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1.현대영화의 트렌드, 포스트모더니즘
2.작품선정 및 연구목적
Ⅱ. <파이트클럽>의 새로운 시도
1.영화 <파이트 클럽> 개관
(1)줄거리
(2)등장인물
(3)감독의 작품세계
2.<파이트 클럽>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시각 적용
(1) 불확정성(Indeterminacy)
(2) 단편화(Fragmentation)
(3) 탈경전화(Decanonization)
(4) 대중문화(Populism)
(5) 재현 불가능성(Unrepresentability)
Ⅲ. 결론
<파이트클럽>을 통한 포스트모더니즘 비평
-참고자료
1.현대영화의 트렌드, 포스트모더니즘
2.작품선정 및 연구목적
Ⅱ. <파이트클럽>의 새로운 시도
1.영화 <파이트 클럽> 개관
(1)줄거리
(2)등장인물
(3)감독의 작품세계
2.<파이트 클럽>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시각 적용
(1) 불확정성(Indeterminacy)
(2) 단편화(Fragmentation)
(3) 탈경전화(Decanonization)
(4) 대중문화(Populism)
(5) 재현 불가능성(Unrepresentability)
Ⅲ. 결론
<파이트클럽>을 통한 포스트모더니즘 비평
-참고자료
본문내용
속성을 띠게 되며, 이윽고 리얼리티와 픽션 사이의 구별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주인공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수면장애를 겪는다. 곧 영화는 현실과 꿈이 공존하는 세계가 된다.
또한 주인공이 처한 심리 상황을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비현실적인 세계를 재현해내고 있다. 주인공 테일러 더든이 자신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결국 분열해버린 자아와 싸우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탈중심(decenterment)의 개념인 불확정성과도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홍문표,『현대문학비평이론』, 창조문화사, 1996
Ⅲ. 결론
<파이트 클럽>과 포스트모더니즘 비평
모더니즘은 거대 담론의 뿌리를 두고 출발한 피라미드식 구조처럼 상승의 욕망을 나타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그에 회의, 해체, 분열을 지나 통합인 동시에 피드백 되는 이상한 원형적 둘레를 지니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계속적으로 변모한다. 오늘의 우리가 믿는 담론은 내일은 믿을 수 없다. 이런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규정된 것은 있을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규정되었다면 조만간 해체될 것이며 오늘의 우리가 믿는 사상, 문화 그 어떤 것도 변모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시대적 흐름일 뿐이다. 흐르는 물을 가둘 수 없는 것처럼 물은 계속 빠져나갈 것이고 합류와 갈라짐을 통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인 대중주의와 퍼포먼스의 부산물이라 할 만한 영화 역시 점차 자신의 모습을 개혁하고 변화하고 있다. 분명 영화는 모더니즘 시대에 일부 계층에 공유된 예술 문화 양식을 전복하고 보통 계급에 까지 파생된 엄청난 역할을 단행하였고 그 양식 역시 구시대의 예술의 기본관념을 깨트려 버리고 이미 만들어진, 즉 우리 주변에 흔한 대상물을 하나의 예술품으로 창조하였다. 홍문표,『현대문학비평이론』, 창조문화사, 1996
하지만 시대 흐름 속에서 영화도 점차 그 구성을 갖추고 제작되며 더 이상 영화 역시도 대중적인 코드를 갖춘 구색일 뿐,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자명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 내용과 제작에 있어서도 일정한 틀을 갖춘 모습 속에서 출발하게 된다. 내용적인 측면을 한 가지 얘기한다면 쉽게 말해서, 너무 뻔한 구조로 이미 상업적으로 흥행된 영화의 아류작들을 들 수 있겠다. 좀 더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흥행을 몰고 온 영화, <친구>(2001)' 이후에 쏟아진 조폭 영화는 지금도 마치 흥행코드처럼 계속해서 아류작들을 쏟아내고 있다. 또한 영화 제작에 있어서도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분열적인 모습이 아닌 전체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조직되어 만들어 진다. 이러한 특징은 구조주의 사유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허무주의적일 수가 없다. 허무주의적인 감독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능하다. 음악이나 소설에선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허무주의자로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인 것이다. 영화를 한다는 것은 허무주의에서 벗어난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말하기엔 너무 광범위하므로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만을 얘기해보겠다. 아까 언급한 바 있는 영화 '친구'의 등장은 당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흥행작인 동시에 문제작이었다. <친구> 또한 이전에 비주류였던 한국 사회에 한 계층인 조폭을 심도 있게 드러낸 동시에 이전까지 보여주지 못한 한국 영화의 발전성을 보여준 수작이다. 