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통일운동과 한국교회 -1980년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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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교회사] 통일운동과 한국교회 -1980년대를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따라서 NCCK의 <선언>에는 민중적 통일운동이 갖는 현실 인식과 더불어 세계교회의 평화 운동 조류를 반영하여, 남북의 냉전 구조와 적대 관계를 극복하는 평화 체계의 수립 구상과 그 실천 방안들이 평화 통일 교육과 맞물려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Ⅵ. 결론
한국 교회의 통일운동은 1980년을 기점으로 크게 변화하였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어용교회로 폄하하였던 북한의 교회를 인정하고 대화하며 함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비록 북한을 방문한 문익환이나 임수경은 돌아와 체포되어 중형을 선고받고 형을 살았지만, 그 사건은 세계를 향한 한국인들의 통일염원을 표방한 것이며, 세계를 향한 기독교인들의 사랑과 평화의 강력한 증거였다. 이처럼 한국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국가 통일을 위한 움직임은 들불같이 확산되었다. 그 어느 누구도, 성령이 오셔서 평화를 위해 불붙이시는 이 불길을 끌 수는 없었다. Wi Jo Kang, 같은 책, pp206-207
한국기독교인들이 조국의 비극적인 분단을 종식시키기 위해 헌신자로 결정된 것은 바로 역사적 현실이었다. 작년 북한을 방문한 한상렬 목사의 모습을 통해서도 통일의 강렬한 열망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6월15일, 남북 최고지도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 남북 공동선언’ 이라는 역사적 선언문에 서명하고 남북관계에서 획기적 이정표를 마련하였다. 이 사건은 1945년 해방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치루며, 상호비방과 군비경쟁 속에서 민족의 역량과 존엄성을 세계 앞에서 스스로 부정하는 분단민족사 55년 만에, 쌍방의 최고 정치지도자가 직접 만나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주춧돌을 마련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 기본정신은 ‘7.4 남북 공동성명’(1972)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민족사적 합의문이며 남북공동선언서였다. 이러한 통일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한국교회는 이제 NCCK가 1988년 선포했던 “민족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의 선언”이 아직 유효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비록 20여년이 지나 시대적 상황은 많이 달라졌지만, 이 선언을 통해 민족통일의 문제를 민중 모순의 해결과 세계의 패권적 구조의 개편과 연결된 평화 운동의 차원으로 보고 이 운동의 주체로 민중을 지속적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NCCK의 통일 논의는 민중들의 해방운동과 세계교회의 평화운동(JPIC)논의를 수렴하여 민족 모순과 민중 모순을 풀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 운동으로 정립시켰다는 데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연규홍, 같은 책, p.232
*참고도서
김흥수, 서정민, 『한국기독교사 탐구』, 대한기독교서회, 2011
연규홍, 『교회사의 해방전통』, 한신대학교출판부, 2002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의 역사 3』, 기독교문사, 2009
Wi Jo Kang, 서정민 역, 『한국기독교사와 정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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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11.19
  • 저작시기2018.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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