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교육론] 처용가 - 무능력한 남자의 한숨과 신라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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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시가교육론] 처용가 - 무능력한 남자의 한숨과 신라의 몰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통을 눈으로 보면서도 어찌 할 수가 없었던 무능한 한 남자의 한숨일 수도 있는 것이다.
『화랑세기』를 보면 신라의 문란한 근친혼이 나와 있다. 특히 낭도(郎徒)가 자신의 처와 딸을 상선(上仙) 또는 상랑(上郎)에게 상납해야 진급할 수 있는 화랑의 제도를 소개하고 있다. 이 기록이 사실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또한 이런 납처의 예는 여러 신라중대의 역사에서 여러 발견할 수 있다. (검일(黔日)의 신라 배반사건, 22대 풍월주 양도공(良圖公)이 납처제도 혁파 시도 등)
이런 사실을 보면 처용 처의 간통은 바로 신라중대 납처제도의 하대의 부활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과거에 있던 구법의 부활은 당시 경문왕가에 의해 추진되던 복고정치의 한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처용은 이런 복고정치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인물이었고, 자신의 처의 간통을 보면서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그의 한을 전혀 생뚱맞은 벽사진경의 의미로 해석해버린 신라 역시 그의 한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Ⅲ. 결 론
이번 작품의 작품론을 쓰면서 문득 나의 군생활이 떠올랐다.
나는 올해 1월에 1년 8개월 동안의 군복무를 마치고, 무사히 제대를 했다. 그러나 나의 2년의 생활이 그리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일, 이등병 시절에 선임병들에게 당했던 갈굼이나, 힘든 훈련도 나를 지치게 했었지만, 가장 나를 괴롭혔던 것은 바로 여자친구의 변심이었다. 여자친구의 헤어지자는 전화를 받고, 그 다음날 곧바로 특별청원휴가를 받고, 그녀의 맘을 돌리기 위해서 부랴부랴 달려갔던 그 날이 떠오른다. 아무리 사정해봤지만 나는 군인이었고, 그 옆을 지켜줄 수 없었기에, 독한 술로 괴로운 휴가를 보내며 다시 복귀했었다. 그때 나의 모습이 어쩌면 처용의 모습과 닮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2년이라는 국방의 의무와 납처제도, 시대는 다르지만 그 사회의 제도는 개인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맘대로 좌지우지하는 무서운 권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전역한 바로 그날, 친구들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정말, 고생했다. 이제 더 좋은사람 만날꺼야.” 그 말을 듣고 왠지 2년동안의 아픔이 약간은 낫는 것 같았다. 처용도 그 날의 고통과 인내의 대가로 지금은 귀신을 쫓아내는 성스러운 문신으로 숭앙받고 있으니, 그도 지하에서 위로를 받고 있는지....
처용랑이시여 편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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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11.24
  • 저작시기2018.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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