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남아있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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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남아있는 나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원하는 인물을 갖는 것은 적절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직업적인 영역에서 위험할 지도 모르고, 정말로 그를 다치게 할 수 있는 감정의 일부를 사실상 지우려고 애쓰는 누군가에 대한 강한 상징이 되기 위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스티븐스는 과거에 대하여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또한 그러한 기억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과거를 자기 견해로 재해석하고는 있지만 그것의 원인이 지난날의 감정에 대한 억압에서 비롯된 것을 간과해서 안 될 것이다. 스티븐스는 철저히 개인적 감정을 억누르고 감추고 부정하고 살아왔으며 그것이 현재의 그를 있게 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기억의 재해석은 과거에 대한 상실감이나 실패에 대한정당화의 수단이 되고, 지난날에 대한 후회를 감추는 자신만의 방식이 되어온 것이며 이는 곧 자기 위안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스티븐스의 다양한 자기기만적 모습은 특정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모습을 대변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여기서 더 심도 있는 질문을 제기한다. 즉, 작품 속 주인공들을 통해 중대한 역사적 상황에서의 개인의 책임감에 대한 통찰을 해보고자 한 것이다. 남아있는 나날』의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 대전 후의 독일 정권과 다른 유럽 나라들과의 관계가 대두되던 시대이다. 따라서 달링턴 저택에서 영국의 총리와 외무 장관 그리고 독일의 대사인 리벤드로프(Ribbentrop)이 회동을 갖는 다는 설정은 역사적 도구로서의 상황으로 보인다. 스티븐스의 주인인 달링턴 경은 독일인인 친구가 전쟁 당시 죽은 후로, 히틀러 정부였던 독일에게 유독 관대하게 되었다. 당시 종전 후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은 독일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달링턴경의 독일에 대한 관대함은 점점 맹목적으로 기울었고, 결국 그는 영국과 독일의 은밀한 회담을 주선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눈총을 사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달링턴 경이 오늘날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된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주인을 모시는 집사 스티븐스는 그저 자신의 소임을 다 하는 것만이 최선이라 믿고 있다. 젊은 카디날 경(the young Mr. Cardinal)은 스티븐스의 맹목적인 직업 정신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또 다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카디날 경은 달링턴 경의 대자(代子)로, 달링턴 경과 독일 대사들 사이의 다소 위험한 친교 관계를 걱정하여 은밀한 회동이 있는 날밤 달링턴 홀에 방문한다. 그리고 그는 스티븐스와의 대화에서 달링턴 경에 대한 그의 맹목적인 신뢰를 ‘무관심’ 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무런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아니오, 스티븐스. 당신은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겁니다. 관심조차 없었던 거예요.” 스티븐스는 자기 직임으로 마땅하지 않다(RD 222)는 이유로 ‘모른다’라는 말로 일관하거나 혹은 “주인어른께서 옳고 영예로운 일 외에는 결코 관여하시지 않는다고 확신한다(I cannot see that his lordship is doing anything other than that which is highest and noblest)”(RD 249) 라며 맹목적인 신뢰만을 보이고 있다. 수지 오브라이언(Susie O'Brien)은 스티븐스가 작품에서 이야기 하는 내내 아이러니하게도 단 한 번도 식민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식민에 대한 향수를 품은 채 그것의 병적인 측면을 이야기한다고 설명한다.
즉 스티븐스 스스로 직업적 소임을 내세워 식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과 ‘집사’라는 계급 이전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그리고 역사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는 스스로 사고하거나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는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스티븐스의 모습은 역사적 상황에서 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임 무에만 충실한 것이 진정으로 ‘책임감’이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따라서 스티븐스의 행동은 오히려 ‘무엇이 진정한 책임감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각각의 개인이 결국은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일원이라는 점에서 공동의 역사의 책임은 개인 모두에게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개인의 역사 하나하나는 나아가 공동의 역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스티븐스 개인의 역사의 진실을 일부 부인하지 않은 채로는 공동의 역사를 같은 기간으로 보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스티븐스는 개인의 생각, 개인의 의견, 개인의 사랑을 모두 부인하고 부정하고 사는 것만이 ‘진정한 집사’로서의 삶에 충실한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삶만을 자신의 ‘위대한 집사’로서의 삶으로 인정하려는 것이다. “스티븐스의 직업정신은 연애, 결혼 그리고 개인적 관심사와 같이 삶의 혼란스러운 측면들을 차단하기 위한 변명이라고 한 이합 핫산(Ihab Hassan) 말처럼,『남아있는 나날』은 스티븐스를 통하여 왜곡된 직업정신을 통찰하고 있는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아있는 나날』은 독자로 하여금 스티븐스가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최선을 생각해보게 함으로써 그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진정한 ‘책임감’이 무엇인가를 더욱 깊이 있게 모색하게 한다. 나아가 이것은 이시구로가 작가로서 갖고 있는 인간본연의 모습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통찰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남아있는 나날』에서 스티븐스를 통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자기기만적 요소들과 역사적으로 중대한 상황에 처한 개인이 자신의 책임감이나 임무로 인해 고민하는 모습은 사실 바로 전 작품인 『떠도는 세상의 예술가』(An Artist of the Floating World)의 오노(Ono)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이시구로가 인간 본질에 대한 관심이 전부터 계속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편성, 즉 시대와 국가와 상관없이 인간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떠한 행동을 하고 어떠한 사고를 하는가를 알 수 있으며, 이는 또한 일본 태생인 이시구로 역시 결국은 영국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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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7.12.19
  • 저작시기2017.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4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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