조폭 계급의 등장은 가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이라 할 만하며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이후에 쏟아진 아류작들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 시장 전체를 묶게 되는 거대 담론인 동시에 한국 영화에 발전이 순간 멎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비단 우리 영화뿐만 아니라 서구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등장은 우리에게 충격이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 신선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당연시 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중 하나의 불확정성으로 인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신선함은 앞으로 몇 년, 혹은 당장에 내일도 유지될 수 없음을 말할 수 있겠다. 계속되는 통합과 분열, 해체를 아우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딱히 어떤 것이라고 규정짓기에도 오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점에서 모더니즘에 대한 거부가 되기도 통합이기도 야누스의 얼굴처럼 두 개의 성격을 가진 아니 다양한 얼굴을 가진 시대적 흐름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의 이 같은 특성은 우리 사회 속에서 정치, 문화, 예술, 문학, 철학 속에서 다양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 중 문학 또한 그 출발점은 어딘지 알 수 없으나 기존 학설이 거부되고 새 학설이 수용되고 다시 거부되고 통합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와 혼란스런 사회 현실을 수용하고 독자들에게 혹은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영화 <파이트 클럽>은 소비주의 사회 속의 풍토에서 낙오자일 수밖에 없는 소외계층이 자본주의 사회를 맹비난하고 거부 및 파괴를 통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자리 잡은 구조주의적 현실에서 벗어나고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로의 전환을 갈망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광고 및 뮤직비디오 장르와의 통합 등은 영화 정체성의 위기라기보다는 새로운 포스트모더니즘적 시도로 봐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세계를 영화라는 영상 예술을 통해 재현하며 반리얼리즘을 리얼리즘으로 실현시키고 있다.
영화 <파이트 클럽>을 통해 보여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인 불확정성, 단편화, 탈경전성, 대중문화, 재현불가능 등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완전히 이해하는데 부족함은 있지만 우리가 처한 사회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성숙된 포스트모더니즘 사고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본보기라 할 만하다.
*참고자료*
홍문표, 「현대문학비평이론」,창조문화사,1996
권택영 「감각의 제국라캉으로 영화읽기」, 민음사, 2001
김욱동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예술, 문화」, 민음사 2004
테리 이글턴,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실천문학사, 2000
원용진「현대사회와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한나래, 1996
피터 비스킨드, 「헐리웃 문화 혁명 - 어떻게 섹스, 마약, 로큰롤 세대가 헐리웃을 구했나」, 시각 언어, 2001
또한 주인공이 처한 심리 상황을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비현실적인 세계를 재현해내고 있다. 주인공 테일러 더든이 자신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결국 분열해버린 자아와 싸우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탈중심(decenterment)의 개념인 불확정성과도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홍문표,『현대문학비평이론』, 창조문화사, 1996
Ⅲ. 결론
<파이트 클럽>과 포스트모더니즘 비평
모더니즘은 거대 담론의 뿌리를 두고 출발한 피라미드식 구조처럼 상승의 욕망을 나타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그에 회의, 해체, 분열을 지나 통합인 동시에 피드백 되는 이상한 원형적 둘레를 지니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계속적으로 변모한다. 오늘의 우리가 믿는 담론은 내일은 믿을 수 없다. 이런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규정된 것은 있을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규정되었다면 조만간 해체될 것이며 오늘의 우리가 믿는 사상, 문화 그 어떤 것도 변모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시대적 흐름일 뿐이다. 흐르는 물을 가둘 수 없는 것처럼 물은 계속 빠져나갈 것이고 합류와 갈라짐을 통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인 대중주의와 퍼포먼스의 부산물이라 할 만한 영화 역시 점차 자신의 모습을 개혁하고 변화하고 있다. 분명 영화는 모더니즘 시대에 일부 계층에 공유된 예술 문화 양식을 전복하고 보통 계급에 까지 파생된 엄청난 역할을 단행하였고 그 양식 역시 구시대의 예술의 기본관념을 깨트려 버리고 이미 만들어진, 즉 우리 주변에 흔한 대상물을 하나의 예술품으로 창조하였다. 홍문표,『현대문학비평이론』, 창조문화사, 1996
