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국공합작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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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2차 국공합작에 대해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2차 국공내전의 전개과정
가. 국공합작의 결렬과 국공내전의 발발
나. 공산당의 3대 전투
다. 옌시산의 몰락
라. 양쯔강 도하
마.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바. 국공내전의 의의
사. 참고문헌

본문내용

되어야 하였으며, 부정부패가 없어야 했다. 결국 이것이 불가능한 시점에서의 국공내전은 장제스의 참패로 결론이 확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바-1. 아시아 공산블록의 확대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중국의 전역을 완전하게 차지하고 주변국들의 공산당 세력들을 지원함으로써 아시아의 공산블록이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효과를 얻었다. 공산블록의 대대적인 강화의 효과로 대표적인 것은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사에서 6.25 전쟁의 시작으로 휴전과 한반도의 분단을 생각해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제 2차 국공내전 재개 이전부터 한반도는 나누어져 38선을 그은 상태였지만 북한의 김일성은 한반도의 무력통일을 계속 꿈꾸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소련의 큰 영향력의 행사였다.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에게 남침을 계속해서 주장하였지만 스탈린은 김일성의 주장을 국공내전이 끝나기 전에는 계속해서 무시해왔다. 또한 북한은 소련이 기획했던 대로 중국을 통제하기 위해서 간도와 동만주~남만주 일대를 흡수하려고 했다. 이 사건 역시 북한에게는 체제대립에서 정통성을 과시하려고 무력통일을 기도할 명분이 되었다. 「국공내전아시아 공산블록의 대확대」 나무위키 2017-11-03
https://namu.wiki/w/%EA%B5%AD%EA%B3%B5%EB%82%B4%EC%A0%84#s-5.1 2017년 11월 11일 접속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를 하자 김일성은 남한을 침공하는데 있어 전혀 두려움이 없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자신감을 가지면서 인민군을 이끌고 이승만을 무너뜨려 무력통일을 가능하다고 믿게 만들었다. 북한을 건국한 주역들은 대부분 중국의 공산당과 깊은 연관을 맺은 사이였기에 북한 정부를 수립한 이후에는 아예 대놓고 중국의 공산당을 지원하였으며, 국공내전을 통하여 북한의 조선인민국 역시 풍부한 전투 경험으로 남한과의 싸움에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한 것이 문제가 제기 된다면 이것으로 인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은 한반도에 병력을 지원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가 생기기에 가능 하였던 것이다.
또한 국공내전은 한반도 외에도 베트남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이후에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승인하였는데 이것은 소련보다 먼저 승인한 것이다. 이는 호찌민이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와 인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때 베트남은 중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 사실상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의 승리는 베트남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이다. 이에 프랑스 또한 중국의 공산당을 자극하는 것을 자제하기 위하여 국공 내전의 시기에는 국민당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1949년에 인민해방군이 중월 국경 지역까지 장악하자 국민당의 군이 후퇴해서 베트남으로 들어왔는데, 프랑스는 인민해방군의 베트남 진입을 우려해서 이들을 무장 해제하였다. 이처럼 중국의 지원 덕분에 베트민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국공내전아시아 공산블록의 대확대」 나무위키 2017-11-03
https://namu.wiki/w/%EA%B5%AD%EA%B3%B5%EB%82%B4%EC%A0%84#s-5.1 2017년 11월 11일 접속
바-2. 구 체제의 청산과 현대 동아시아 체제의 완성
한반도와 중국에서의 전쟁 이후에는 모두 구 체제는 완벽하게 청산되었으며, 지금의 국민국가를 건국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의 초반에는 내전의 성격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지만 국공내전과 함께 6.25전쟁까지 모두 끝나자 결국 한국과 중국 모두 국민들을 남한과 북한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으로 구분 짓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한반도와 중국은 분단의 국가와 국민 국가를 성립하였다. 이것은 아시아에서의 제 2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인 1950년대를 시작으로 현대로 취급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며 장제스의 중국과 함께 한반도의 일제 시대를 근대 국가로 보지 않는다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하여 중국과 북한의 국경은 조중 변계 조약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때 정해진 국경선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공내전 이후 북한은 소련의지지 아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간도와 만주 지역의 일부에 대하여 중국에게 더 이상 영유권을 주장 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또한 백두산의 국경 문제에서는 대한제국의 주장대로 따르면서 기존에 정해진 국경선을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바-3. 공산권 세력 판도의 변화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의 영향으로 결과적으로 중국의 공산화가 공산권 세력에게 판도의 변화를 가져왔다. 공산당의 공산화 초기의 중국은 소련을 존중하고 있었지만 점차 중국과 소련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국력만 놓고 보아도 중국은 사실 더 이상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기에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토 면적은 소련이 다른 공산 국가들을 모두 합친 크기보다도 큰 면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구수는 중국을 이길 수 없었다. 그 당시는 지금과는 다르게 병력에서 무기보다도 인구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기였기에 인구수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던 시기이다. 또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공산당의 나라들의 대부분은 소련에 의하여 세워졌지만 중국은 소련의 지원이 조금은 있었지만 나라 안에서 자체적으로 중국의 공산당의 주도로 혁명을 일으켜 세워졌기 때문에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결국, 중국은 스스로 공산 국가로 건국, 재탄생하고 이후 중-소 갈등이 본격화가 되면서 공산권의 세력 판도는 기존의 소련 1강 체제에서 중-소 양강 구도의 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국공내전공산권 세력 판도의 변화」 나무위키 2017-11-03 2017 11월 11일 접속
https://namu.wiki/w/%EA%B5%AD%EA%B3%B5%EB%82%B4%EC%A0%84#s-5.3
사. 참고문헌
「국공내전」 나무위키 2017-11-03
https://namu.wiki/w/%EA%B5%AD%EA%B3%B5%EB%82%B4%EC%A0%84
안정애 지음, 『중국사 다이제스트 100』, 가람기획, 2012
  • 가격2,8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7.12.05
  • 저작시기2017.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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