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경제사와 세계화 시대를 돌아보는 세계경제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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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경제사와 세계화 시대를 돌아보는 세계경제사를 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고대문명
3. 그리스
4. 헬레니즘 시대
5. 로마
6. 중세
7. 절대주의 시대
8. 산업혁명
9. 제국주의와 1차, 2차세계대전
10. 냉전시대
11. 느낀점

본문내용

이 근거의 이론적 배경은 경제학의 아버지인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다. 그는 정부에 의한 강압적인 경제정책이 아니라 시장의 기능이 맡기는 자유방임주의 철학을 옹호한다.
9. 제국주의와 1차·2차 세계대전 ; 대공황
과학의 발전과 기술 혁신으로 나타난 산업혁명으로 재화의 산출량이 폭발하자 이를 팔 구입처가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유럽의 열강들은 자국 내에서 식민지로 눈을 돌리게 된다. 제국주의의 등장이다. 이들 국가는 식민지로부터 값싼 원재료를 유입하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함과 동시에 비싸게 제품을 팔아 국부를 늘리게 된다. 식민지 확보 과정에서 강력한 군대가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식민지 쟁탈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 사이의 갈등은 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이와 같은 갈등이 표면화된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에서 총격을 맞고 사망한 것을 계기로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삼국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협상은 전쟁에 들어가게 된다. 전쟁 과정에서 독일은 연합국에 들어가는 배는 중립국의 배라도 침몰시킨다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펴게 되고 영국 여객선 침몰에 미국인 탑승객 100명 이상 죽자 미국이 참전하게 된다. 즉 유럽 내의 전쟁에 미국이 참전함으로써 세계 대전으로 확장된 것이다. 지루한 전쟁의 결과 연합국이 승리하게 되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자본주의 지위가 떨어졌으며 미국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이동하게 되었다. 특히 전쟁에 따른 구조적 문제는 유럽 경제 회복에 장애물이 되었다. 독일의 막대한 배상금 지불 문제와 국경 분할 문제, 대부 체계의 단절, 전후 농산물 공급의 증가에 따라 곡물 가격 폭락과 같은 복잡한 문제가 서로 얽혀 있었다. 특히 독일에 있어서 배상금 문제는 독일 내에서 초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을 초래해 나치 정권의 등장의 배경이 되었다. 당시 케인즈는 독일에 대한 과도한 부담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견은 관철되지 못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의 참전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이점을 얻게 되었지만 1929년 주식시장 폭락에 따라 경기 침체가 가속화된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미국 경제가 다시 회복세를 나타낸 것은 2차 세계대전으로 군수물자 생산이 늘어나기 시작한 이후이다.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각국이 총력을 다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다. 1941년 독일은 소련을 침공하게 되며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하자 세계대전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전쟁의 결과 2,200만 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3,400만 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전쟁 자체가 산업시설을 파괴함으로써 일부 국가는 심각한 경기 후퇴를 겪게 되었다. 또한 전쟁 과정에서 급등한 물가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독일의 동부는 소련, 서부는 미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세계적으로 2차 세계대전은 미국 중심의 경제 체제가 확고히 정립되었으며 식민지 정책이 폐지되었고 사회주의권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확장으로 세계의 평화는 지속되지 못하고 다시 냉전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10. 냉전시대
한국 전쟁은 역사 이래 유래가 없는 동족 간의 혈전이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냉전 하에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어 있었다. 또한 베트남에서도 사회주의 세력의 진출을 막기 위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간 갈등이 표면화된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다. 이후 사회주의는 근본적인 취약점 때문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상징으로 그 종말을 고하게 된다.
11. 느낀점
인류의 역사 중에 단지 3주 만이 전쟁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가족의 국가의 이해가 관여될 경우 폭력적인 수단으로 이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대전과 같이 세계가 하나로 통합화되어 가며 과학기술이 발전한 후에 일어난 전쟁은 그 규모가 커지며 피해정도도 심각할 수 밖에 없다. 역사를 돌이켜 본다면 전쟁의 원인이 무엇이든 경제적으로 그 혜택이 더 클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선 그 비용이 더 클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또한 국제적인 규제 역시 필요하게 된다. 경제적인 문제가 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을 방지하고 세계 경제의 평등한 성장을 위해 브레튼우즈 체제 협상의 결과 IMF와 IBRD가 설립되었다. 또한 국제 평화를 위해 UN이 설립되었다. 이 둘 세계적인 기관의 장(長) 중 2명이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가질 필요가 있다. 2회 연임 된 UN 반기문 사무총장과 최근 임명된 김용 세계은행 총재이다. 이는 한국의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멋진 분들을 가진 한국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북한과의 갈등으로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는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과도 같다. 역사를 보면 한 번 분단된 국가가 통일을 지연시킬 경우 통일을 이루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스스로 전쟁의 당사자였고 분단된 이후 통일을 이루었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배 하에 정체성을 잃었으며 독립 이후 분할 통치에 의해 강제적으로 분단되었다. 아직 단군 이래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것이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단기간 우리 남한이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의 불안이라는 잠재적 긴장감을 없애고 동북공정, 독도문제, 이어도 문제 등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입장을 더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들 조상들이 분단된 이런 현실을 절대로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 문제에 대해선 정치적인 관점이 아니라 원리원칙을 세워 대처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이룬 이후에야 한반도 전체에 호랑이의 포효가 울려 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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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11.07
  • 저작시기20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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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1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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