하지만 시대 흐름 속에서 영화도 점차 그 구성을 갖추고 제작되며 더 이상 영화 역시도 대중적인 코드를 갖춘 구색일 뿐,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자명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 내용과 제작에 있어서도 일정한 틀을 갖춘 모습 속에서 출발하게 된다. 내용적인 측면을 한 가지 얘기한다면 쉽게 말해서, 너무 뻔한 구조로 이미 상업적으로 흥행된 영화의 아류작들을 들 수 있겠다. 좀 더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흥행을 몰고 온 영화, <친구>(2001)' 이후에 쏟아진 조폭 영화는 지금도 마치 흥행코드처럼 계속해서 아류작들을 쏟아내고 있다. 또한 영화 제작에 있어서도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분열적인 모습이 아닌 전체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조직되어 만들어 진다. 이러한 특징은 구조주의 사유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허무주의적일 수가 없다. 허무주의적인 감독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능하다. 음악이나 소설에선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허무주의자로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인 것이다. 영화를 한다는 것은 허무주의에서 벗어난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말하기엔 너무 광범위하므로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만을 얘기해보겠다. 아까 언급한 바 있는 영화 '친구'의 등장은 당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흥행작인 동시에 문제작이었다. <친구> 또한 이전에 비주류였던 한국 사회에 한 계층인 조폭을 심도 있게 드러낸 동시에 이전까지 보여주지 못한 한국 영화의 발전성을 보여준 수작이다. 조폭 계급의 등장은 가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이라 할 만하며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이후에 쏟아진 아류작들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 시장 전체를 묶게 되는 거대 담론인 동시에 한국 영화에 발전이 순간 멎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비단 우리 영화뿐만 아니라 서구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등장은 우리에게 충격이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 신선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당연시 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중 하나의 불확정성으로 인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신선함은 앞으로 몇 년, 혹은 당장에 내일도 유지될 수 없음을 말할 수 있겠다. 계속되는 통합과 분열, 해체를 아우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딱히 어떤 것이라고 규정짓기에도 오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점에서 모더니즘에 대한 거부가 되기도 통합이기도 야누스의 얼굴처럼 두 개의 성격을 가진 아니 다양한 얼굴을 가진 시대적 흐름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의 이 같은 특성은 우리 사회 속에서 정치, 문화, 예술, 문학, 철학 속에서 다양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 중 문학 또한 그 출발점은 어딘지 알 수 없으나 기존 학설이 거부되고 새 학설이 수용되고 다시 거부되고 통합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와 혼란스런 사회 현실을 수용하고 독자들에게 혹은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영화 <파이트 클럽>은 소비주의 사회 속의 풍토에서 낙오자일 수밖에 없는 소외계층이 자본주의 사회를 맹비난하고 거부 및 파괴를 통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자리 잡은 구조주의적 현실에서 벗어나고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로의 전환을 갈망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광고 및 뮤직비디오 장르와의 통합 등은 영화 정체성의 위기라기보다는 새로운 포스트모더니즘적 시도로 봐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세계를 영화라는 영상 예술을 통해 재현하며 반리얼리즘을 리얼리즘으로 실현시키고 있다.
영화 <파이트 클럽>을 통해 보여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인 불확정성, 단편화, 탈경전성, 대중문화, 재현불가능 등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완전히 이해하는데 부족함은 있지만 우리가 처한 사회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성숙된 포스트모더니즘 사고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본보기라 할 만하다.
*참고자료*
홍문표, 「현대문학비평이론」,창조문화사,1996
권택영 「감각의 제국라캉으로 영화읽기」, 민음사, 2001
김욱동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예술, 문화」, 민음사 2004
테리 이글턴,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실천문학사, 2000
원용진「현대사회와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한나래, 1996
피터 비스킨드, 「헐리웃 문화 혁명 - 어떻게 섹스, 마약, 로큰롤 세대가 헐리웃을 구했나」, 시각 언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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