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역사 1 한국군 베트남 파병에 관하여(한미관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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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의 역사 1 한국군 베트남 파병에 관하여(한미관계를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서론: 베트남 파병의 이유
본론
1, ‘버림받을 걱정’의 정치학
2, 베트남 파병 관련 연구
3, 피의 대가로 얻은 평화
4, ‘버림받을 처지’ 이론의 근거5, ‘버림받음’과 ‘연루’의 딜레마
6, 비대칭성에서 비롯된 파병
결론: 역사, (약자) 희생의 역사
참고문헌

본문내용

지역의 유엔 정전체제 관리부대와 함께 ‘인계철선’을 유지하려 했다. 미군은 한국전쟁 이전부터 한반도에 주둔하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해방군의 성격이었고, 한국전쟁도 동맹군의 일환이 아닌 유엔군의 성격으로 참전하였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비준서를 교환한 이후 한국전쟁 참전으로 한국에 주둔했던 병력이 철수하고 동맹체결 이후 2개 사단의 약 7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한미동맹이 자동개입 조항은 없지만, 한강 이북에 배치되었던 주한 미 지상군이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면, 전쟁 개입 명분과 정책 결정 속도 면에서 자동개입 조항 없는 한미동맹 조약문서 보다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은 주한미군을 안보의 척도로 인식하게 되고 주한미군의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미국엔 한반도는 전략적 가치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주한미군에 대해 자국의 전략에 따라 그 수를 감축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지속해서 주둔군의 규모가 줄어들었다. 한미동맹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한미 간에는 인식차가 존재하였으며, 미국은 세계전략의 변화에 따라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심지어 한국정부와 상의 없이 주한미군을 감축했을 시기도 있었다. 미국으로선 한반도에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은 공산세력과의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연루’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정부에게 ‘주한미군’은 곧 안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주한미군의 변화에 사활이 걸려있었다.
결론: 역사, (약자) 희생의 역사 한국정부는 주한미군을 통해서 국방비로 지출되는 예산을 경제성장으로 전환할 수 있었고, 대외적으로 전쟁의 우려를 불식시킴으로서 해외투자를 끌어낼 수 있었다. 또한 주한미군의 존재로 인해 한반도 유사시에 미국의 개입이 원활해지는 효과와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억제 효과 등 한국정부에겐 주한미군은 사활적인 이익이 걸린 중요한 문제였다. 한국이 의존하던 주한 미군에 변화의 조짐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1960년대 초반이었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은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줄이기 시작했다. 또한 주한미군의 수준을 조정하려는 구체적인 논의들이 1962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국무부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관련하여 4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중대한 이익에서 파생된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한국정부는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 베트남전이 발발하여 미국의 적극적인 전쟁개입이 진행되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군하여 베트남 전역에 투입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7년 4월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만약에 월남에 우리 한 국군을 파견하지 않았다면 당시의 내 추측으로는 주한미군 2개 사단이 월남에 갔을 것입니다” 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주한미군을 안보의 척도 여기던 한국정부에게 미국의 철군 계획은 심각한 우려로 작용하였다.
이때부터 방기-연루의 딜레마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스나가 더위 방기-연루 모델에서 방기는 동맹국이 동맹을 이탈하거나 동맹 의무를 수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는 방기를 주한미군에 적용하여 주한미군이 감축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전환 배치되는 것에 대한 한국정부의 우려라고 새롭게 정의하겠다. 한미동맹 관계는 굳건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미국이 한국을 버린다거나 동맹공약을 미준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한미군이라는 존재가 한국정부에겐 동맹공약의 큰 틀로 작용했기에 주한미군이 감축되거나 다른 지역 의 전장으로 전환 배치되는 것에 대해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발생했고, 이러한 우려를 ‘방기의 우려’라 하겠다. 즉,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베트남 전장으로 주한미군이 전환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한국정부에게 ‘방기의 우려’로 작용하여 종래에는 베트남 파병에 이르게 되었다. 국력의 차이로 인한 느슨한 동맹관계, 그로 인한 버림받을 우려가 수 만 명의 청춘들을 이국땅에서 희생하게 만든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 김승한(1978), 미국의 월남전쟁과 정책과정 분석, 동국대학교
◇ 이영희, 베트남 전쟁, 두레신서
◇ 법문사(1991), 미국외교이념과 베트남전쟁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2004), 베트남전쟁 연구 총서, 전문화 연구 논문집
◇ 윤주영(1995), 베트남 전후 20년, 타임스페이스
◇ 서울신문사 외신부(1966), 얼굴없는 전쟁 월남전쟁은 왜, M시바람, 서울신문사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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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8.03.21
  • 저작시기201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49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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