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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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본론: 요약 및 추가 설명
1, 피타고라스의 생애
2, 신비주의적 전통의 아쿠스마티코이 3, 다재다능한 철학자, 신앙인, 음악애호가 그리고 수학자
4, 피타고라스의 우주론
결론: 감상 및 평가
참고문헌
서론
본론: 요약 및 추가 설명
1, 피타고라스의 생애
2, 신비주의적 전통의 아쿠스마티코이 3, 다재다능한 철학자, 신앙인, 음악애호가 그리고 수학자
4, 피타고라스의 우주론
결론: 감상 및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가 상반된 평가를 보이기도 해서 흥미롭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피타고라스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탐구를 했고,이 저작들을 선별해 내어 자신의 지혜, 박식, 술책(kakotechn)을 만들었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현자로서의 지위를 의심한다. 그는 피타고라스가 박식하긴 하지만 “박식이 분별력을 갖게끔 가르치지는 못한다.”고 말할 뿐 아니라, 또한 “피타고라스는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원조이다”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반면에 엠페도클레스는 피타고라스와 관련해 “예사롭지 않은 일을 아는 어떤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생각들로 가장 부유한 자이며, 특히 온갖 지혜로운 일에 정통한 자이다”라고 증언한다.
좋은 평가를 담고 있든 아니든, 그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전 시기의 증언들이 비교적 폭넓게 있는 편이다. 이는 곧 그가 상당한 유명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타고라스를 현자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 상반된 평가가 존재하듯이, 그를 합리적인 자연철학자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상반된 평가가 있다. 그에게는 합리적인 면과 비합리적인 면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점을 자신의 우주론을 통해서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수학에 기초한 합리적인 측면을 보이는가 하면, 신화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측면을 보이기도 한다.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자로서 그의 모습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서 있다. 이처럼 상반된 두 측면이 피타고라스에게는 혼재되어 있었다. 이는 피타고라스 사후 기원전 5세기 중엽쯤에 피타고라스주의가 두 부류로 분열되어 서로 대립하는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 한 부류는 ‘듣고 따르는 사람들’(akousmatikoi)이고, 다른 한 부류는 ‘학문하는 사람들’(mathmatikoi)이다. 이 두 부류의 입장 차이는, 본문 39에 잘 나타나 있다. 포르퓌리오스의 글에는 역사적 피타고라스가 이미 두 부류를 구분하여 가르친 듯이 언급되어 있는데,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두 부류의 성격을 잘 구분해주고 있다. 두 부류의 대립은 기원전 4세기에 사실상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철학자로서의 피타고라스의 공헌은 우선 수학적 우주론의 싹을 보여주었다는 걸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은 너무 불분명한 상태로 제시되었고, 더욱이 신화적인 요소를 덧붙여 가짐으로써 그 의미가 크게 퇴색되고 말았다. 하긴 수학적 우주론보다는 오히려 피타고라스에게 일차적인 관심사는 종교적, 도덕적인 문제였다. 혼의 불사설과 전이설을 바탕으로 한 그의 철학은 응당 삶의 방식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삶의 방식의창시자가 되었던 것이다. 우주에 대한 관심도 결국은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피타고라스는 다른 자연철학자들처럼 형이상학자라기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ps biteon)' 하는 윤리적 문제에 답을 구하고 실천하는 도덕적 현자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참고문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아카넷
좋은 평가를 담고 있든 아니든, 그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전 시기의 증언들이 비교적 폭넓게 있는 편이다. 이는 곧 그가 상당한 유명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타고라스를 현자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 상반된 평가가 존재하듯이, 그를 합리적인 자연철학자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상반된 평가가 있다. 그에게는 합리적인 면과 비합리적인 면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점을 자신의 우주론을 통해서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수학에 기초한 합리적인 측면을 보이는가 하면, 신화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측면을 보이기도 한다.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자로서 그의 모습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서 있다. 이처럼 상반된 두 측면이 피타고라스에게는 혼재되어 있었다. 이는 피타고라스 사후 기원전 5세기 중엽쯤에 피타고라스주의가 두 부류로 분열되어 서로 대립하는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 한 부류는 ‘듣고 따르는 사람들’(akousmatikoi)이고, 다른 한 부류는 ‘학문하는 사람들’(mathmatikoi)이다. 이 두 부류의 입장 차이는, 본문 39에 잘 나타나 있다. 포르퓌리오스의 글에는 역사적 피타고라스가 이미 두 부류를 구분하여 가르친 듯이 언급되어 있는데,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두 부류의 성격을 잘 구분해주고 있다. 두 부류의 대립은 기원전 4세기에 사실상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철학자로서의 피타고라스의 공헌은 우선 수학적 우주론의 싹을 보여주었다는 걸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은 너무 불분명한 상태로 제시되었고, 더욱이 신화적인 요소를 덧붙여 가짐으로써 그 의미가 크게 퇴색되고 말았다. 하긴 수학적 우주론보다는 오히려 피타고라스에게 일차적인 관심사는 종교적, 도덕적인 문제였다. 혼의 불사설과 전이설을 바탕으로 한 그의 철학은 응당 삶의 방식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삶의 방식의창시자가 되었던 것이다. 우주에 대한 관심도 결국은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피타고라스는 다른 자연철학자들처럼 형이상학자라기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ps biteon)' 하는 윤리적 문제에 답을 구하고 실천하는 도덕적 현자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참고문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아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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