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정에 대한 몇 가지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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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과정에 대한 몇 가지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다섯 줄로 볼 수 있으면서도 사뇌가 본래의 격식과는 아주 달라진 데가 있으니 바로 감탄구가 놓인 위치이다. “니미 나” 하는 말 앞에 와야 할 감탄구가 “아소 님하”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사뇌가가 해체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겠다. 사뇌가가 아닌 향가야 민요에 흔히 있는 형식을 그대로 따왔으니 해체가 확인되기 어렵지만, 고도로 세련된 짜임새를 자랑하는 사뇌가는 감탄구가 놓인 위치만 달라져도 본래의 격식에서 이탈했다. 조동일(1994), 『한국문학통사 1』, 지식산업사. pp. 323~324.
4. 감상 및 비평
처음에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왜 이런 노래를 불렀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 단순히 작품만 본다면 이상한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들은 창작배경이 사실인지 너무 궁금했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다가 정서가 예종ㆍ인종ㆍ의종ㆍ명종 4대에 걸쳐서 살았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한 번 사는 인생에 그렇게나 많은 임금이 바뀌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혼란스러웠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줄을 잘 서야하는 우리 사회이기에 정서도 줄을 잘 서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앞의 사람이 잘못 서는 바람에 엉뚱한 줄을 설 때가 있는 법. 잘 나가던 동래정씨의 정서는 음모에 휘말려 고향인 동래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때의 왕인 의종은 가서 있으면 마땅히 소환하겠다고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귀양에서 풀려난 것은 의종이 아닌 명종이 즉위한 한참 뒤의 일이었다. 소환한다는 명령을 기다리다가,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노래를 지으니 그 사설이 슬펐다는 말이 <고려사> 열전에 보인다. 그 후로 정서가 스스로 호를 과정이라고 하여 그 곡조를 정과정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정서가 유배생활이 여유가 있었다는 것의 해석은 곤란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슬프고 울적할 때 거문고 등의 악기를 어루만지면서 쌓인 한과 비탄을 털어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박노준(1989), 「정과정곡의 역사적 배경」,『한양어문연구 7』, 한양어문연구회, p. 34.
여성적 어조가 인상적인데, 그 당시에는 그런 여성적 어조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궁금하다. 단순히 대중가요에서 남자가 여자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과정을 여러 번 읽으면서 행간을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사람 사이의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유배지에서 왕을 생각했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했던 그 믿음에 대해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자신의 부귀에만 집착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보다는 믿음에 초점을 두고 보고 싶다.
<참고문헌>
권영철(1985), 『정과정가신연구』, 향가여요연구(황패강, 박노준, 박기중 공편), 이우출판사.
김인택(1997), 「정과정곡 노랫말 풀이에 대한 회고와 전망」,『우리말 연구 제 7집』, 우리말학회.
조동일(1994), 『한국문학통사 1』, 지식산업사.
황병익(2006), 『고전시가 다시읽기』, 새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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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11.20
  • 저작시기2018.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7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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