 진의 조상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또 동일한 영성에 속하는 많은 씨족이 동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계년」에 나오는 상엄지민을 ‘진의 선인’으로 읽어 이들이 진의 기원이라고 이해해왔다. 그러나 첫째, 진의 옛 땅인 농서 지역의 지리 환경을 보면, 농산에 의해 중원과 지리적으로 격절되어 있었으며, 이는 고고학적으로도 쉽게 확인된다. 둘째, 『사기』 「진본기」 중 진의 분봉 이전 기록은 기본적으로는 주로부터 분봉을 받은 진의 제후를 기준으로 그 직계 조상이어떻게 거슬러 올라가느냐라는 관심에서 기술하되, 계보를 따라가는중간에 방계 조상 중 ‘중국’과의 관계가 확인되면 이들을 추가 기재하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진본기」의 내용은 마치 진의 조상이‘중국’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을 뿐이다. 셋째, 『사기』 「진본기」와 「계년」은 근본적인 내용의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자료를 선택했기 때문이므로, 양자의 내용 일부를 적당하게 절충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어느 하나가 반드시 옳다고 할수 없지만 「계년」에는 여러 기존 문헌의 기록과 명백히 다른 내용이 확인되므로, 「계년」을 그대로 신뢰해서는 곤란하다. 「계년」 기록 자체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계년」의 상엄지민은 비렴의 종족이라고 할 수 없으며, 단지 주가 상엄씨를 멸망시킨 이후 종족 분산 정책에의해 그 곳의 사람들을 주의 다른 지역으로 천사했을 뿐이다. 따라서 상엄지민은 진 분봉 이전에 미리 천사되어 살고 있었던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데 기존의 독법처럼 상엄지민을 뒤편의 ‘진선인’과 붙여 읽게되면, ‘진선인’은 단지 ‘진에 먼저 거주하고 있던 자들’ 즉 진 일반인의조상 중 일부가 되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필자는 상엄지민과 ‘진선인’을 떼어 읽는 새로운 독법을 제안한다. 그러면 ‘진선인’을 진 제후의 조상이라는 정상적 용법으로 읽을 수 있으며, 주의 천사 정책이라는 수동적 방법이 아니라 진이 주체적으로 주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진이 춘추시대에 강대해졌다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이 「계년」의 서사 목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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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46 페이지
  • 발행년2016
  • 학회명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 저자김병준
  • 파일형식아크로뱃 뷰어(pdf)
  • 자료번호#5497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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