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1부, 현존하는 교육모델
제1장, 한국사회와 교육의 과제
제2장, 현존하는 기독교교육
비판적 접근(Critical Approach)
제2부, 교육모델의 비판적 성찰
제3장, 삶의 해방과 의식화 교육
제4장, 신앙공동체와 영성교육
비판적 접근(Critical Approach)
제3부, 대안적 교육모델
제5장, 비판적 문화교육학: 교육학적 접근
제6장, 기독교 단 교육학: 신학적 접근
제7장, 기독교적 비판 - 문화교육학의 구조
비판적 접근(Critical Approach)
적용(Application)
제1장, 한국사회와 교육의 과제
제2장, 현존하는 기독교교육
비판적 접근(Critical Approach)
제2부, 교육모델의 비판적 성찰
제3장, 삶의 해방과 의식화 교육
제4장, 신앙공동체와 영성교육
비판적 접근(Critical Approach)
제3부, 대안적 교육모델
제5장, 비판적 문화교육학: 교육학적 접근
제6장, 기독교 단 교육학: 신학적 접근
제7장, 기독교적 비판 - 문화교육학의 구조
비판적 접근(Critical Approach)
적용(Application)
본문내용
특히 ‘세계는 나의 교구다(The World is My Parish)’라는 말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교회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은행식 교육을 받아온 폐해를 실감할 수 있었다. 현재 사역하고 있는 교회역시 교회성장이 목적 중에 하나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역시 웨슬리의 성화를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진정한 ‘배움’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비기독교인들 외에 기독교인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게 ‘성화’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또한 실천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며,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물학적으로 성인일지라도 영적인 눈으로 봤을 때는 아직 ‘어린 아이’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먼저 찾아와 두드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찾아가야 한다.
적용(Application)
나는 두 가지 적용의 핵심을 찾았다. 첫째는 ‘변혁적 배움(Transforming Learning)’이다. 학교뿐만 아니라 교회교육역시 마찬가지로 단순히 ‘지식의 전달, 전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머리로만 알게 되는 지식들은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수도 있지만 그저 저장된 상태로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변혁적 배움’은 아는 상태로, 단순히 저장시켜놓는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느껴지게 할 때 행동으로 실행하게 하는 ‘성서적 가르침, 혹은 배움’인 것이다. 이처럼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하나의 지식이 단편적으로 저장된 상태로 끝나지만 ‘변혁적 배움’이 일어난다면 내가 변화되고 이로 인해 사회가, 또한 세계가 변화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변혁적 배움이 일어난다면 상상으로만 일어났던 일이 현실이 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마음에 느껴지기 위해서는 사람의 힘으로만 되지 않는다. 신인동형론(Synergism)의 의미와 같이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대화’이다. 여기서 두 번째 적용의 핵심이 드러나는데 바로 ‘소리(Voice)’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지금까지 배움에 있어서 일방적인 전달(One-way Delivery)이 일어났기 때문에 관계에 있어서도 일방적인 관계(One-way Relationship)가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양방향의 전달, 즉 대화(Conversation)가 있어야 하며, 대화란 진정한 의미의 관계(Relationship)를 의미한다. 대화는 사람들로 더불어 무엇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참으로 관계하는 것이며, 그 생활은 힘있는 상호성의 의미를 전인격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김태원, 「기독교교육의 이론과 실제」 (부산: 육일문화사, 1991), p.61
이것은 ‘나눔(Sharing)’이라 말할 수 있는데, 현재 개인적이고 과열된 경쟁과 전혀 상반된 모습인 것이다. 웨인 루드(Wayne R. Rood)는 그의 저서 「기독교 교육의 예술(The Art of Teaching Christianity)」에서 기독교교육의 본질은 대화를 촉진하는 예술이라고 하면서 교수-학습의 모든 관계를 대화적인 차원에서 이해하였다. Wayne R. Rood, The Art of Teaching Christianity (Nashville and New York: Abingdon, 1968), p.27
그러므로 기독교교육의 교수-학습은 인격과 인격이 만나서 주고받는 대화적 관계의 학습사건이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으로써의 교수-학습에 관한 연구 (서울: seoul theologi 1993), p.39
이것을 위해서 대안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이야기 대화’이다. 교육도 이야기처럼 서로 대화를 유도해 내는 것이다.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흐름을 타게 되면 전혀 움직이지 않아도 그 흐름대로 흘러가게 된다. 하지만 거센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양방향의, 아니, 다방향성을 가지고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연어의 힘차고 역동적인 모습을 재연해 낼 수 있다. 대화를 통한 예수님의 교육모델(요 4:1-42)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는 완벽한 교육환경(교사, 학습자, 교육목표, 교육환경, 교육방법)을 갖추고 있다. Herman H.Horne, 「예수님의 교육방법론」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0), p.22
교사는 학습자와의 접촉을 위한 매개체가 있어야 하며, 학습자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또한 학습자의 필요를 유발시켜야 하며 이때 조급하게 대화를 이끌지 않아야 한다. 또한 교사는 학습자에 대한 깊은 통찰력(Insight)을 지녀야 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을 놓치지 않고 그 상황을 이용하여 여인에게 대화를 통하여 교육을 행하셨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한국사회의 유교의 문화 속에서 자라온 우리들은 절대적인 순종 혹은 복종을 가르침 받으며 살아왔지만 그렇기에 마음에 ‘한(恨)’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와 다른 의견도 수용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받아들일 때의 그 아픔, 이제는 자신있게 ‘거절(Rejection, 단(斷))’할 자신감도 가져야 하며 자신의 의견을 조리있게 설명하여 상대를 오히려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통해서 서로의 의견도 듣고 배우며 느끼고 실천하게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사의 역할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하며, 또한 가르칠 때에 그들을 틀에 사로잡힌 사고가 아니라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양육된 교사가 양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가 진정한 배움을 경험해야 하며 그 경험을 공유할 때 그가 속한 공동체가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변혁적인 배움은 사람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고, 배움을 경험했다면 나의 소리를 통해서 ‘나 됨’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따라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말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그들은 이제 앎의 개념이 ‘행동(Action)’으로 확장될 것이고 ‘자신의 소리’를 찾게 될 것이다.
