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다. 하지만 어떤 이해 불가능한 자연적 현상이더라도 인간은 항상 그것을 narrative하게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 가능한 이야기구조로 가공해왔다.
신경과학에서는 물리학을 접목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사이비, 비주류과학에 불과해 보인다. ‘퀀텀 브레인’책의 한 서평에서는 ‘이런 것 읽기 전에 정통 신경과학 서적이나 먼저 읽으시죠.\' 란 댓글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말이 맞다. 기존의 널리 인정받는 이론들을 습득하지 않고 혼자서 완전히 소설을 쓰고 있을 수 있을 순 없지 않는가? 어떤 현상에 대해 기존과 다른 프레임으로 해석하기 전엔 먼저 기존의 프레임과 그에 대한 문제 상황을 이해해야한다.
(그림5 - 맥스웰-볼츠만 분포, 입자속도의 확률분포)
자의식이 세포의 내적인 움직임이라 하는 것이 신경학의 입장이지만 사실 자의식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에 세포의 구조는 너무 거시적이라 한다. 양자적 요동이 자의식을 만든다는 해석이 있다. 예를 들어 카오스 계에서는 이런 아주 미세한 변화가 증폭되어 결과적으로는 미시적인 상태의 변화에 따라서 그에 따른 결과들은 서로 아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런 미시적인 변화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늘 쬐고 있는 태양빛도 사실 이런 미시적인 변화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입자속도의 확률분포 표를 보면 대부분의 입자는 비교적 낮은 속도에서 높은 확률로 모여 있지만 확률분포의 오른쪽 꼬리 쪽에서는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까운 입자들도 존재한다. 음극은 음극과, 양극은 양극과 척력이 작용하는 것이 이치지만 꼬리 쪽의 높은 에너지를 가진 양성자는 다른 양성자의 전기력에 의해 발생하는 척력을 이겨내고 매우 가까이 근접해 핵력을 발생시킨다. 이때 양성자가 핵반응을 일으키면서 주변의 입자들에게 까지 높은 에너지를 전달하여 연쇄적인 핵반응이 일어나도록 유도되는 것이다. 그렇게 태양은 빛을 내고 지구의 생명들은 이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이렇게 양자규모의 미시적인 변화가 거시적인 변화로 증폭되는 메커니즘이 인간의 자의식에도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물음들에 여러 과학자들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6-
그러나 행복의 문제에 관해서면 꼭 인간의 이 모든 것을 빠삭하게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시 이러한 과학적 이해를 통해 인간이 그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욱 잘 느끼게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신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성의 복권으로 특징짓는 르네상스의 시대에서는 사람들은 지금껏 경험 못한 심각한 내적인 존재갈등을 겪게 되었다. 이성이 진리를 규명하는 그러한 시대에서 지상에서의 아름다운 선행과 죽음 뒤의 멋진 내세의 생활을 보장하는 그런 종교적 교리들이 다 뜬금없는 헛소리에 불과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지 신 중심 사고관에서 벗어난 인간들은 그런 삶의 근본적 동기에 관한 문제들을 다시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규명해 나가야 했다.
(그림6 - 산비둘기)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특징은 호기심이다 그들은 알기를 원한다. 언제 산을 내려오다가 어떤 여자꼬마와 마주쳤다. 그 꼬마는 대뜸 나에게 배꼽인사를 하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참으로 예의바른 아이다. 그 때 그 옆으로는 비둘기가 날아갔다. 꼬마는 같이 있던 동생과 비둘기를 보며 ‘저게 무슨 새에요?’하고 묻는다. 나는 친절히 ‘저건 까마귀야’하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돌아서 가려는데 꼬마가 저것이 까마귀라는 것을 못 믿겠는지 같이 있던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할머니 저거 까마귀야?’
‘저게 무슨 까마귀야? 저건 비둘기야 비둘기’
‘저 아저씨가 비둘기보고 까마귀랬어’
그리고 그 두 꼬마는 ‘까마귀다 까마귀!’하면서 까악 까악 시끄럽게 울어댔다.
비둘기가 비둘기면 어떻고 비둘기가 까마귀면 어떻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산비둘기라서 일반 길가의 비둘기와는 달리 갈색빛 깃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꼬마들은 이미 비둘기를 알고 있었지만 저 비둘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색깔은 전혀 다른 것에 대해서 이해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까마귀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던 꼬마로서는 내가 비둘기 보고 까마귀라고 한 것을 자신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비둘기인지 아닌지는 헷갈리지만 까마귀는 확실히 아니라는 것이 꼬마의 결론이다.
사람들은 자꾸 묻는다. 인간이 뭔지 자아가 뭔지 갈색비둘기는 왠지 비둘기가 아닌 것 같다. 비둘기는 회색이었는데... 그래도 저건 확실히 까마귀는 아니야.
