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입문] 고구려의 수당전쟁 (살수대첩과 안시성의 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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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사입문] 고구려의 수당전쟁 (살수대첩과 안시성의 혈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수나라: 수 제국은 전후 네 차례에 걸친 고구려 원정을 통하여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소모함으로써 경제적 파탄을 초래하였으며, 그 결과 통치력이 이완되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 전국 각지에서 반란 세력이 봉기하여 급기야는 왕조의 멸망을 자초하게 되었다.
- 당나라: 당 제국 내부에서는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이후로 군사귀족인 관롱군사집단이 기존의 정치적 실권을 상실하고 점차로 권력의 핵심으로부터 이탈함으로써 고종대의 정치, 군사적 혼란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 백제: 백제는 수당전쟁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당사국인 고구려와 당의 한반도 남부 지역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진 틈을 타서 신라에 대해 빈번히 무력 침공을 감행하였다. 그리하여 백제는 무왕 의자왕 대에 신라와의 국경지역에 위치한 크고 작은 여러 성들을 점령하는 국지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부단한 침략전쟁으로 과도하게 군비를 소모시킨 결과, 백제는 국력이 현저히 약화되어 끝내는 왕조의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다.
- 신라: 신라는 대백제 관계에서 열세를 만회하기 위하여 650년에 당에 사신을 보내어 당 고종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등, 대당 외교를 크게 강화하기 시작한다. 더욱이 친당외교에 박차를 가하여 삼국통일을 눈 앞에 두기에 이르렀다.
- 북방민족: 630년 당군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 동돌궐과 같이 규모가 큰 북방민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방 민족이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으로 야기된 정치적 군사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당 제국의 기미적 통치에 만족하면서 종족의 생존을 유지하게 되었다.
2. 수당전쟁의 의의
고구려가 수당의 연이은 침입을 물리친 사실은 우리 민족사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그때 고구려가 패했다면 신라와 백제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독자성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는 방파제 구실을 한 고구려의 역할이 매우 컸다. 또 고구려가 결국 멸망하고 나당 연합군에 의해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하면서 이상적인 통일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대 중국전쟁에서 연이은 승리를 하며 수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하고, 고구려가 멸망당하는 순간까지도 당나라를 흔들어 놓았다는 점은 고구려가 얼마나 대단한 나라였는가를 다시금 생각 해 볼 수 있게 한다.
※참고 문헌※
- 「한국사 101장면」, 정성희 , 가람기획
- 「뿌리깊은 한국사...」, 서의식 강봉룡 , 솔
- 「역사스페셜」, 정종목 ,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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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03.17
  • 저작시기201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49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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