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문학의이해 공통)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한 17세기 조선 한문학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서술하시오 : 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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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문학의이해 공통)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한 17세기 조선 한문학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서술하시오 : 한문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한국 한문학이란

2. 17세기 조선의 한문학과 관련한 시대적 의미

3.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한 17세기 조선 한문학의 새로운 경향

1) ‘조찬한’의 한문학을 통해 본 새로운 경향
(1) 전란 이후 그리움
(2) 불합리에 대한 불만
(3) 문학적 소통
(4) 성찰과 자기 수용

2) ‘허균’의 한문학을 통해 본 새로운 경향
(1) 독창적인 개성적인 표현
(2) 사회적 면모 부각
(3) 시대의 풍조

3) 한문학 가사문학을 통해 본 새로운 경향
(1) 초당계 가사의 출현
(2) 강호가사
(3) 전대(前代) 명편(名篇)
(4) 변란 체험과 논평의 확대
(5) 사회 재건
(6) 사회적 담론의 형성
(7) 공적 발언
(8) 긍정적 전망
(9) 기대와 자기 표현

4. 나의 의견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득권층으로서 이들은 전란의 상처보다는 그로부터의 회복에 주목했고 과거의 모습을 다시 재현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그 다음 세대와 그와 비슷한 위치 놓인 작가 또한 이들이 제시한 방향을 이어 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17세기 전반기 정세 속에서 잊고 싶든 잊고 싶지 않든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는 경험이 이루어졌다. 위에서 다룬 작가들은 가사를 통해 그것을 형상화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이들은 가사가 지닌 기록과 자기 술회로서의 성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변란의 기억을 두고 보면 직접 체험한 것이든 전해들은 것이든 그에 대해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을 택했다고 할 수 있다. 기억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망각의 가능성을 방치했다.
이들 작가는 기억 속에 있는 과거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현재가 상충하는 문제를 과거의 기억을 선택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다. 이들에게 유의미한 기억은 훼손·파괴된 삶을 복원하는 데 소용되는 앞선 시대에 대한 기억이었다. 상처를 안긴 경험은 기억에서 배제하고 평온한 시절의 기억은 계속해서 간직하고자 했다. 앞 시대에 강호자연을 즐겼던 방식과 기존의 사회 질서와 이념을 떠올리며 과거를 되살리고자 했다. 이는 혼란기를 버틸 수 있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시각을 제공했다. 그리고 상처 입은 내면을 치유하고 세계를 복구하는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회복된 내면과 세계를 확인하는 역할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관찰되는 회귀의 방향성은 전후 복구와 재건을 비롯해 17세기 전반기 담론을 주도해 나갔던 계층의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9) 기대와 자기 표현
고난의 기억에 대해 책임이 있었던 기득권층은 그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복구와 안정의 형상화에 주력하였다.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위치한 작가에게서도 같은 지향을 공유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중앙 관직을 역임하며 지배 질서의 중심부로의 진출을 꾀한 경우, 재지 사족으로서 입지 강화를 위해 힘을 쏟았던 경우가 그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 내면 갈등의 노출, 이질적인 요소의 결합 등을 작품에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삶에 영향을 끼친 혼란기의 경험을 작품에 다루며 기억을 가시화하였다. 이는 창작 당시 지배 질서의 중심부에 있었던 작가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
조우인은 백광홍과 정철의 작품에 대한 의식을 뚜렷하게 보여주며 앞선 시대의 전통을 잇는 작품을 창작했다. 조우인에게 앞 시기 명편의 작자인 백광홍과 정철은 김득연·이경엄·황일호에게 있어 김언기·이호민·황신과 같은 존재였다고할 수 있다. 조우인의 가문은 증조부 조계형(曺繼衡) 이후 중앙 관료를 배출하지 못했다. 조계형은 연산군 대에 승지를 지냈는데 중종반정 이후 그 이력과 행적이 논란이 되었다. 풍기군수(豊基郡守)로 있을 때 부정축재(不正蓄財) 혐의로 파직되고 연산군 대의 이력이 계속 문제되어 공신록에서 삭제되는 일을 당했다. 이후 조부 조언홍(曺彦弘), 부친 조몽신(曺夢臣) 모두 처사로 지냈다. 부친 조몽신은 조우인이 과거에 급제해 출사하기 전인 1594년(선조) 조우인의 나이 38세 때 세상을 떠났다.
4. 나의 의견
문학은 인간이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는 유사 이래 인간이 문학 창작 활동을 지속적으로 영위해 온 이유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중요한 물음이다. 문학이 지닌 치유력이 문학의 본질이건 현상이건 간에, 문학의 치유적 측면은 인간의 문학적 행위를 이해하는 중요한 계제가 된다. 이는 한문학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한문학의 역사에서 문학의 치유력이 가장 돋보인 시기 중 하나는 아마도 16세기 후반~17세기 초반이 아닐까 한다. 조선 중기는 대외적으로는 수차례의 전란으로, 대내적으로는 조정 내 당파 간의 대치와 다툼으로 인해 혼란했던 격동의 시기였다. 조선중기 문인들의 높은 문학적 성취는 혼란한 시대상황으로 피폐해진 개인과 사회의 치유 요구와 맞물려 빛을 발했고, 문학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그리고 현실의 고통을 위무하는 치유책으로 기능하였다. 뼈아픈 경험과 시련은 곧 작품의 소재로 수용되어 사회 격변의 흔적 및 울분의 심사들이 詩文 속에 그대로 녹아났다. 문인들은 문학을 통해서 불가항력의 현실에 격렬히 항거하였으며, 詩文속 彼岸의 세계에서 삶에 대한 회의와 고뇌를 잠시나마 내려놓기도 하였다.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문학은 또다른 저항의 공간이자 도피의 공간이 되었으며, 그리하여 그 시기 문학은 載道라는 관념적 굴레를 한 꺼풀 벗고 일상과 감정을 여과 없이 담아내는 쪽으로 발전해 나갔다.
Ⅲ.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한 17세기 조선 한문학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서술해 보았다. 17세기에는 잦은 환국(換局)으로 정국이 불안한 상태였고 그와 함께 사상계 내부에서도 동요가 일기 시작한다. 성리학 내에서는 주자학의 보다 정치한 이론의 정립과 학파의 형성에 주력한 이들과, 주자학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이들 그리고 주자학 밖으로 눈을 돌리려는 이들이 공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는 18세기19세기의 양명학과 북학(北學), 서학(西學) 등 다양한 사상 분파의 정초작업이 이루어지던 시기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연구는 주로 당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사상사에서도 서인-남인 구조나 노론-소론이라는 당색을 위주로 나누어 연구함으로 인해 각 당색에 속한 개별 인물들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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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현(2007). 허균 시론의 특징의 의미.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연구.
김대행 외(2002). 문학교육원론. 서울대학교출판부.
김태준(1999). 校註, (校註)조선한문학사. 태학사.
고광수(2002). 고전문학 교육의 한 방향. 문학교육학.
강상규(2013). 조선정치사의 발견: 조선의 정치지형과 문명전환의 위기. 창비.
이병혁(2003). 고려말 성리학의 수용과 한시. 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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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7.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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