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물류운송론] 세계 해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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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제물류운송론] 세계 해운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고대해운사
1) 이집트의 해상무역
2) 페니키아의 해상무역
3) 그리스의 해상무역
4) 로마제국의 해상무역
2. 중세해운사
1) 지중해 도시국가의 부흥과 동방무역독점
2)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북유럽무역
3. 근대해운사
1) 포르투갈의 동인도 무역 
2) 스페인의 서인도 무역 
3) 네덜란드의 세계 무역
4) 영국의 대양항로 진출
5) 유럽열강간의 투쟁과 영국의 승리 
4. 최근세 해운사
1) 증기선의 발명
2) 정기여객선 시대 
3) 범선의 쇠퇴와 몰락
5. 현대 해운사
1) 1차 세계대전이후 해운사
2) 카르텔의 역사
3) VLCC 역사
4) 컨테이너선의 역사
6. 결론

본문내용

중선체의탱커가의무화되어,이에맞추어건조한일부선박을제외한다면거의모든VLCC는이기간에건조되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 그러나호사다마라고1973년의1차오일쇼크와1979년의2차오일쇼크는석유수요를급격하게감소시켰다.그럼에도불구하고이미주문되어건조중이던VLCC는계속해서시장으로흘러들어오면서VLCC의수요와공급간에심한불균형을초래하게되었다.VLCC의운임은계선점이하로급락하였으며,많은탱커오너들이도산하거나경영에치명적인손상을입게되었다.이것이정상으로회복된것은거의20여년의세월이흐른1990년대에들어서라고할수있다.이런과정에서현대조선의신화가나왔고,VLCC의건조과정에서선주의무조건적인인수거부로인한사태의수습과정에서현대상선이탄생하는전화위복의계기가마련되는등우리해운사에서도결코잊을수없는역사이기도하다.
4) 컨테이너선의등장
재래형의상선에도기술혁신은일어났다.이부분에서는대형화보다는화물의적양하및운송시스템의변화에중점이두어졌다.이변화의기원은이차대전중에일어났는바,특히노르만디상륙작전에서돋보였다.이노르만디상륙작전에서대량의인원과군수물자를운송하고상륙하기위하여여러가지방법이총동원되었다.전후에는상당기간동안해운업계에서는이런새로운방식을외면한째재래식운송방법에의존하였으나,1950년대에들어서면서전시중에채택하였던이방식이다시상선경영에도입되게되었다.
이런응용중많은것은전후의미국에서이루어졌다.여기서는신참자가새로운아이디어를도입하여실험할수있는기회가주어졌다.그중에서도가장큰영향을준것은팬아틀랜틱기선회사의창시자인말콤맥린이었다.그는해운업에입문하기전에트럭운송회사의소유자였다.그는1956년에‘트럭,선박통합화물운송실험’비슷한것을시도하였다.기본적으로는이실험은아주단순한것이다.제이차세계대전때건조하였던탱커를개조한선박인‘아이디얼X'라는선박의갑판에다가많은금속제상자(이것이컨테이너다)를나란히싣고운항하는것이다.이선박은1956년4월26일에뉴욕옆에있는뉴워크항을출항하여휴스턴으로향하였다.이출항을눈여겨본사람은많지않았지만이출항은세계해운계의혁명을불러올신호탄이었다. ‘아이디얼X’는바로컨테이너혁명의효시였다.이선박이제공한설계개념을도입한‘게이트웨이시티’가준비되었다.이선박도탱커를개조한것이나,이선박은갑판위뿐만아니라선실안에도컨테이너를적재할수있도록한최초의풀컨테이너선박이었다.이선박은소구획적재라는근대컨테이너선의기본적인특징을많이갖추고있었다.그후컨테이너화가급속하게진전되었다.10년이못되어대형정기선사들은보유하고있는선박을컨테이너선으로개조할것인가아니면새로건조할것인가를결정해야했다.세계해운업계가이런단시간동안에이런정도의급격한변화를강요당한일은일찍이없었다.세계의유수한항만들도이런국제해운계의새로운추세를받아들이기위하여시설장비는물론운영제도전반을재검토하지않을수없게되었다. 이런기술혁신의대강은약25년간이라는짧은기간동안에이루어졌다.매일수십만개의컨테이너에프랑스남부해안지방에서생산되는고급포도주로부터홍콩의전자제품에이르기까지전세계의모든상품들이세계도처로운송되면서지구촌경제를활성화시키고있는것이다.무역규모가커지면서경쟁도격화되었다.격렬한경쟁속에서살아남기위해서는선박을효율적으로운항하지않을수없다.
