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인의 오리엔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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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대 그리스인의 오리엔탈리즘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오리엔탈리즘이란?
1. 오리엔탈리즘의 어원과 의미
2.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Ⅱ. 고대 그리스인의 페르시아 인식
1. 고대그리스인의 페르시아인에 대한 인식 구조 및 단계
2. 고대그리스인의 페르시아 인식 사례
Ⅲ. 고대 그리스인의 이집트인식
1. 고대 그리스인의 이집트인식
2. 그리스인의 구분의식과 인종의식
Ⅳ. 맺음말

본문내용

였기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조건을 갖춘 곳으로 여겨졌다.
그리스인들은 그 규모가 파르테논 신전의 10배정도 되는 대 피라미드와 파라오의 거대한 조각상을 보고 이집트의 거대한 건축물에 대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3) 문화적 선구자로서의 이집트인
그리스인은 이집트인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들이라 여기고 그들의 지혜를 존중했다.
이집트인은 종교 집회, 행렬, 제례를 처음으로 확립했으며 신들에게 제단, 신상, 신전을 처음으로 부여했으며 최초로 년으로 시간을 계산하고 년을 12구분했다.
또 시민단의 세습적인 구분이 처음 생겨난 곳도 이집트였고 수학이 처음 창시된 곳도 이집트 부근이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인의 제반 문물이 거의 이집트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의 신들의 명칭과 제례도 이집트의 것을 수용했으며 솔론은 이집트의 법률을 수용하여 그리스의 법률로 확립했다. 이뿐만 아니라 올림픽 경기 규칙 제정도 이집트인의 조언을 통해 확립되었으며 그리스인의 방패와 투구도 이집트로부터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렇게 이집트인은 그리스의 문화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2. 그리스 인의 구분의식과 인종의식
이집트가 그리스인들에게 찬미와 감탄의 대상일 수만은 없었다.
그리스인은 자신들이 이집트인과 다른 사람이라는 분명한 구분의식을 갖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대체로 헬레네스-바르바로이 구분을 통해 자국민 중심의 우월의식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르바로이는 그리스인이 아닌 이민족을 말하는 것이므로 페르시아인 뿐만 아니라 이집트인도 당연히 바르바로이에 속했다.
바르바로이는 처음에는 단지 언어의 차이를 가리키는 중립적인 용어였는데, 이후 그리스인의 우월 의식과 동시에 이민족에 대한 비하의식을 반영하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스인은 이집트인의 탁월한 지적능력과 선구적인 문화 역량을 인정했지만, 그것이 바르바로이 이집트인에 대한 비하의식 자체를 폐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집트인의 정치체제는 시민들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파라오의 통제가 강요되는 부당한 체제로 인식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제시한 것이 피라미드 건설 과정이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 전쟁 이래 자유의 중요성을 부쩍 더 강조했고 자유와 전제를 그들과 바르바로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으로 부각시켜 왔기 때문에 이집트의 정치체제의 차이를 간과했을 리가 없었다.
그리스인은 이집트인의 문화가 그리스인의 문화와 서로 이질적인 면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스인이 가장 크게 강조한 이집트 문화의 특징은 독실한 종교적 신앙심이었다.
많은 그리스인들이 이집트인들의 종교적 경건성을 이유로 이집트인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인은 이집트인들이 동물 자체를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것을 지적하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리스인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에 비해 더 문명화된 존재라고 보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문화적 우월성을 새삼 확인했을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인은 이집트인들과는 다르다는 구분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스인이 이런 구분의식을 가지게 된 근거는 생물학적 차이 즉 신체적 특징이나 인종적인 편견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이집트인에 대한 그리스인의 구분의식은 헬레네스-바르바로이 구분의식에 근거하는 것이었다.
바르바로이는 그리스인 혈통도 아니고 그리스 공통의 문화를 누리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인이 보기에 이집트인은 수많은 바르바로이 중에 하나였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스인이 이집트인을 자신과 구분한 것은 이집트인이 바르바로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바르바로이 구분의식은 그 내용상 인종의식과는 다른 것이었다.
Ⅳ. 맺음말
페르시아인에 대한 그리스인의 인식은 페르시아의 실상을 근거로 한 것이라기보다 그리스인 위주의 관념적인 산물이었다.
그리스인의 불안과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치적 사회적 구호이자 페르시아 원정을 통해 그리스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범그리스주의의 일환이기도 했다.
즉 페르시아인에 대한 인식은 그리스 중심적인 관점과 그리스인의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또한 페르시아 원정은 정치적 지배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으니 그리스인의 페르시아인에 대한 인식은 사이드가 정의한 오리엔탈리즘 정의 (3)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근대 오리엔탈리즘의 제반 형태는 이미 고대 유럽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인은 이집트인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취했다.
한편으로는 이집트인의 유구한 역사와 선진적인 문화적 역량을 인정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인보다 열등한 바르바로이로서 이집트인을 평가했다.
다른 바르바로이와는 달리 문화적 역량을 특별히 높이 평가했다는 점에서 그리스인이 이집트인에 대해 제법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집트에 대한 비하의식은 항상 존재했기에 오리엔탈리즘의 제반 형태가 나타난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 중심의 세계관에 근거한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오리엔탈리즘은 사이드가 정의한 (3)일 것이다.
이런 오리엔탈리즘은 우리 속에도 있다.
우리는 오리엔탈리즘과 함께 옥시덴탈리즘을 동시에 갖고 있다.
때로는 서양과 비교해 우리 자신을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자신을 향한 오리엔탈리즘을 소유하며, 또한 우리보다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동양의 다른 국가들을 열등하고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서양의 입장이 되어서 보는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에 반발하여 서양을 적대시하는 옥시덴탈리즘을 동시에 갖고 있다.
구분의식은 갖되 즉 정체성을 갖는 것은 필요하지만 배타적인 오리엔탈리즘, 옥시덴탈리즘은 세계화된 현 지구촌 시대에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 전 국가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해 조화를 이루면서 전 지구를 아우를 수 있는 사해동포주의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김봉철, “고대 그리스인의 오리엔탈리즘-페르시아인에 대한 그리스인의 인식 사례들-”
<<경기사학>>, 1997, 165-197쪽
김봉철, “고대 그리스문명과 인종의식-고대 그리스인의 이집트 인식-”
<<서양사론>>, 2001, 43-65쪽
정진농, <<오리엔탈리즘의 역사]>>, 살림, 2003
‘주철민의 역사공부방\' 이전 발표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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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4.25
  • 저작시기2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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