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무교회주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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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30년대 무교회주의 논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항변하기 위하여 ‘무교회’ 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서 “로마천주교회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루터의 ‘프로테스탄티즘’ 이 생길 필요가 없었고, 신교교회가 교회 지상주의로 기형화하지 않았더라면 무교회주의가 생길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무교회주의는 일명 ‘전적 기독교’이다.” 라고 말하면서, 무교회주의의 근본정신이 개시교회의 처음 정신과 상통한다는 주장이다.
3-2. 무교회주의는 교회지상주의를 배격한다. 일제의 조직 교회를 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김교신은 무교회주의를 위한 무교회주의자가 아니라, 무교회주의 정신에 철저한 신앙인이라고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를 용납하지 못해다. 그의 날카로운 기성교회에 대한 공격은 1932년 12월 『기독신보』 사설에서 도리어 ‘이사벨’의 무리로 비난을 받았다. 당연히 그가 발행하던 『성서조선』은 대부분의 교회에서 비난을 받았고, 이 책을 강단 위에서 소개한 목사는 이단자로 몰렸고 탐독하던 신도는 교회에서 축출되었으며, 위안을 받던 환자는 병원에서 핍박을 받았다고 한다.
4. 나오는 말.
아직 무엇이 옳고 잘못되었는지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무교회주의를 알기 위하여 ‘김교신’ 이라는 인물탐구를 하다 보니 그가 하고자 하였던 무교회주의를 알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다. 김교신은 처음부터 자신이 무교회주의자라고 주장한 적도 없고, 교회를 향하여 먼저 비판의 글을 싣고자 했던 의도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오로지 『성서조선』 이라는 작은 잡지를 통하여 조선에 성서를 전달하며, 조선을 성서위에 세우고자 노력하였지만, 한국교회는 이러한 그의 작은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무교회주의에 대하여 발제를 하면서 “과연 무교회주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교회사상인가?” 또한 김교신에 대한 찬성의 목소리와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데 수업시간에 서로의 주장을 나누어서 주제를 놓고 다 같이 토론을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해본다.
◎참고문헌
·한국 그리스도교 신학사. 주재용
·윤치호와 김교신 -근대조선에 있어서 민족적 아이덴티티와 기독교-. 양현혜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김교신의 민족교회론 고찰. 김영도. 영남신학대학교 논문
·“교회여, 무(無)교회에게 들으라.”. 백소영. 새길춘계신학강좌
·김교신의 무교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연구. 용연호. 서울기독대학교대학원 논문
·성서조선. 김교신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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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8.11.20
  • 저작시기2018.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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