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된 고향이 이태극의 문학작품에 끼친 영향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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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몰된 고향이 이태극의 문학작품에 끼친 영향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남북 분단의 아픔
2) 수몰되어 사라진 마을과 고향이전 현상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작품의 내용 그대로 금강산에 있는 ‘옹달샘 줄기모여 길을 찾아 흐’르는 강물이었기 때문이다. 금강산의 ‘옹달샘’이 흘러온다는 표현은 앞서 살펴 본 「파로호」라는 시조 작품에도 표현되고 있다.
봄이면 돛배 두어 척/ 물길 따라 올랐고
가을 되면 금강산이/ 단풍잎에 실려 왔다
옹종기/ 초가로 어울려/ 숨 고르던 강변마을
-『파로호』둘째 수
위 작품에서는 ‘옹달샘’ 대신 ‘금강산이/ 단풍잎에 실려왔다’는 표현으로 그가 이야기 하는 물의 원천이 금강산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생각 할 수 있다. 위 두 작품을 연관 지어 보면 분명 화자가 말하는 ‘물’의 의미는 고향 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가 고향마을에서 본 ‘물’은 ‘소나기 쏟아지면/ 소용도는 흘탕물’이 되어 ‘들판도 산더미 마냥/ 밀어치고 아우성’처럼 온 마을을 뒤집어 놓을 것처럼 요란스럽게 흐르기도 하고 비가 그친 뒤에는 ‘말간 물결’이 되어 한가로이 마을을 흘러 지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물’은 단지 ‘흙탕물’이나 ‘소도 되고 여울도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화천의 고향 마을을 지나 계속하여 하류로 흘러가면서 ‘만물의 젖줄’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던 자랑스러운 ‘물’인 것이다. 마지막 수의 종장에서 ‘내 이제 이 물가에 서서/ 내 마음을 비워본다.’는 표현은 이 작품을 쓰던 화자의 나이가 81세의 노령이고 그 당시 화자가 거주하던 지역이 서울시 노원구 하계동과 상계동으로 그곳에는 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이어지는 중랑천이 흐르고 있음을 감안하면 화자는 수몰된 고향의 강줄기를 대신하여 중랑천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위 작품에서도 이태극은 「진달래 연가」에서와 같이 고향 마을에 존재하던 시조의 제재인 ‘물’을 서울에서의 그것과 연관시켜 고향의 이전 현상을 나타낸다.
물도 흐르다간
바다로 드는 것이
꽃도 피었다간
잎잎이 듣는 것이
후회를 자늑이다가
아차 그만 뜨는 것
극락이라 천당이라
한낱 바램일 뿐
되돌아 올 수 없는
삶의 고비인데
다듬어 보듬어 안고
난향(蘭香)으로 살으리.
-『삶이란 1』전문, 1991. 6. 10. 하계우사에서
결국 수몰되어 찾아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기보다는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순응하며 살겠다는 그의 마음을 최종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하겠다. 어차피 어린 시절 그의 고향에 흐르던 ‘물’도 ‘바다로 드는’에서 모두 바다로 흘러들었으므로 그 시절의 ‘물’이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바라볼 때 마다 정겹게 느껴지던 진달래와 같은 ‘꽃’마저도 각각의 잎마다 모두 떨어져 버리고 사라져 버리는 것일 뿐임을 화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고향뿐이 아니라 ‘극락’이나 ‘천당’ 같은 종교적 이상적인 세계마저도 ‘한 낮 바램일 뿐’으로 표현하는 화자에게 고향은 더 이상 그리움의 대상이거나 꼭 돌아가 정착해야 할 당연성이 배제된 존재가 된다. ‘되돌아 올 수 없는’ 한번 뿐인 ‘삶의 고비’ 즉, 노년의 화자인 자신에게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무의미 하기때문에 ‘보듬어 안고/ 난향으로 살으리’ 에서와 같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을 보듬어 안고 강물이 흘러 바다에 도달하듯이 현재 머무르고 있는 장소(하계우사)에서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위 작품은 고향이전 현상에 대한 이태극 시조시인의 가장 최종적인 생각을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3. 결론
이태극 시조시인은 고향에 대한 다양한 우여곡절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처음엔 일제에 의한 댐 건설로 자신을 포함해 부모님과 모든 가족이 정든 고향마을을 남겨두고 타향으로 이주해야만 했고 한때는 남북 분단으로 고향마을을 덮고 고요하게 흐르고 있던 화천저수지(현. 파로호)와 그 저수지의 기슭에 애처롭게 남아 꽃망울을 터트리던 ‘진달래’조차도 볼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남북 분단 후 몇 년 뒤에 일어난 6.25전쟁기간엔 그의 옛 고향 마을을 담고 있는 화천댐을 차지하기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그 과정에서 3만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여 호수가 피로 물들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고향은 수몰된 이후에도 계속하여 수난(受難)을 격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 이후에 고향 화천은 다행히 남한에 의해 수복 되었으나 휴전선 이북에 남아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동포에 대한 그의 마음은 수몰된 고향마을을 생각하듯 애틋해 하고 있다.
본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몰되어 사라져 버린 그의 고향에 대한 감정은 작품 속에서 두 가지로 구분되어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화천’과 ‘파로호’로 대표되는 외형적인 그의 고향에 대한 감정으로 시조 작품 속에서 ‘화천’과 ‘파로호’는 단순히 이태극이 태어난 마을을 행정구역상 포함하고 있는 곳이면서 우리가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영토이자 자원인 것이면서 동시에 화천의 이북지역에 남아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 우리 동포를 생각나게 하는 삶의 기준점인 것이다. 둘째는 ‘바람’, ‘물’, ‘진달래’ 같은 자연물로 변형되어진 그의 내면적인 고향마을에 대한 감정으로 이태극은 수몰된 방현포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파하기 보다는 방현포에서 보았던 ‘진달래’나 ‘물’ 같은 자연물 들을 그가 노년에 살고 있는 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음을 깨닫고 고향의 그것과 동일시(同一視)하여 결국 고향의 이전 현상을 작품 속에서 나타내고 있다.
이태극 시조시인의 고향은 물속에 사라졌지만 그는 우리 시조를 민족의 문학으로 정착시키려는 큰 뜻을 가지고 평생을 노력하여 그의 작품만큼이나 소중한 시조문학인들의 군(群)을 형성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준 현대시조의 진정한 고향으로 기억될 것이다.
4. 참고문헌
이태극 「내 산하에 서다, 시인생각, 2013」
이태극 「이태극 시조 전집, 태학사, 2010」
박영우,「이태극 시조에 나타난 노년, 죽음의식 연구, 2012 」
유성호, 자연과 인간의 공존, 시조를 통한 자기 인식 월하 이태극의 시조 세계, 배달말36호, 배달말학회, 2005.
월하 이태극 문학관「www.itaegeuk.com」
파로호비(破虜湖碑) 설명문(소재: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산 20-2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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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03.16
  • 저작시기2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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