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연구] 공산주의 이론과 공산주의 운동사적 배경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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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연구] 공산주의 이론과 공산주의 운동사적 배경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사회주의·공산주의의 개념과 역사
1) 개념 2) 역사
2. 사회주의·공산주의의 기본 원리
1) 집단주의 2) 공유재산제도 3) 평등주의 4) 계급주의
3.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이론적 유형
1) 공상적 사회주의 2)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3) 마르크스-레닌주의
4. 공산주의 운동사적 배경
1) 소련 2) 중국 3) 북한
Ⅲ 결론

본문내용

소련 공산당원이라기보다 그 당시 점령지역 공산화와 관련하여 합당한 대리 관리자를 선택하는 기준에 의해 선발된 인물이었다. 해방 당시 북한 지역에서는 민족해방 투쟁 경력을 지닌 여러 좌익세력이 분화된 산태로 존재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 건설 초기 조선로동당의 권력구조는 다양한 세력을 당 구조 속에 하나로 묶는 정치 연합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한편 해방 당시 북한에서 세력이 강한 정치세력으로는 주로 민족주의적인 인사와 기독교도의 조직을 바탕으로 한 조만식 중심의 민족주의 세력이었는데, 이는 소련의 북한 소비에트화 계획에 따라 얼마 가지 못하고 세력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북한 지도부에는 출신에 따른 4개의 세력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즉 ‘국내파’, ‘연안파’, ‘소련파’, ‘빨찌산파’가 그 예이다. ‘국내파’는 일제하 국내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며 그 활동은 활발한 편이 못되었다. ‘연안파’는 일제하 중국의 연안지방을 중심으로 중국공산당 아래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던 세력을 말한다. ‘소련파’는 소련군 사령부가 북한에서 정책 추진에 활용하기 위해 1945년 가을 북한에 파견한 다수의 소련 국적 한인들이 속해있었다. ‘빨찌산파’는 김일성 중심으로 만주와 조·중 국경지방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빨찌산 운동 참가자들이 속해 있었는데, 일명 ‘만주파’, ‘갑산파’라고 부른다. 이러한 4개의 파들은 나름대로 인정하는 지도자들을 갖고 있었으며, 각 정파들은 처음부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소련 군용 화물열차에 실려 온 공산정권’의 역할을 주도한 사람은 당시 북한지역 점령군 사령관인 로마넨코 소장이었다. 그는 평양에 있던 건국준비위원회 평남 지부와 조선공산당 평남지부를 통합하여 ‘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유사한 단체들이 북한의 나머지 4개도에도 조직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당시에 소련군 점령 하에 있던 북한지역에서는 소련 점령군 지원을 받은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1945년 10월 13일에 설치된다. 당시 소련점령군의 초미 관심사는 소련에 충성하는 공산당을 효율적으로 조직하는 문제였다. 이런 즈음 같은 해 12월 소련 군정의 뜻에 따라서 소련군을 따라 들어온 33세의 김일성을 책임 비서로 선출하고 조선공산당 중앙은 서울에, 분국은 평양에 두게 되었다. 그에 따라 ‘북조선 분국’은 1946년 ‘북조선로동당’으로 개칭하였으며 공산당 일당 지배를 위한 내적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강력한 중앙통치기구를 계획하게 된다. 그 후 1948년 남북한에 각기 독자적인 정부가 수립되고 남한 내에서 공산당 활동이 불법화되자 남로당 계열이 북한으로 옮기게 됨으로써, 1948년 2월 8일에는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으며 4월 29일에는 북조선 인민회의 특별회의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헌법 초안을 승인하고, 9월 9일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창설함으로써 건당, 건군, 건국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49년 6월에는 평양에서 남북한 노동당이 합당, ‘조선로동당’이 결성되면서 후속적으로 북한의 ‘조선로동당’이 공식적으로 창당되었고 노동당 중앙위원장에는 김일성이 선출됨으로써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는 북한에서의 노동당의 지도체제가 일단락 정리되었다.
그 후 북한에서 1인 지배체제를 확립한 김일성은 통치이념으로 ‘주체사상’을 내세웠고 이것은 현재까지 북한체제를 주도하는 기본 이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김일성체제에 대한 충성 이외의 의견은 모두 봉쇄되어 사상적으로 획일화되고, 김일성을 경배하는 정치문화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근간으로 만들어졌으며, 김일성 지배체제의 정당화의 편의를 위해 남한과 미제국주의자를 계급의 적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이념적 배경을 안고 출발한 북한체제는 50여년의 통치기간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로서는 특이한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의 통치 엘리트들은 1960년대 후반 이래 1970년대 중반까지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창조적 발전 형태’로서 유지해나갔다. 즉 1972년 12월 27일에 개정된 북한 사회주의헌법 제4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조선로동당의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당의 유일사상이 바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임을 명확히 하는 단계를 밟게 된다. 더욱이 이러한 ‘탈마르크스·레닌주의화’경향은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노동당 규약과 1992년에 개정된 헌법의 지도사상 관련조항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언급을 삭제함으로써 더욱 분명해진다.
결론
이상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이론과 운동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 레포트를 준비하면서 사회주의·공산주의는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악덕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이데올로기라도 그 당시 사회의 분위기, 민중들의 바람이 반영되어 있으며,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의 사상이 전개되기까지는 당시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비판 정신, 더 나은 사회로의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공산주의 또한 그러한 맑은 정신으로부터 나온 사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개 과정에서 그 정신이 퇴색되어 버리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만약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이념 그대로 실행되었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의 사상과 소련, 중국, 북한의 공산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게 된 것 같다. 여러 서적을 찾아보고 인터넷을 검색해봄으로써 북한연구의 바탕을 쌓아놓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앞으로 더 공부하게 될 북한은 앞으로 어떤 사상을 전개해 나갈지 궁금하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공부해가고 싶다.
<참고문헌>
- 김용대 외. 북한의 정치와 사회&통일. 경상대학교출판부. 2007
- 박민영. ISM. 청년사. 2009
- 이명남. 현대 정치 이데올로기. 전남대학교출판부. 2004
- 이은봉 외. 현대사조의 실상과 허상. 형설출판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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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7.11.04
  • 저작시기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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