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의 왕도정치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비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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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광조의 왕도정치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비교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주와 정치가들은 그것에 대한 일반적인 도덕적 비난 속에서도 여전히 그 유용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 결과 마키아벨리즘은 다른 모습으로 변용되어 나타나게 된다. 16세기 말에서부터 약 1세기 간 여러 가지 정치 저술들은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피함과 동시에 그것이 지닌 정치적 이점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결국 절대 군주정으로 대별되는 근대 국가의 정치 체제는 많은 면에서 <군주론>의 사상을 답습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국가라는 개념이 근대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에서 17세기를 거치는 시기였다. 이전의 국가들이 봉건적 의미에서 꼬무네(Comune)의 개념을 넘어서지 못하거나 교황청이나 그와 유사한 개념의 준국가 제도들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들 제도들이 쇠퇴하였고, 새로운 차원의 국가 개념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발전 경로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결정적이고 중요한 전환기에 마키아벨리가 있었다는 사실은 국가론의 발전과정과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서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차학이라는 학문을 당위의 영역에서 존재의 영역으로 구체화시킴으로써 국가라는 개념 역시 구체성을 띠기 시작하으며, 결국 정치를 최상위층으로 격상키기고 동시에 종교르 비롯한 형이상학적 도덕과 윤리 및 인간이성을 부수적이고 구성요소적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인문학 내에서의 순위를 일순간 바꿔버렸다.
Ⅳ 사회의 발전이라는 면에서 두 군주론의 비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조광조의 ‘왕도정치’에 비해 대단히 군주중심적이고 백성의 생활을 무시했다는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나치게 현실과 공리를 중시하여 인간적인 정감이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능숙하고 세련된 문장의 표현력과 인간의 본성을 도덕적인 관념을 떠나 솔직하게 꿰뚫어볼려는 그의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무의식중에서 그의 냉엄하고 깊이 있는 관찰력은 그의 진취적인 인생 철학을 납득시킨다. 서양에서 ‘계몽군주’로 알려진 프로이센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군주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로 알려진다. 프리드리히 2세는 군주론이 정치가에게는 악덕을 가르치며 군주에게는 정치적 도의를 가벼이 여기도록 가르친다고 주장한 다음,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볼테르의 손을 빌어 출간한 <마키아벨리즘 비판>이라는 책에 “나는 인간성을 파괴하려는 이 괴물에 대해 인간성을 지키기 위하여 일어서는 바이다. 나는 감히 궤변과 죄악에 대하여 이성과 정의를 갖고 맞서는 것이다. 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해 장마다 반론을 가해 두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가 ‘계몽군주’임을 자처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이 작은 책에 언급된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다. 계몽군주란 유럽 17∼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에 스스로 계몽사상의 이념에 의하여 일정한 근대화 개혁을 실현하려고 시도한 전제군주를 말한다. 중세 봉건사회로부터 근대 시민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럽 각지에 중앙집권제(中央集權制)와 전제적 성격을 특징으로 하는 절대주의 국가가 성립하였는데, 이 절대주의는 봉건사회 내부에 생긴 반봉건적(反封建的) 시민계급의 상승력과 스스로 쇠퇴하는 봉건계급 세력의 일시적인 균형관계에서 성립한다. 일반적으로 계몽전제군주는 이와 같은 절대주의의 성립 ·전개 과정에서 시민계급의 성숙이 늦거나, 자본주의적 발전이 뒤진 단계의 국가에서는 봉건계급의 저항을 억누르고 ‘위로부터의 개혁자’로서 출현한다. 따라서 유럽(서양)이 근대 사회에 빠르게 진입한 요인으로써 군주론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실제적’이고 도덕이나 종교를 벗어난 ‘군주론’적인 생각으로 인해 17세기 서양은 좀더 빠르게 중세봉건사회와 교회중심적, 신의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 그다음 세대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러한 실리중심적 사고방식은 사회 통치의 각 시스템에 영향을 주어 좀더 높은 효율과 더 나은 성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조선에서는 왕도정치의 이상실현에 기본적 지향을 두고 있었던 만큼 모든 정치행위가 군왕에게서 시작되고 군왕으로 귀결되는 왕조시대 본연의 기본적 범주안에서 정치과정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조선왕조에서 주자학의 이념이 왕정 운영의 지도원리로서 이용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군자로서의 자세 확립이 정치 주체의 선결조건으로 강조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세습된 군왕에게서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웠으므로 사대부계층의 보필이 불가피하게 전제되기 마련이다. 바로 위정자로서 군왕과 아랫사람으로서 사대부계층 사이에 왕도정치 구현을 위한 역할 분할문제가 중요시 됨에 따라 이들 양자간의 상호관계가 특별히 주목받게 되었다. 왕도정치를 강조하게 됨에 따라 군자와 소인의 가치기준에 의거한 사적인 이익의 배제와 공도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도학적 규범이 매우 부각되었다. 이는 서양의 계몽군주의 등장과는 매우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동양은 이러한 도학적 규범에 얽매여 국방이나 경제발전, 민주주의와 같은 근대화에 필요한 개념의 발달이 매우 늦어지고 서양에 비해 뒤처지게 된 점이 없지 않다.
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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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철, 「정암 조광조의 정치사상」, 부산사학 제 7집
이홍두, 「정암 조광조의 정치개혁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1983
김동일, 「조광조의 정치사상에 관한 일 고찰」, 대구대학교 대학원, 1986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상/하)
마키아벨리, 『바티칸의 금서 군주론』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에 나타난 마키아벨리의 근대국가 개념의 차이성 및 동질성 연구, 2004
정약용의 君主論 ,박현모, 2003
도덕군주론 : 고대 유가의 聖王論 (Moral Monarchism : an Ancient Confucian’s Sage King(Sheng-Wang, 聖王)) ,2006
조선후기 성리학적 군주론 연구 (A Monarchical View of the Later Era of Choso˘n)
조선후기 통치이념의 구조적 분석, 김미림, 1999
조선왕조의 유교정치와 왕권, 1990
정조 : 유학적 절대계몽군주
  • 가격1,4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8.03.31
  • 저작시기20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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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5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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