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사(歸信寺)의 불교조각과 조선의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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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초록

This study intended to focus on the realistic expression techniques contained in the Buddhist statues of the Joseon Dynasty by the analysis of Buddhist statues in Gwisinsa(歸信寺) temple. In general, Buddhist art during the Joseon Dynasty is considered to be inferior to that of Unified Silla or Goryeo, when Buddhism was socially important. Of course, it can't be denied that elements that intentionally exclude realism account for a greater proportion in this period. However, it was confirmed through the statues of Gwisinsa that the exclusion or suppression of such realism was never a matter of skill. Although delicate muscle descriptions and sensual human body expressions that appear below the edge of a transparent cloth such as the Seokguram Sculptures from the Unified Silla Period are hard to find in Joseon Dynasty sculptures, but Buddhist statues of Gwisinsa reveal their individuality to the extent that they may have been modeled after a specific person, and their expressions are full of life. In addition, the way in which each statue's movements are depicted and the organic movement of the hem of the garment according to the movement shows skills that are difficult to express without a well-trained technician. Such realism seems to have become static and uniform again after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Perhaps a new worldview and hope for the future, acquired from experiencing two wars, led to this unique artistic tendency in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look at the background of this large-scale clay Buddha statue. Until now, it was regarded as expressing the will to recover from the Japanese Invasion in 1592, but in addition to this aspect, this article estimated the possibility that each temple in question might have been restored because it had a tradition of having large statues of Buddha before the war. In particular, about the statues composition of the Vairocana triad, it can be assumed that the association of Amitabha and Seokga (or Vairocana) enshrined in the 10 Avatamska temples were combined with the Medicinal buddha later. Furthermore, attention is being paid to the fact that these large-scale Sojo Buddha statues are mainly distributed in North Jeolla and Chungcheong provinces. The reason for this possibly be that the soil around the temple in this area may have been advantageous for the creation of the clay Buddha statue, and it is assumed that the existence of ceramic workshops such as buncheong kilns made it easier to secure quality soil and manpower and facilities to process them.

국문초록

본고에서는 귀신사의 불상조각을 통하여 그간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고만 평가되어온 조선시대 불상양식을 새롭게 리얼리즘의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일반적으로 억불숭유의 시대였던 조선시대의 불교예술의 기량은 불교가 사회적으로 중요시되었던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사실성을 배제한 요소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성의 배제, 혹은 억제가 결코 기량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귀신사의 불상조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통일신라시대 석굴암 조각상에 보이는 섬세한 근육묘사나 투명한 듯 얇게 처리된 천의 자락 아래로 보이는 감각적인 인체의 표현 등은 조선시대 조각에서 잘 찾아볼 수 없지만, 귀신사의 불교조각상들은 마치 특정인을 모델로 삼아 조각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각 인물들의 개성이 잘 드러나며, 그 표현은 생동감이 넘친다. 더불어 각 존상들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방식이나 그 움직임에 따라 옷자락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모습도 잘 훈련된 작가가 아니면 표현하기 어려운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리얼리즘은 17세기 전반이 지나면 다시금 정적이고 획일화된 성향을 띄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직시한 새로운 세계관과 미래에 대한 희망 등이 어우러져 17세기 전반기에 이와 같은 독특한 예술적 특징이 형성되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해보았다.
더불어 귀신사를 포함한 몇몇 사찰에서 이와 같은 대형의 소조불상을 조성한 배경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전후 복구의 의지를 이와 같은 대형불상 조성으로 표출한 것으로 보았지만, 본고에서는 그러한 측면 외에도 기본적으로 해당 사찰들마다 임란 이전부터 장육상 이상의 대형불상들을 모셔온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복원했을 가능성을 추정해 보았다. 특히 비로자나 삼불상의 도상구성에 대해서는 화엄10찰에 봉안된 아미타+석가(또는 비로자나)의 불상조합에 약사여래가 결합된 것으로 풀어보았다. 나아가 이러한 대형소조불상들이 주로 전북·충청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이들 사찰 주변의 토양이 소조불 조성에 유리했을 가능성을 고려해 보았으며, 특히 분청사기 가마터와 같은 도자공방이 존재한다는 점을 통해 양질의 흙과 이를 가공할 인력과 시설의 확보가 수월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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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34 페이지
  • 발행년2020
  • 학회명한국불교사연구소
  • 저자주수완 ( Joo Soo-wan )
  • 파일형식아크로뱃 뷰어(pdf)
  • 자료번호#6539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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