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식민지 지배 정책에 따른 초등역사교육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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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강점기 식민지 지배 정책에 따른 초등역사교육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일제강점기 초등 역사교육의 변화
1. 2차 교육령 개정과 역사교육 변화
2. 3차 교육령 시행과 역사교육 변화
Ⅲ. 초등학교 국사 교과서와 일제의 지배 정책의 관계
1. 『보통학교국사』와 ‘내선융화 정책’과 ‘민족말살 정책’
2. 『초등국사』와 ‘황민화 정책’
Ⅳ. 맺음말

본문내용

신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는 민족주의 우파진영에서 노렸던 만인대중에게 일제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시키기 위한 노력을 무마시키기 위했다고 해석된다. 또 다른 임진왜란에 대한 글을 살펴본다면 조선이 일본의 상황을 몰랐기 때문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며, 실제로 일본과 조선이 대립 갈등관계가 아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수길은 일찍부터 지나를 치고, 나아가 널리 해외의 나라들을 황위에 복종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국내가 점차 평정되고, 해외의 상황도 명확하게 되자, 점차 결심을 굳혔다. 우선 대마의 종의지 등에게 분부하여 조선이 우리 군을 위하여 길 안내를 하도록 조처하게 하였다. 의지는 조선이 명의 속국이기 때문에 도저히 이것을 들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여 수길의 명령을 그대로 전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선에서는 수길의 공적에 의해서 우리 나라의 세력이 급격히 발전하였다고는 조금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만 사신을 보내어 국내가 평온해졌음을 축하하는 인사를 했을 뿐이었다. 조선총독부, 『초등국사』권이, 1939, 16~17쪽. ; 박범희, 위의 논문, 69쪽, 재인용.
근대사를 살펴본다면 일단 ‘명치천황’에서부터 ‘한국병합’까지를 말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한국병합에 대한 사료를 살펴보자.
이와 같이 조선인들은 모두 똑같이 제국의 신민으로 되고, 천황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 이로부터 정치는 나날이 정비되고, 옛날부터 폐해는 점차 사라지고, 세상은 평온하게 되었으며, 산업은 개발되고, 무역은 발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조선은 옛날부터 우리나라와의 관계가 밀접하여 어느 시대에도 왕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후 풍토 인정 등이 비슷하므로 친밀함이 깊었기 때문에, 병합 이래 점차 융합 동화하고, 또 교육은 보급되고, 문화는 진보하였으며, 그 발달에 따라서 여러 가지 제도도 점차 개정되어졌다. 그 때문에 오늘날에는 잘 융화되어 일체로 되고, 힘을 합하여 제국의 발전을 꾀하며, 인민의 행복은 점점 증진하여, 동양평화의 기초는 점점 굳어졌다. 조선총독부, 『초등국사』권 이, 1939, 160~162쪽. ; 박범희, 위의 논문, 67쪽 재인용.
이 부분에서 『보통학교국사』와 달리 가장 다른 점은 한국병합의 합리화라는 목표를 위해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꾸준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이로써 한국 병합이 낯설고, 조선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이루어져 오던 양국 관계의 지속이며, 조선의 고질적인 병폐인 당파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조선 백성들을 위한 최선의 방도라고 하였다. 즉, 『초등국사』에서는 과거에 비하여 조선과 일본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부분을 필력 하였고, 이로써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한국병합을 보다 더 합리화 시키려고 노력하였다.
Ⅳ. 맺음말
일제는 1920년까지는 초등학교에서 역사교육을 시행하지 않는 정책을 썼다. 그러나 삼일운동 이후에 변화를 맡게 된다. 조선 내에서의 교육열이 높아졌고, 해외에서의 저 교육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으며, 민족 운동가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인하여 역사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된다. 조선총독부 또한, 지금까지의 정책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고, 표면적으로 역사교육을 도입하며 혼란을 무마시켰지만 실제로 한국사 내용을 살펴보면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데 정당화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교육령이 변화하고 정세가 변화함에 따라 역사 교육은 식민지 조선을 차지하고, 대동아공영을 위한 발판으로 사용된다. 특히 3차 교육령 이후의 역사교육은 전쟁을 위해 진정으로 황제에게 복종하는 조선인을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일면을 그 당시의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통학교국사』에서는 일본과 조선을 이원적 체계로 하여 서술하였다. 또한 한국사에 대해 임의의 왜곡이 가해졌고, ‘정체성론’, ‘당파성론’등의 식민사관들을 유입하려 하였다. 『초등국사』에서는 일본사 내에 한국사를 동시에 가르치는 일원적 체계로 바뀌게 된다. 이로써 보다 확실하게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 하는 것은 과거의 역사에서부터 당연시 되어온 일이며, 때문에 충실한 황국신민을 조성하기 위한 일제의 의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즉,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등 침략전쟁을 확대해 나가면서 여기에 자발적이며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목표로 바뀐것이다.
내용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두 권의 역사교과서 모두는 인물중심의 역사를 서술하여 ‘천황과 황족’, ‘존왕적 인물’, ‘무사’, 그 외의 인물들을 서술하면서 천황의 덕성을 강조했고, 같은 조상을 갖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과 전통적 윤리에 의한 충성심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게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인의 주체적 의식의 말살에 기여했으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신민’을 만들어 내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일제의 초등교육의 확대와 보급에 대해서는 무조건 ‘좋다’, ‘나쁘다’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실질적으로 근대적인 초등교육이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에 대해서 조선총독부의 산물이라는 관점과 조선인의 자발적인 교육요구라는 두 가지의 관점으로 나뉘지만, 결과적으로 초등교육이 급팽창 한 현상은 동일하다.
그러나 이를 근대교육의 긍정적인 산물로도 바라보긴 힘들다. 교육의 내용과 교육방법 등에 있어서 이는 왜곡된 목표로 일관되게 유지해온 교육으로 인하여 조선의 자발적 근대화에 방해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교육이 얼마나 조선민중들에게 스며들어갔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추측컨대 이런 교육이 일제가 의도했던 대로 조선 민중과 지식인들에게 도입되어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러나 삼일운동으로 인해 역사교과를 도입하였다가 이후의 교육령 개정을 통하여 역사교과를 다시 폐지했던 것은 그들이 의도했던 대로 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의미한다. 민중들이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이들 교육을 받아 들였는지는 현재 알아내기가 힘들다. 그리고 해방 후에 이런 교육을 받고 자라난 사람들이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게 됐는지도 추측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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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06.14
  • 저작시기2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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