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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년 3월.
이 글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미술평론가 “한젬마”씨가 법정스님의「산에는 꽃이 피네」를 추천하면서 쓴 독자 평이다.
짜여진 교리에 맞춰 있는, 무신자들에게 좀처럼 다가가기 힘든 종교를 문학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친숙하게 다가가고,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종교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평안’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비종교인이든 종교인이든, 그리고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 문학이라는 점이 각 종교 사상에 방해가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강의 시간에 배운 것처럼 종교문화의 독단론과 환원론을 극복하여 “있는 그대로” 서술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아마도 누군가 이 글에 대해 이 점에 대해 반박한다면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세찬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까지 밀려온다.
지금까지 미흡하게나마 적어 내려온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리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종교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우리가 종교를 통해 얻기 원하는 ‘평안’을 종교 간의 비판도 거부감도 없이 종교문화의 일부인 ‘문학’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선사되고 있는 현상은 바람직하고 반가운 것이다.
이 글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미술평론가 “한젬마”씨가 법정스님의「산에는 꽃이 피네」를 추천하면서 쓴 독자 평이다.
짜여진 교리에 맞춰 있는, 무신자들에게 좀처럼 다가가기 힘든 종교를 문학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친숙하게 다가가고,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종교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평안’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비종교인이든 종교인이든, 그리고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 문학이라는 점이 각 종교 사상에 방해가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강의 시간에 배운 것처럼 종교문화의 독단론과 환원론을 극복하여 “있는 그대로” 서술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아마도 누군가 이 글에 대해 이 점에 대해 반박한다면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세찬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까지 밀려온다.
지금까지 미흡하게나마 적어 내려온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리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종교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우리가 종교를 통해 얻기 원하는 ‘평안’을 종교 간의 비판도 거부감도 없이 종교문화의 일부인 ‘문학’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선사되고 있는 현상은 바람직하고 반가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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