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의 민족복음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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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초록

Han Kyung Chik pursued three goals for mission, education, and social services in his ministry. He pushed the national evangelization forward with church establishment in non-church regions with Young Lak Church, gospel propagation by building schools, and various church community services. The gospel in this period was spread through the evangelization movement of individual churches and denominations. The National Evangelistic Campaign which he began with Kim Hoal-Lan in 1964 was a turning point to draw individual churches into one church union for the national evangelization movement. This campaign greatly contributed to the national evangelization movement that was progressed with large evangelism assemblies in 1970’s and 1980’s in three ways. First, the campaign accomplished the unification of churches beyond different denominations. Second, it made an effort not only to propagate the gospel into all regions and classes in South Korea using various evangelization methods but also to transform their lives. Lastly, the movement was supported by the government in order to mediate anticommunism. These three ways of evangelization became the fundamental of all national evangelization movement occurred afterwards. Han Kyung Chik played a role to intermediate and unify the conservative camp and the progressive camp on the basis of Ecumenism with the characteristics of moderate evangelism. For this purpose, he took the lead of Billy Graham’s evangelism assembly in 1973 and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mission memorial assembly in 1984. He later on played a symbolic role of church unification by serving as an honorary chairman or advisor for large evangelism assemblies in 1970’s and 1980’s. After he learned The Fishing Ground Theory from the Berlin Congress of Evangelism in 1966, he strove for the gospel propagation in military and industrial settings. All Military Christian Movement made good progress by converting many soldiers into Christians with support from the military authorities and government officials who hoped to spread anticommunism and to improve military morale. On the contrary, missionary work at industrial settings faced a conflict with human rights of workers, and resulted in suspension of Young Lak Church’s support in 1983. Han’s goal to found a democratic nation by spreading the gospel to the whole nation resulted in spiritual revolution of individuals nationwide, but failed to reform the industrial settings in terms of social structure.

국문초록

한경직은 선교, 교육, 봉사의 3대 목회지표를 지향하였는데, 영락교회에서 무교회 지역 교회 세우기와 교단차원의 500개면 교회 세우기, 학교 설립을 통한 복음전파, 사회봉사를 통한 민족복음화를 추진하였다. 이 시기의 민족복음화는 개교회와 개교단을 통한 복음전파 운동이었다.
1964년에 김활란과 함께 시작했던 전국복음화 운동은 민족복음화를 개교회의 활동에서 교회연합을 통한 전국적인 복음화 운동으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1950년대 교회 분열을 극복하고 교회연합을 통한 교회 성장의 계기가 되었던 전국복음화 운동은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대형전도집회를 통한 민족복음화 운동에 세가지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첫째 이 운동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교회연합을 이룩한 운동이었다. 둘째는 남한의 전지역과 전계층에게 다양한 전도방법을 통한 복음 전파만 아니라 삶의 변화를 가져오고자 하였다. 셋째는 반공을 매개로 정부의 후원을 통해 진행된 운동이었다. 이 세 가지 형태의 복음전파는 이후에 진행된 모든 민족복음화 운동의 진행에 기본적인 원리가 되었다.
한경직은 온건한 복음주의 에큐메니칼 신학을 바탕으로 보수와 진보 진영을 연합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는 극단적인 보수주의나 진보주의를 지양하고 온건한 복음주의를 토대로 복음전파를 위해 교회들을 연합시키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와 한국의 전교단들과 기관들의 연합으로 진행된 선교 100주년 기념대회를 주도적으로 진행하였고, 다른 1970년대와 80년대의 대형전도집회들에는 고문이나 명예위원장이 되어 연합의 상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1966년의 베를린 전도대회에서 황금어장론을 배운 후에 군대와 산업현장에 복음을 전파하려고 노력하였다. 군대에 복음을 전파하려는 전군신자화 운동은 반공과 군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군당국과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며 잘 진행되어 군인신자들을 많이 얻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에 산업현장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산업선교 운동은 산업현장의 인권과 근로자들의 권익의 문제와 충돌하여 영락교회가 1983년에 산업선교지원을 중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민족 전체에게 복음을 전하여 민주국가를 세우려던 그의 목표는 개인전도를 통한 정신적 혁명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사회적인 구조의 변화의 문제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한경직의 대중전도 집회를 통한 민족복음화 운동
Ⅲ. 한경직의 복음주의적 에큐메니칼 신학 사상
Ⅳ. 전군 신자화 운동
Ⅴ. 도시산업선교
Ⅵ. 결론
참고문헌
< Abstract >
  • 가격6,000
  • 페이지수28 페이지
  • 발행년2012
  • 학회명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사상과 문화연구원
  • 저자이은선
  • 파일형식아크로뱃 뷰어(pdf)
  • 자료번호#64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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