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한일관계사4공통) 18세기(1799년)까지의 한일관계사 사적지관련 최소 5곳이상을 답사하여 해당사적지설명 및 관계된 사건 관련사료 자신의 감상 등을 작성0K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전근대한일관계사4공통) 18세기(1799년)까지의 한일관계사 사적지관련 최소 5곳이상을 답사하여 해당사적지설명 및 관계된 사건 관련사료 자신의 감상 등을 작성0K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부산 경남권 중심의 한일관계사 사적지
1) 자성대
2) 금정산성
3) 합포해전 격전지-마산 앞바다
4) 부산포(증산)
5) 김해의 김해성 전투
2. 5군데 사적지 방문 느낀 점
1) 자성대
2) 금정산성
3) 합포해전- 마산앞바다
4) 부산포(증산)
5) 김해의 김해성 전투

Ⅲ. 결 론 -나의 제언

참고자료

본문내용

군의 손에 넘어가자 일본인들은 자성대 자체를 왜성으로 개조해버렸는가 하면 그 후 조선을 도우러 나온 원나라의 지휘소가 되기도 하고 그리고 한동안 우리수군의 성이었다가 왜정36년간 또 다시 일본군 손에 넘어가는 비운의 성이었다.
세상이 바뀌어 자성대 성벽까지 배가 정박하던 것이 현대문물에 밀려 배는 자성대부두까지 밀려나간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이런 사연을 가진 자성대 성이지만 찾아오는 여행객도 없고 동네주민들의 운동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으니 안타깝다.
2) 금정산성
임진왜란(1592), 병자호란(1636) 이후 국방의식의 고취 왜구 침입에 대한 방어대책으로 성을 쌓았다고 한다. 금전산성의 정상에서 보면 김해와 닉동강 가는 길이 잘 보이고 있어 왜군의 동태를 파악하는데 매우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산성을 쌓으면서 주민들의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열의가 얼마나 대단했다는 것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왜구 침략할 때 정현덕 장군을 포함하여 성문을 굳게 지키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일본군을 무찌른 흔적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3) 합포해전- 마산앞바다
일본군과의 임진왜란에서 합포해전에서 승리한 마산 앞바다를 시찰해 보았다. 통영앞바다의 복사판이라고 할 수 있듯이 물살 완만하고 동서남북으로 산이 감싸고 있어서 양족에서 포위하면 독안에 든 쥐처럼 일본군이 꼼짝하지 못하고 궤멸될 것이 느껴졌다. 합포만의 물은 과거 70년대~80년대에 비하여 물도 굉장히 깨끗하여 평화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민들은 곳곳에서 낚시질르 하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수군들이 일본군을 무찌르고 나라를 수호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4) 부산포(증산)
부산 지방은 선조 25년 (1592) 4월에 왜란이 일어난 때로부터 선조 31년(1598) 11월에 일본군이 완전히 철수함으로써 왜란이 끝날 때까지 약 7년간에 걸쳐 시종 일관 일본군의 점령 아래 놓여 있었다. 따라서 부산 지방은 전국의 어느 지방보다도 전란의 피해가 가장 많았고, 또 당시의 전란에 얽힌 전설과 전화의 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선 부산은 전쟁의 발발과 함께 일본군의 상륙 지점이 되어 임진란의 첫 싸움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인 곳이었다. 그러므로 부산 첨사용, 다대 첨사영, 경상 좌수영의 건물들이 모조리 소실, 파괴되었고, 동래읍에서는 부사가 집무하던 동헌을 비롯하여 객사, 정원루, 향교 및 허다한 청사, 관해, 창고 등이 불타 버렸으며, 일본군의 살인, 방화와 약탈로 말미암아 동래읍은 거의 폐허처럼 되고 말았다. 또한 일본군은 신라 이래 오랜 전통을 가진 범어사를 비롯하여 금정산, 황령산 등에 있었던 크고 작은 사찰에 불을 놓았으므로 사찰 중심의 귀중한 불교 문화재가 죄다 타 없어져 버렸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일본군이 임진란의 거점지역으로 부산포를 중심으로 정하였다. 이는 곧 일본군의 피해가 가장 많은 곳이 부산의 백성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부산포를 답사하면서 그때 당시 부산시민들의 고초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희생과 단합이 없엇으면 과연 우리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깊이 생각해보니 부산백성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5) 김해의 김해성 전투
김해는 부산 바로 인접한 도시로서 마산을 가기위한 군사적인 요충지라고 볼 수 있다. 일본군의 잦은 침략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피해가 극심해지자 김해부사인 박위가 일본군을 무찌르기도 하였으며, 네 의병장 김득기(金得器), 송빈(宋賓), 유식(柳湜), 이대형(李大亨)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표충사가 있다. 이 또한 일본군을 무지른 장수 포함 신하들의 넋을 기리지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표충사를 건립하여 충(忠)사상을 후세에게 전하는 것은 살아있는 역사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역사관을 후세에게 전하여 두 번 다시 일본에 의하여 국권을 찬탈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을 이번과제 수행을 통해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Ⅲ. 결 론 -나의 제언
이상과 같이 일본군이 우리나라를 처 들어온 유적지를 중심으로 5군대를 살펴보았다. 이 과제물을 작성하면서 느낀점은 왜 우리나라는 일본군의 침략을 받고 계속 많은 백성이 일본군에게 희생을 당해야 하는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역으로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일본군을 쳐들어가 그들을 섬멸시키는 것이 자위권적인 차원에서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한민족 자체가 근본이 바른 어진나라로서 자위권 적인 차원에서 방어를 했을 뿐 직접 일본나라를 정벌하지 않는 민족으로 보인다.
과거역사를 돌이켜 보면 노략질을 하고 나른 나라를 괴롭힌 민족치고 장래, 미래가 보장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따라서 일본의 경우 침략질을 일삼고 있어서 앞으로 전망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일본이 망할 기미가 보이는 것으로 자꾸 화산, 지진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일본열도가 일번에 몇 센티씩 바닷물에 잠기고 있다고 한다.
갈수록 희망이 없는 국가로 나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에 비하염 한국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볼 수 있다. IT강국으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으며, 줄기세포를 포함한 의약분야의 눈부신 발전과 제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맞춰 꾸준히 발전하고 있어 21세기는 한민족에 의하여 전세계사를 이끌어나가는 주역으로 급성장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
항상 하느님을 섬기고 윤리도덕을 숭상하며, 예의바른 천손민족으로서 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살았기 때문에 하늘에서 큰 대복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잊혀진 전쟁 왜구. 이영 저/ 에피스테메/ 2007년)
-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3』, 인물과 사상사, 2007
-강영환 외 19명, 『한국사 51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국사편찬위원회, 2001
-김형목, 「한말 김광제의 현실인식과 계몽운동사상 역할」,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2
-박찬승, 『한국근대 정치사상사연구』, 역사비평사, 2001
-「잊혀진 전쟁 왜구」이영 저/ 에피스테메/ 2007년
-이지영, 「한말 국가의 개혁사업과 농민항쟁의 성격변화」, 연세대학교 대학원, 2002
  • 가격8,7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7.09.26
  • 저작시기2019.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3488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