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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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다산 정약용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1. 다산 정약용 선생
2. 업적
가. 배다리 준공
나. 수원 화성
다. 다산의 경제관
3. 저서
4. 결론

본문내용

슷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끼리 모여 서로 교육 내지 연구를 함께할 경우 더 큰 기예를 익힐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업도시와 일반도시 등이 구분되어 정착이 되고 나면 많은 물류량이 발생할 것이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수레와 배의 규격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 또한 제시한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 모든 철도의 철로 규격은 통일되어 있다. 이는 각 나라마다 다른 철로 규격을 사용할 경우 서로의 철로를 연결할 수 없게 되며 원활한 물류 시스템을 갖추기 어렵다는 사실이 고려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열차를 본 적도 없는 그 시절 이러한 선견지명을 보여준 것이다.
다산의 경제관이 서양에서 전개되어 온 경제관과 다른 점은 일련의 경제적 개선 작업이 개인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수행되어야 한다고 보지 않고 국가가 주도해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있다. 그가 바라본 시장은 다음과 같은 모습이었다.
“시장이 마을마다 설치되었더니, 큰 폐해가 발생하였다. 재물을 낭비하고 산업을 폐하고 술주정하고 싸움질만 하는 등 변이 발생하였다. 단연코 모든 시장은 엄금해야 한다.”
정부 개입 강조한 시장관
그의 시장관이 이와 같이 형성된 것은 당시의 상업 발달 형태를 고려할 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조선에서는 상업이 발달함으로써 가져다주는 혜택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당시 수행되는 상업적 거래는 몇몇 거상들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이러한 거상들은 대부분의 품목에 대한 수급을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매점매석의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즉, 당시 시장은 완전시장의 형태보다는 독과점시장에서 전개될 수 있는 모습들이 더 많이 엿보인 것이다. 결국 다산 정약용이 시장의 기능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강조한 것은 오늘날 독과점시장으로 인한 시장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이론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할 것이다.
3. 저서
◈ 경세유표(經世遺表)
행정 기구의 개편을 비롯하여 관제·토지제도·부세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책으로서 정약용이 1808년부터 1817년까지 10년에 걸쳐 쓴 조선 개혁의 밑그림이 담겨있다. ≪목민심서≫나 ≪흠흠신서≫가 당시의 법률 체계나 사회 구성 원리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방 행정이나 형사 사건 등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상세하고 세부적인 실무 지침을 규정하고 있는 책들임에 비해, ≪경세유표≫는 국가와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을 위한 원칙이 보다 근본적으로 제시된 저술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전제라는 토지제도를 주장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1리를 「정(井)」자로 나누어 9등분해 중앙을 공전(公田)으로 하고 주위를 사전(私田)으로 한다. 공전을 공동경작해 그 생산물을 세금으로 내고 사전의 생산물로 생활을 한다.”
◈목민심서(牧民心書)
지방관인 목민관이 백성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지를 다룬 행정 지침서이다. 총12강으로 대분하고 이것을 다시 각각 6조씩 세분하여 총12강 72조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율기육조(律己六條)를 들수 있는데 이것은 공직자가 지켜야할 6가지 덕목을 뜻하는 것이다.
1. 칙궁 - 飭躬 : 몸가짐을 바르게 하다
2. 청심 - 淸心 : 청렴한 마음을 갖다
3. 제가 - 齊家 : 집안을 다스리다
4. 병객 - 屛客 : 사사로운 손님은 물리치다
즉, 청탁을 물리침
5. 절용 - 節用 : 씀씀이를 절약하다
6. 낙시 - 樂施 : 베풀기를 좋아하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공직자가 꼭 갖추어야 할 자세로 여겨지고 있다.
◈ 흠흠신서(欽欽新書)
조선 정조 때 정약용이 지은 법정에 관한 책. 30권 10책의 사본으로 순조 22년(1822년)에 간행되었다. 형벌에 관계되는 일은 사람의 목숨에 관한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볍게 다루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그 임무를 맡은 관리들이 유의할 점을 적은 내용이다. <정다산 전서(丁茶山全書)>에 수록되어 있으며, 한국 법제사와 사회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 아언각비(雅言覺非)
정약용이 지은 어원 연구서. 3권 1책으로, 1819년(순조 19년)에 간행되었다. 약 200항목에 달하는 수목, 약, 식물, 의관, 악기, 건축물, 어류, 지리, 곡물 등의 이름과 어원을 밝혀 놓았으며, 와전된 것과 쓸 데가 모호한 것을 바로잡아 놓았다. 1911년 경성 고서 간행회에서, 1912년에는 광문회에서 각각 중간하였다.
◈ 마과회통(痲科會通)
조선 순조 때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마진(痲疹 : 홍역)의 치료에 관하여 편찬한 의학서. 6권 3책으로, 이몽수의 <임신방>, 허준의 <벽역신방>, 조성준의 <급유방>, 이경화의 <광제비급> 등 마진에 관한 연구들을 모아 정리한 책이다. 부록에는 ‘종두방서’를 실어 제너의 종두법을 소개하였다.
4. 결론
정약용은 조선 후기에 살았던 엘리트 관료이며 탁월한 학자였다. 그를 평가하는데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이룬 경세학적, 실학적인 학문적 기여이다. 그는 17세기 이후 19세기까지 조선조의 유학사상의 하나의 학파를 형성한 실학을 가장 거대하고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학자이다. 정약용은 유교경전 해석에 있어서도 과거의 학자들이 이룩한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새롭고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하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를 내용으로 삼는 실학을 가장 방대하고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대학자였다는 점이다. 그는 국가의 정치, 행정, 경제의 개혁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 한국 역사상 가장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하였다. 특히 경세유표와 목민심서 그리고 수많은 논문으로 발표한 행정개혁론 및 국정개혁을 위한 정책론은 한국뿐만 아니라 당시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거대한 학문적 업적이다. 비록 그의 연구가 당시에 크게 쓰이지 못하였고 그것을 적용하는데 시대와 공간의 제약이 있기는 하나 그가 이룩한 학문과 개혁적 정책론은 19세기말 이후 한국의 개화개혁론자들을 교화하는데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도 국정 혁신 및 행정 개혁을 구상하고 논하는 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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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4.14
  • 저작시기2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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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0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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