적용(Application)
나는 두 가지 적용의 핵심을 찾았다. 첫째는 ‘변혁적 배움(Transforming Learning)’이다. 학교뿐만 아니라 교회교육역시 마찬가지로 단순히 ‘지식의 전달, 전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머리로만 알게 되는 지식들은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수도 있지만 그저 저장된 상태로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변혁적 배움’은 아는 상태로, 단순히 저장시켜놓는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느껴지게 할 때 행동으로 실행하게 하는 ‘성서적 가르침, 혹은 배움’인 것이다. 이처럼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하나의 지식이 단편적으로 저장된 상태로 끝나지만 ‘변혁적 배움’이 일어난다면 내가 변화되고 이로 인해 사회가, 또한 세계가 변화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변혁적 배움이 일어난다면 상상으로만 일어났던 일이 현실이 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마음에 느껴지기 위해서는 사람의 힘으로만 되지 않는다. 신인동형론(Synergism)의 의미와 같이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대화’이다. 여기서 두 번째 적용의 핵심이 드러나는데 바로 ‘소리(Voice)’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지금까지 배움에 있어서 일방적인 전달(One-way Delivery)이 일어났기 때문에 관계에 있어서도 일방적인 관계(One-way Relationship)가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양방향의 전달, 즉 대화(Conversation)가 있어야 하며, 대화란 진정한 의미의 관계(Relationship)를 의미한다. 대화는 사람들로 더불어 무엇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참으로 관계하는 것이며, 그 생활은 힘있는 상호성의 의미를 전인격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김태원, 「기독교교육의 이론과 실제」 (부산: 육일문화사, 1991), p.61
이것은 ‘나눔(Sharing)’이라 말할 수 있는데, 현재 개인적이고 과열된 경쟁과 전혀 상반된 모습인 것이다. 웨인 루드(Wayne R. Rood)는 그의 저서 「기독교 교육의 예술(The Art of Teaching Christianity)」에서 기독교교육의 본질은 대화를 촉진하는 예술이라고 하면서 교수-학습의 모든 관계를 대화적인 차원에서 이해하였다. Wayne R. Rood, The Art of Teaching Christianity (Nashville and New York: Abingdon, 1968), p.27
그러므로 기독교교육의 교수-학습은 인격과 인격이 만나서 주고받는 대화적 관계의 학습사건이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으로써의 교수-학습에 관한 연구 (서울: seoul theologi 1993), p.39
이것을 위해서 대안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이야기 대화’이다. 교육도 이야기처럼 서로 대화를 유도해 내는 것이다.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흐름을 타게 되면 전혀 움직이지 않아도 그 흐름대로 흘러가게 된다. 하지만 거센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양방향의, 아니, 다방향성을 가지고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연어의 힘차고 역동적인 모습을 재연해 낼 수 있다. 대화를 통한 예수님의 교육모델(요 4:1-42)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는 완벽한 교육환경(교사, 학습자, 교육목표, 교육환경, 교육방법)을 갖추고 있다. Herman H.Horne, 「예수님의 교육방법론」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0), p.22
교사는 학습자와의 접촉을 위한 매개체가 있어야 하며, 학습자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또한 학습자의 필요를 유발시켜야 하며 이때 조급하게 대화를 이끌지 않아야 한다. 또한 교사는 학습자에 대한 깊은 통찰력(Insight)을 지녀야 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을 놓치지 않고 그 상황을 이용하여 여인에게 대화를 통하여 교육을 행하셨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한국사회의 유교의 문화 속에서 자라온 우리들은 절대적인 순종 혹은 복종을 가르침 받으며 살아왔지만 그렇기에 마음에 ‘한(恨)’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와 다른 의견도 수용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받아들일 때의 그 아픔, 이제는 자신있게 ‘거절(Rejection, 단(斷))’할 자신감도 가져야 하며 자신의 의견을 조리있게 설명하여 상대를 오히려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통해서 서로의 의견도 듣고 배우며 느끼고 실천하게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사의 역할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하며, 또한 가르칠 때에 그들을 틀에 사로잡힌 사고가 아니라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양육된 교사가 양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가 진정한 배움을 경험해야 하며 그 경험을 공유할 때 그가 속한 공동체가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변혁적인 배움은 사람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고, 배움을 경험했다면 나의 소리를 통해서 ‘나 됨’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따라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말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그들은 이제 앎의 개념이 ‘행동(Action)’으로 확장될 것이고 ‘자신의 소리’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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