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교육과 한국문화]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작품 속 인물들의 한(恨)의 정서 표출 방식 - 자기 운명론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신분 구조의 변동을 가져온 자본주의 문화, 민요에 마음을 담은 한풀이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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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교육과 한국문화]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작품 속 인물들의 한(恨)의 정서 표출 방식 - 자기 운명론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신분 구조의 변동을 가져온 자본주의 문화, 민요에 마음을 담은 한풀이의 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자기 운명론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2. 신분 구조의 변동을 가져온 자본주의 문화
3. 민요에 마음을 담은 ‘한풀이’의 문화

참고문헌

본문내용

다’하는 소리는 계명월이 각시 있는 곳을 가르쳐주드라는 뜻이겠지. 옛적에도 그런 부부의 정분이 좋은 사람이 있었든 갑드라.”
용혜는 어느새 코를 골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얘기밖에 모르신가봐요.”
용빈이 싱그레 웃는다. 용빈이 어렸을 때도 한실댁은 그 얘기만 들려주었다.
“슬픈 노래제? 옛적 사람들은 와 그리 숫되든고?”
“어머니는 숫되지 않은데, 그렇죠?”
“내사 뭐 그럴 처지나 돼야지.” 박경리, 앞의 책, pp.100-101.
우리 옛말에 시집가서 말없이 잘 살려면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노릇을 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시집살이가 고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의 가부장제의 사회 속에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 표현도 할 수 없었기에 시집간 여성은 혼자 감내해야만 했다. 이에 시집간 여성들은 자신의 외롭고 한스러운 처지를 노래에 담아 시집살이의 애환을 풀어냈는데 이 또한 한풀이의 한 방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노래는 막내딸 용혜가 김약국의 아내인 한실댁에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자 그 이야기 속에 나오는 노래이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한실댁의 한을 이 노래에 실어 표현한 것이다. 실제 한실댁이 부른 노래 속에는 고된 시집살이와 독한 시어머니의 행위가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김약국은 일찍 부모를 여의었기 때문에 고된 시집살이는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래를 부르는 한실댁의 정서에는 독한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만큼 남편과의 삶이, 다섯 딸을 둔 어머니의 삶이 그만큼 고되고 한스러움을 나타낸 것으로 보여진다. 즉 그러한 모든 고통을 참고 이겨내야 하는 여성의 한(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연순의 장사는 오일장이었다. 문상객들이 많았고,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혼잡을 이루었으나 상주 한 사람 없는 소년죽음의 출상은 쓸쓸하였다. 앵여(혼백을 모시는 작은 가마) 뒤에 가는 흰 꽃상여는 북문을 지나면서 몸부림치듯 한번 멎었다. 상부 노래는 호상이 아닌 참상(慘喪)인 만큼 구슬프다.
아하넘 어하넘
어나라 남천 어하넘
멀고 먼 황천길을
인지 가면 언지 오나
부모님도 잘 있이소
형제간도 잘 있이소
이팔청춘 젊은 몸이
인지 가면 언지 오나
활장같이 굽은 길을
살대같이 내가 가네
… (중략) …
어하넘 어하넘
어나라 남천 어하넘
명정공포 우뇌상에
요롱소리 한심허다
이 길을 인지 가면
언지 다시 돌아오리
북망산천 들어가서
띠잔디를 이불 삼고
쉬파리는 벗을 삼고
가랑비 굵은 비는
시우 섞어 오시는데
어느 누가 날 찾으리
어하넘, 어하넘 ―
흰 꽃상여는 황톳길 장대고개를 넘어간다. 상부가도 멀리서 어슴푸레 들려오고 만장이 바람에 나부낀다. 박경리, 앞의 책, pp.61-62.
민요는 우리 민중들의 일생과 많은 부분을 함께 존재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즉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른이 되어 죽을 때까지의 과거 우리 민중들의 삶은 대개 힘겨운 노동과 생활고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민요가 있어 그들은 힘들지만 즐기면서 일할 수 있었고 생활고에 시달린 마음도 풀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우리 민중들의 노래는 죽음까지도 함께 해왔다. 즉 죽음을 맞이하면 또한 민요를 들으면서 세상을 떠나간다는 것이다. 이때 부르는 장례의식요는 의식에 따르는 민요이기도 하지만, 상여를 운반하고 무덤을 다지는 노동요이기도 하다. 장례의식요는 그 의식의 절차 마지막에 부르는 달구질소리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노래한다 김진순, 앞의 책, pp.205-206.
고 한다.
위의 노래는 김약국의 사촌 누이 연순의 장례의식요이다. 연순은 신병을 앓아 몸이 허약하였는데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그를 잃은 슬픔이 더 클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한 맺힌 정서가 위의 의식요에 잘 나타나 있다. 이렇듯 죽음을 맞이하여 세상을 하직할 때에도 의식요는 함께 하였다.
젓꾼들이 움칠하며 놀란다. 바람소리 속에 처절한 비명을 지른 건 여자 아닌 염서방이다.
우리 살림 다 살았네에 …
새발의 피 같은 어린 새끼
쪽박에 밥 담듯이
이리저리 허쳐놓고
어디 갔소! 어디 갔소!
불쌍한 우리 임아
천길 물속에서 문어밥이 되었는가
상어밥이 되었는가
헷 참, 과부가 또 생기겠구마
염 서방은 여자 목소리로 한가닥 구슬프게 뽑다가 실쭉 웃는다.
“지랄 안 하나.” 박경리, 앞의 책, p.125.
보통 민요는 슬플 때나 즐거울 때 부른다고 한다. 슬플 때 부르는 민요는 그 슬픔을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부르는 것이고, 즐거울 때 부르는 민요는 흥이나 신명 등을 가져온다고 한다. 바닷가 지역 어부들의 삶은 그날그날의 기상 상태의 영향을 그대로 받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다. 그리하여 일을 하러 바다에 나간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은 클 수밖에 없었는데, 위의 노래는 어부인 염 서방이 생사를 알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한을 담아 마치 과부인양 여자의 목소리로 구슬프게 부른 것이다. 이렇듯 민요는 정해진 가사와 가락에 맞춰 부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자신의 감정을 실어 부를 수 있었다. 민요가 우리 민중의 한풀이를 위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노래에 개개인의 한(恨)의 정서를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 민중의 한(恨)의 정서가 담긴 민요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또한 본 연구에서는 한(恨)의 정서를 살펴보는 것에 초점을 두어 주로 슬플 때 부르는 민요에 초점을 두었음을 밝힌다. 민요는 고달픈 인생살이에서 쌓인 한(恨)을 풀어내고 새로운 삶의 의욕을 지닐 수 있게 하는 힘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한국인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노래방을 즐겨 찾는 것도 바로 우리 민족의 이러한 한풀이의 문화가 반영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참고문헌
곽혜란, 김소월 시에 나타난 한의 정서 연구, 건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최주호, 한국인의 커뮤니케이션 행태에 관한 연구 : 情과 恨을 중심으로, 우석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이희자, 박경리 소설의 서사와 갈등 양상 연구, 박이정, 2014
김진순, 민중들의 일상생활과 민요, 한국고전문학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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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7.03.04
  • 저작시기20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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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2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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