6. 결론
중국말에 온고이지신이라고 있다, 이는 한국의 온고지신과 같은 뜻으로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가 존재한다는 말로 역자학자 카아의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끝임 없는 대화와 일맥상통한다. 그러하다. 현재는 역사를 보며 돌아간다. 위의 해운의 역사가 현재와 비교하였을 때 역사는 역사가 된다.
이번 발표주제는 해운의 역사이다. 이 역시 현재를 보기위해 역사를 보듯 해운을 보기위해 해운의 역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위의 자료내용이 그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다. 맨 처음 고대 이집트의 경우 나일강 유역의 옥토로 인해 국가가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위의 내용과 같이 전성기의이집트에서강력한상선대를보유하고무역을 지배함으로써만강력한국력을유지할수있다는사실을지적하였다.그리고상선대의쇠퇴는바로의국가의쇠퇴로연결됨을지적하고있다.웨나몬의이이야기는3000년 전의한상인에의하여,한나라의번영과상선대의유지가얼마나밀접한관계를가지고있는가를설파한좋은경고로받아들여진다.
또한 페니키아인들의 멸망역시 그리스에게 해상권을 뺏김에 기인하고 있음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위의 자료에서 본 듯이 전쟁에 있어서 영토전보다 더욱더 중요한 것이 해상권에 대한 전쟁임을 알 수 있다. 영토전의 경우 일부 영토만 빼앗기는 걸로 끝나지만 해상권 전쟁에서 질 경우 그 국가의 성쇠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위 내용을 보아서도 그리스 스페인 네델란드, 영국등 영토전쟁이 아닌 해상권에 대하여 전쟁을 많이 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해상권력에 대한 전쟁의 승리자가 천하를 호령한다는 역사적 사실에 있다.
특히 네델란드의 경우 주위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네델란드는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사회기반사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해상권의 도전으로 유럽대륙의 3%되지 않는 땅의 국가가 당시 유럽을 제패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네델란드와 너무 닮은 우리나라에게 공통의 화두를 제시하게 해준다.
또한 고대 페니키아인들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 페니키아인들의 경우 사는 곳이 산맥과 협곡 사이에 위치한 곳이 여서 농경이 불가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식량사정은 매우 좋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페니키아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해운으로 지중해에서 가장 잘 먹고, 잘사는 국가가 되고 만다.
이러한 사실 등은 우리한테 많은 시사점을 일깨워준다.
한국역시 무엇하나 풍부한 자원이 없다. 또한 네델란드와 같이 식민사회를 겪었고 또한 전쟁까지 겪었다. 그렇기에 사회기반이라는 것이 남아있을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해운의 역사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세계해운력을 장악하는 일이다. 한국은 땅이 좁다. 전 세계 1%정도 되는 크기의 땅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OECD 13위 국가이다. 한국의 많은 산업이 무역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기에 1%도 안 되는 좁은 땅덩이가 전 세계13위의 경제국가로 떠오를 수가 있었다.
한국해양대 오거돈 총장의 총장실에는 바다와 육지가 바뀐 지도가 걸려있고 그 밑에는 우리에겐 ‘바다가 육지다’라는 문구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위 모든 해운의 역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국이 나아가야 할길, 즉 해상운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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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7.11.05
  • 저작시기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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