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경제개발의 긍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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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정희 정권 경제개발의 긍정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1960년대 정치·경제적 시대상황
2.1 국외적 정치·경제상황
2.2 국내적 정치·경제상황

3.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과 특징
3.1 경제개발계획
3.1.1. 제1차 경제개발계획
3.1.2. 제2차 경제개발계획
3.1.3. 제3차 경제개발계획
3.1.4. 제4차 경제개발계획

3.2 경제개발계획의 특징
3.2.1. 국가 주도의 자본축적
3.2.2. 차관경제
3.2.3. 수출제일주의 정책
3.2.4. 1960년대 말 1970년 초 경제위기
3.2.5. 8.3조치와 중화학공업화

3.3 경제개발계획의 산물
3.3.1. 울산공업단지
3.3.2. 구로공단
3.3.3. 경부고속도로
3.3.4. 포항제철
3.3.5. 전자공업
3.3.6. 새마을 운동

4. 맺음말

본문내용

안은 1959년에 자유당 정권, 1961년 민주당 정권이 시안작성에 착수했다가 미완성으로 남겨둔 장기 경제개발 계획안을 참고로 하여 서둘러 대폭 수정 보완한 것으로 대단히 조잡한 수준이었다. 계획에 책정된 공장의 대부분은 국내에 아직 설립된 바 없는 신 공장 이었으며 관계 공무원은 물론 실업가들조차 외국에 나가 관계공장을 자세히 살펴본 사람이 드문 가운데 소요액이 책정되었다.” 김정렴, 『아 박정희 (김정렴 정치 회고록)』, 중앙M&B, 1998, pp 156~157
박 정권 시기에 추진되기 앞서 계획되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국 실정에 맞추어 계획을 추진하였던 점은 앞서 계획되었던 그것과는 확실한 차이를 두고 싶다. 더불어서 정책을 실행 하는 것과 계획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서 “세계를 정복 하겠다.” 는 계획과 ‘세계를 정복한 것’ 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듯이 말이다.
머리말에서도 언급했거니와 현재의 시점으로 당시 상황을 파헤치려 한다면 이것은 연구할 이유 자체가 없는 것이다.
60년대의 경제사정을 알면 기가 막힐 정도의 가난함 그대로였다. 박정희정권이 이룩해놓은 경제발전은 ‘성숙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를 가능케 하는 절대조건이었다. 그의 경제철학은 경제발전이 국가안보와 통일의 기초가 된다는 것, 경제발전은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다는 것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야반 0시. 그때 나는 서재의 일우에 앉아 붓을 멈추고, 멍하니 비에 젖어가는 밤의 가로를 내다보고 있었다, 문득 저 거리로 뛰어나가 내 재주로 저 비를 막거나, 아니면 저 비 때문에 수없이 울고 있을 동포와 더불어 이 밤을 지새우고 싶은 격정을 느꼈다. 5천년을 하루같이 시달려온, 피곤한 민족이 모처럼 일어서려는 비장한 이 마당에, 다시금 하늘은 시련을 내리다니. 그러나 우리는 일어서야 했고 이 고비를 싸워 넘어서야 했다.” -1963년 7월 하순, 박정희의 일기
- 고정일, 『나라를 구한 대통령, 나라를 망친 대통령』, 2006.12.10.
중국의 덩샤오핑,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 파키스탄 무샤라프 대통령 등 아시아의 여러 지도자들이 한결같이박정희 경제모델을 벤치마킹하여 국가경제를 일으키려 노력했다. 그들 모두 박정희를 가장 존경스럽고 본받을 지도자로 꼽았다. 고정일, 『나라를 구한 대통령, 나라를 망친 대통령』, 2006.12.10.
덩샤오핑은 박정희의 외교·경제정책을 본받아 실사구시 전략을 구사, 미국과 협조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을 다국적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지역으로 만들었다. 이를 위해 천안문사태 때 탱크군단을 동원, 민주화를 열망하여 광장에 운집한 100만 학생시민에게 발포하여 2천여 명을 사살, 1만 2천 명의 부상자를 내는 참사를 빚었다. 그러나 오늘 중국인들은 그를 천하대란에 빠진 나라를 구한 은인으로 추앙한다. 리콴유는 국민의 인권·언론을 통제, 길거리에 휴지 한 장을 버려도 곤장 20대, 마약소지자는 사형 등의 무시무시한 형벌로 국민들을 통치, 싱가포르를 아시아 최고의 부국으로 만들었다. 장제스, 장징궈는 1949년 중국 공산당에 밀려 대만으로 후퇴한 뒤, 국민정부를 다시 세워 1987년까지 38년간 계엄령 하 1당 독재정치를 펼쳤지만, 경제우선 정책으로 대만의 발전을 이끌었다. 국민들은 이들을 독재자라고 비난하지 않았으며, 나라를 구하고 일으킨 은인으로 추앙하고 존경한다.
저절로 이 나라가 이렇게 세월이 가니까 정보화시대, 중화학공업이니 하고 있지만 그 토대를 마련한 시기가 박정희 정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본도 없고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가 지금의 소말리아나 이디오파아 같은 똑같은 처지였었다. 정치 얘기하면서 늘 거론되는 지도자의 지도력이란 그런대서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간의 제일욕구인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경제개발에 착수한 것과 .우리나라 영토의 토질에 따른 농사법 이라던가 농사를 지어서는 전 국민이 먹고 살수 없으니 ‘공업화만이 살길이다’ 라는 등식도 박정희정권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 국민이 힘을 합치면 우리도 잘 살수 있다고 해서 국민의 힘을 모으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하여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물론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했던 ‘전태일 사건’등, 화려한 경제개발의 뒤에는 이런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IMF의 주범이며 인권탄압, 빈부격차의 심화, 정경유착의 시초, 등의 폐단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그 때로부터 기초하여 오늘날의 문제로 작용한다고 해버리는 것은 자신들 스스로가 아직도 박정희 정부 밑에 살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자기모순 적인 발언은 아닐까? 이러한 문제제기는 박정희 정권 다음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맡겨질 일은 아닌가?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현재이다.
분명히 박 정권의 경제개발계획 자체에는 문제점이 존재하긴 했지만 우리나라 여건에 비추어 본다면 성공한 정책이었으며 칭찬 받을 만하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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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렴. 『아 박정희 (김정렴 정치 회고록)』. 중앙M&B. 1998.
고정일. 『나라를 구한 대통령, 나라를 망친 대통령』. 2006.12.10.
김형아| 신명주 역.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 (유신과 중화학공업)』. 일조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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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새마을운동의 성과와 앞으로의 發展課題, 大韓地籍公社』. 1978.
통계청, http://www.index.go.kr/egams/default.jsp / kosis 국가통계포털 : http://www.kosi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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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11.20
  • 저작시기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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