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한일관계사=자기 고향이나 고장, 거주지, 연고지 등에서 18세기(1799년)까지 한일관계사 사적지 관련 5곳 이상을 방문하여 사건 및 관련 사항 그리고 자신의 감상을 쓰는 데 반드시 사적지 또는 유물을 배경으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전근대한일관계사=자기 고향이나 고장, 거주지, 연고지 등에서 18세기(1799년)까지 한일관계사 사적지 관련 5곳 이상을 방문하여 사건 및 관련 사항 그리고 자신의 감상을 쓰는 데 반드시 사적지 또는 유물을 배경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노원평 전투(불암산성)
Ⅱ. 경복궁
Ⅲ. 행주산성
Ⅳ. 서울 동관왕묘
Ⅴ. 문학산성
Ⅳ. 출처 및 참고문헌

본문내용

),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등의 부하 장군을 대동하고 3만여 병력으로 공격해왔다. 권율은 이들을 처절한 접전 끝에 크게 무찔렀다.
직접 방문해본 행주산성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그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어서 비록 관광지로 변하였으나 그 당시의 상황을 나름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지금은 그저 좋은 경관의 사적지로서의 산성으로 인식되지만 당시 왜적과 싸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보니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Ⅳ. 서울 동관왕묘
서울 동관왕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에 존재하는 사적지로 현재 대한민국 보물 제 1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의 고전인 삼국지에 나오는 명장 관우의 사당으로서 정식 명칭은 동관왕묘라 할 수 있다. 조선 선조 34년에 동묘와 서묘 및 북묘를 세웠으나 지금 남아있는 것은 동묘 밖에 없다. 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전투지나 산성 등은 아니지만 임진왜란 때 왜병을 격퇴함에 있어 관우의 힘이 컸다고 하며 명나라의 신종이 임진왜란 후에 건립 비용과 함께 친필 편액을 보냄으로써 창건되게 되었다.
그 후에 1739년 영조에 의해 중수하였고 중국 묘사 건축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로서 그 외관이 기존의 우리나라 건물들과는 차이를 보인다는 특징이다. 찾아가본 결과 현재는 마치 공원과 같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흙돌담과 함께 정원수 및 의자가 존재하여 일종의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어 역사와 현재가 동시에 살아 숨 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동관왕묘> <문학산성>
Ⅴ. 문학산성
문학산성은 현재 민천광역시 남구 문학동에 위치한 사적지로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1호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이다. 높이 213m의 산정부를 정상을 둘러 쌓는 형식의 태뫼식으로 축성한 석축산성으로 분류되며 세종실릭지리지에는 남산석성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동사강목에서는 이 성을 비류의 옛 성이며, 성 안에 비류정이란 우물이 있다고 묘사하기도 하였다.“인천읍지”에서는 이 성을 미추홀의 고성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인천부사를 지내던 김민선이 이러한 옛 성을 수축하여 지키면서 그 자리에서 수차례 왜적을 물리치다 결국 병으로 죽고, 김민선의 뒤를 김찬선이 이어받아 끝까지 성을 지키는데 성공하였다. 당시에 전투를 위해 동문 밖 100여 보 되는 곳에는 왜군이 쌓은 성터가 있다고도 전해진다.
Ⅳ. 출처 및 참고문헌
「잊혀진 전쟁 왜구」이영 저/ 에피스테메/ 2007년
  • 가격1,9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7.09.16
  • 저작시기2017.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3412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