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신라의 세계관으로 본 국내외 정세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전성기 신라의 세계관으로 본 국내외 정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본론
1. 전륜성왕의식으로 본 국내정세
2. 호국불교로 본 대외정세
3.지증왕 대의 국내외정세
4.법흥왕 대의 국내외정세
5.진흥왕 대의 국내외정세
6.진덕왕 대의 국내외 정세
Ⅲ. 나오는 말

본문내용

제후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원칙적으로 제후국은 만들지 못한다.
을 반포하지 않았으므로 날짜를 헤아리고 농사 짓는 때를 알려고 선조 법흥왕 이래로 사사로이 연호를 기록한 일이 있었건만 만약 대국에서 못 쓰게 하는 명령이 있다면 저희 나라에서 어찌 감히 그렇게 하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삼국사기』「고구려 본기」, 보장왕 7년
한질허의 대답은 사실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신라가 중국에 사신을 보낸 수가 얼마나 많은데 정삭을 받지 못해 연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정말로 정삭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독자 연호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사신을 보내어 정삭을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라의 당시 상황이 진덕왕 즉위 이후로부터 비담의 난이나 백제의 지속적인 공세로 인하여 급박한 지경에 이르렀고 설상가상으로 고구려가 가세하여 신라를 공격하면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판단까지 나올 정도로 급박해지자 태도가 달라지게 된다. 김춘추는 당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신라의 휘장과 복식을 당의 것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하고 한질허는 신라의 연호를 버리고 당의 연호를 사용할 것을 약속하게 된다.
신라가 예전보다는 성장하였다고는 하나 당시에는 백제의 강력한 반격과 고구려의 침공이 있을지도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 마지막으로 찾아낸 수단이 당나라였던 것이다. 당에 대한 진덕왕 대의 외교 정책을 굴욕적이거나 종속적인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전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무조건 신라가 그러한 자세를 취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Ⅲ.나오는 말
이상으로 간략하게 신라의 대표적 전성기와 이후의 대외관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세계관이나 사상에 따라 국가 정책 등이 흘러가기도 하지만 현실의 압박이 있을 때에는 세계관을 따르는 방향의 억제 등도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국가 전체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는 세계관이란 역시 반드시 알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이종국,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김영사, 2000
박영규, 『신라 왕조실록』, 웅진닷컴, 2001
김기흥, 『제왕의 리더십』, 휴머니승, 2007
김기흥, 『천년의 왕국 신라』, 창작과 비평사, 2000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고대로부터의 통신:금석문으로 한국 고대사 읽기 』
윤대운, 『 한국 고대무역사 연구』, 景人文化社, 2007
www.naver.com
  • 가격1,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7.10.17
  • 저작시기2017.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3608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