신경과학에서는 물리학을 접목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사이비, 비주류과학에 불과해 보인다. ‘퀀텀 브레인’책의 한 서평에서는 ‘이런 것 읽기 전에 정통 신경과학 서적이나 먼저 읽으시죠.\' 란 댓글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말이 맞다. 기존의 널리 인정받는 이론들을 습득하지 않고 혼자서 완전히 소설을 쓰고 있을 수 있을 순 없지 않는가? 어떤 현상에 대해 기존과 다른 프레임으로 해석하기 전엔 먼저 기존의 프레임과 그에 대한 문제 상황을 이해해야한다.
(그림5 - 맥스웰-볼츠만 분포, 입자속도의 확률분포)
자의식이 세포의 내적인 움직임이라 하는 것이 신경학의 입장이지만 사실 자의식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에 세포의 구조는 너무 거시적이라 한다. 양자적 요동이 자의식을 만든다는 해석이 있다. 예를 들어 카오스 계에서는 이런 아주 미세한 변화가 증폭되어 결과적으로는 미시적인 상태의 변화에 따라서 그에 따른 결과들은 서로 아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런 미시적인 변화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늘 쬐고 있는 태양빛도 사실 이런 미시적인 변화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입자속도의 확률분포 표를 보면 대부분의 입자는 비교적 낮은 속도에서 높은 확률로 모여 있지만 확률분포의 오른쪽 꼬리 쪽에서는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까운 입자들도 존재한다. 음극은 음극과, 양극은 양극과 척력이 작용하는 것이 이치지만 꼬리 쪽의 높은 에너지를 가진 양성자는 다른 양성자의 전기력에 의해 발생하는 척력을 이겨내고 매우 가까이 근접해 핵력을 발생시킨다. 이때 양성자가 핵반응을 일으키면서 주변의 입자들에게 까지 높은 에너지를 전달하여 연쇄적인 핵반응이 일어나도록 유도되는 것이다. 그렇게 태양은 빛을 내고 지구의 생명들은 이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이렇게 양자규모의 미시적인 변화가 거시적인 변화로 증폭되는 메커니즘이 인간의 자의식에도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물음들에 여러 과학자들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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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행복의 문제에 관해서면 꼭 인간의 이 모든 것을 빠삭하게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시 이러한 과학적 이해를 통해 인간이 그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욱 잘 느끼게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신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성의 복권으로 특징짓는 르네상스의 시대에서는 사람들은 지금껏 경험 못한 심각한 내적인 존재갈등을 겪게 되었다. 이성이 진리를 규명하는 그러한 시대에서 지상에서의 아름다운 선행과 죽음 뒤의 멋진 내세의 생활을 보장하는 그런 종교적 교리들이 다 뜬금없는 헛소리에 불과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지 신 중심 사고관에서 벗어난 인간들은 그런 삶의 근본적 동기에 관한 문제들을 다시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규명해 나가야 했다.
(그림6 - 산비둘기)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특징은 호기심이다 그들은 알기를 원한다. 언제 산을 내려오다가 어떤 여자꼬마와 마주쳤다. 그 꼬마는 대뜸 나에게 배꼽인사를 하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참으로 예의바른 아이다. 그 때 그 옆으로는 비둘기가 날아갔다. 꼬마는 같이 있던 동생과 비둘기를 보며 ‘저게 무슨 새에요?’하고 묻는다. 나는 친절히 ‘저건 까마귀야’하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돌아서 가려는데 꼬마가 저것이 까마귀라는 것을 못 믿겠는지 같이 있던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할머니 저거 까마귀야?’
‘저게 무슨 까마귀야? 저건 비둘기야 비둘기’
‘저 아저씨가 비둘기보고 까마귀랬어’
그리고 그 두 꼬마는 ‘까마귀다 까마귀!’하면서 까악 까악 시끄럽게 울어댔다.
비둘기가 비둘기면 어떻고 비둘기가 까마귀면 어떻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산비둘기라서 일반 길가의 비둘기와는 달리 갈색빛 깃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꼬마들은 이미 비둘기를 알고 있었지만 저 비둘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색깔은 전혀 다른 것에 대해서 이해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까마귀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던 꼬마로서는 내가 비둘기 보고 까마귀라고 한 것을 자신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비둘기인지 아닌지는 헷갈리지만 까마귀는 확실히 아니라는 것이 꼬마의 결론이다.
사람들은 자꾸 묻는다. 인간이 뭔지 자아가 뭔지 갈색비둘기는 왠지 비둘기가 아닌 것 같다. 비둘기는 회색이었는데... 그래도 저건 확실히 까마귀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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