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나. 칸트의 의무론
1. 문제제기
2. 사 례
3. 적 용
Ⅱ. 본 론
1. 칸트의 이론 개관 (간단한 예를 통하여)
Ⅲ. 결 론
가. 칸트의 자유론
1. 도덕교육에서의 적용
나. 칸트의 의무론
1. 문제제기
2. 사 례
3. 적 용
Ⅱ. 본 론
1. 칸트의 이론 개관 (간단한 예를 통하여)
Ⅲ. 결 론
가. 칸트의 자유론
1. 도덕교육에서의 적용
본문내용
문에 슬퍼할 가족, 친구들이 있고, 그들은 나 때문에 슬퍼할 것이 눈에 아른거려서, 그리고 내 자신이 이렇게 나약한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아니라고 대답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칸트의 제 2 도덕 법칙에 위배된다. 나 스스로를 목적으로 행위 했어야 하는데, 다른 것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서 나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칸트의 제 2 도덕 법칙에 정당화되려면, 우리는 사람들을 스스로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개인으로 인정해야만 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자율권을 존중해야만 한다. 따라서 내가 자살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자살 충돌을 느끼거나, 슬퍼하거나, 또는 그 밖에 어떠한 부정적 상황을 초래하는 한 자살은 정당화될 수 없다.
# 2. 우리는 자유로운가?
칸트의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하자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의지’ 또는 ‘정언명령’ 등을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레포트에서 칸트 철학을 선택한 이유는 칸트의 <자유론>에 대해서 매우 매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학교에 갈지 늦잠을 잘지 고민하는 것에 대해 칸트의 철학을 적용시켜보자.
수업을 듣지 않고 늦잠을 자고 싶은 것이 더 끌린다. 이것은 칸트가 말하는 ‘경향성(마음의 이끌림)’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나는 학생으로서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 이것이 ‘의무감’이다. 나는 분명 늦잠을 자는 것에 대해 더 끌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향성은 전혀 없이, 오직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는 의무에 따라 행위 하였다. 그러므로 칸트에 의하면 이것은 도덕적으로 행위 한 것이고, 그 결과 나는 자유로운 존재였던 것이다. 내 욕망을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순된 존재이다. 그렇게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실상은 통제를 원한다. 이미 통제 하에서 행위 하는 것이 몸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도덕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에서 교수님이 과제를 부여해 주실 때라든가, 어떠한 집단에서 우두머리보다는 일원이 되는 것이 더 속 편하다고 느낄 때 등이 그 예이다. 그리고 공황이나 폭동 같은 혼란한 상황이 되면 통제를 원해서 법이 생기는 예들을 보더라도 내가 속한 집단 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칸트는 우리가 자유롭게 행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극히 작다는 자유의 문제를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Ⅲ. 결 론
1. 도덕교육에서의 적용
먼저 여담이지만 칸트의 자유론은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자유와 매우 대비되는 또 다른 자유의 정의이여서 수업시간에 이것을 배울 때의 느낌은 충격적이었다. 이것이 칸트의 철학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칸트의 철학에 근거하면 자유로운 존재였구나 하는 사실에 약간의 안도감과 기쁨을 느꼈다.
사실 칸트의 철학에 대해서 짧지는 않은 레포트를 썼지만 아직도 칸트의 철학은 어렵다. 그가 일생 동안 고민해온 문제를 며칠 또는 어쩌면 몇 시간 만에 파악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다. 또한 레포트를 쓰면서 아직도 내가 사례를 적절히 제시한 것인지, 사례를 칸트의 입장과 비슷하게나마 분석은 했는지도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그래서 칸트가 일생을 바쳐 연구해 온 그의 사상에 흠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나 칸트의 철학이 그나마 나에게 쉽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행위준칙에 근거하여 도덕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평소 우리가 생각해오는 도덕적인 것, 그것이 칸트가 추구하는 도덕이고, 그 결과 우리는 대부분의 도덕적 사례에 이것을 적용시킬 수 있다.
칸트의 철학을 교육적 측면에 접목시켜보자면, 우리는 아동에게 명확한 행위준칙을 가르쳐서 도덕적인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행위준칙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기,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하기, 친구가 준비물을 안가져 왔을 때 빌려주기 등 정말 우리가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자신의 삶을 규율하는 법칙을 ‘스스로’ 찾도록 하여 완전한 인간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스스로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 행동인가 끊임없이 질문하여 스스로가 행위준칙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되, 이때의 마음은 나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고 진정으로 스스로 생각해보았을 때, 이것이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따라서 행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칸트가 주장했던 철학이 아닐까?
이러한 칸트의 제 2 도덕 법칙에 정당화되려면, 우리는 사람들을 스스로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개인으로 인정해야만 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자율권을 존중해야만 한다. 따라서 내가 자살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자살 충돌을 느끼거나, 슬퍼하거나, 또는 그 밖에 어떠한 부정적 상황을 초래하는 한 자살은 정당화될 수 없다.
# 2. 우리는 자유로운가?
칸트의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하자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의지’ 또는 ‘정언명령’ 등을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레포트에서 칸트 철학을 선택한 이유는 칸트의 <자유론>에 대해서 매우 매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학교에 갈지 늦잠을 잘지 고민하는 것에 대해 칸트의 철학을 적용시켜보자.
수업을 듣지 않고 늦잠을 자고 싶은 것이 더 끌린다. 이것은 칸트가 말하는 ‘경향성(마음의 이끌림)’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나는 학생으로서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 이것이 ‘의무감’이다. 나는 분명 늦잠을 자는 것에 대해 더 끌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향성은 전혀 없이, 오직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는 의무에 따라 행위 하였다. 그러므로 칸트에 의하면 이것은 도덕적으로 행위 한 것이고, 그 결과 나는 자유로운 존재였던 것이다. 내 욕망을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순된 존재이다. 그렇게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실상은 통제를 원한다. 이미 통제 하에서 행위 하는 것이 몸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도덕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에서 교수님이 과제를 부여해 주실 때라든가, 어떠한 집단에서 우두머리보다는 일원이 되는 것이 더 속 편하다고 느낄 때 등이 그 예이다. 그리고 공황이나 폭동 같은 혼란한 상황이 되면 통제를 원해서 법이 생기는 예들을 보더라도 내가 속한 집단 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칸트는 우리가 자유롭게 행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극히 작다는 자유의 문제를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Ⅲ. 결 론
1. 도덕교육에서의 적용
먼저 여담이지만 칸트의 자유론은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자유와 매우 대비되는 또 다른 자유의 정의이여서 수업시간에 이것을 배울 때의 느낌은 충격적이었다. 이것이 칸트의 철학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칸트의 철학에 근거하면 자유로운 존재였구나 하는 사실에 약간의 안도감과 기쁨을 느꼈다.
사실 칸트의 철학에 대해서 짧지는 않은 레포트를 썼지만 아직도 칸트의 철학은 어렵다. 그가 일생 동안 고민해온 문제를 며칠 또는 어쩌면 몇 시간 만에 파악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다. 또한 레포트를 쓰면서 아직도 내가 사례를 적절히 제시한 것인지, 사례를 칸트의 입장과 비슷하게나마 분석은 했는지도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그래서 칸트가 일생을 바쳐 연구해 온 그의 사상에 흠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나 칸트의 철학이 그나마 나에게 쉽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행위준칙에 근거하여 도덕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평소 우리가 생각해오는 도덕적인 것, 그것이 칸트가 추구하는 도덕이고, 그 결과 우리는 대부분의 도덕적 사례에 이것을 적용시킬 수 있다.
칸트의 철학을 교육적 측면에 접목시켜보자면, 우리는 아동에게 명확한 행위준칙을 가르쳐서 도덕적인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행위준칙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기,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하기, 친구가 준비물을 안가져 왔을 때 빌려주기 등 정말 우리가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자신의 삶을 규율하는 법칙을 ‘스스로’ 찾도록 하여 완전한 인간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스스로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 행동인가 끊임없이 질문하여 스스로가 행위준칙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되, 이때의 마음은 나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고 진정으로 스스로 생각해보았을 때, 이것이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따라서 행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칸트가 주장했던 철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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