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1. 연구 목적 및 방법
2. 연구사 개관
Ⅱ. 송강의 시문학 배경
1. 시대적 배경
2. 생애
(1) 성장 및 수확기
(2) 출사 및 거상기
(3) 반복되는 정치계에서의 진퇴
(4) 문학적 원숙기
Ⅲ. 송강 문학의 사상적 배경
1. 유교사상
2. 불교사상
3. 도가사상
Ⅳ. 문학사적 위치
Ⅴ. 나는 왜 송강을 기억하는가?
1. 내가 만난 송강
2. 송강, 그대가 부럽소!!
3. 원하지 않았던 忙中閑 - 마음의 고향 ‘담양 창평’
Ⅵ. 글을 마치며
1. 연구 목적 및 방법
2. 연구사 개관
Ⅱ. 송강의 시문학 배경
1. 시대적 배경
2. 생애
(1) 성장 및 수확기
(2) 출사 및 거상기
(3) 반복되는 정치계에서의 진퇴
(4) 문학적 원숙기
Ⅲ. 송강 문학의 사상적 배경
1. 유교사상
2. 불교사상
3. 도가사상
Ⅳ. 문학사적 위치
Ⅴ. 나는 왜 송강을 기억하는가?
1. 내가 만난 송강
2. 송강, 그대가 부럽소!!
3. 원하지 않았던 忙中閑 - 마음의 고향 ‘담양 창평’
Ⅵ. 글을 마치며
본문내용
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너무나 부러운 부분이었다. 비록 그가 어렸을 때 ‘을사사화’로 커다란 상처를 입고 불운한 유년시절을 보내기는 했으나, 담양 창평에서의 벗들과의 ‘사귐’은 그야말로 이후 송강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촌 김윤제를 통해 얻은 경제적, 정서적 안정 그리고 막역한 평생지기로 남은 김성원과의 만남도 그렇다. 어디 그뿐인가. 면앙정 송순을 비롯한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과 같은 스승 밑에서 학문적 소양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정철에게 있어서는 축복이 아니었나 싶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호남 시단의 맥을 이루는 문인들과의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율곡과 같은 친구를 둔 것도 정철에게 있어서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송강은 政界에서 그의 강직함, 강인함, 굳은 신념 내지는 타협하지 않는 고집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러한 송강을 변호해주고 믿어준 이가 율곡이 아니었던가. 또한 송강의 모난 부분에 대해 지적해 주고 많은 조언을 해준 이가 바로 율곡이다.
힘들고 어려운 삶의 여정이긴 했지만 송강은 함께 시를 지으며 어울릴 수 있는 벗들과 좋은 스승들 그리고 힘이 되어주는 율곡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 물론 송강이 기질적으로 호방하고 활달하고 시원스럽고 정서적인 詩情이 풍부했기에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족만큼이나 소중하고 값진 사람들은 친구이다. 물론 스승을 비롯해서 말이다.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고 어렵기도 하지만 인간관계 안에서 살아 호흡하는 이 또한 사람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송강은 정치적으로 힘든 위치에 있었지만 그만큼 또한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값진 보화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3. 원하지 않았던 ‘忙中閑’ - 마음의 고향 ‘담양 창평’
송강의 삶을 보면서 담양 창평이라는 곳이 참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창평은 그의 유년시절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제 2의 고향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힘들고 어려운 정치 세계에서 잠시 내려와-낙향-쉼을 갖을 수 있는 안식처피난처이기도 했다.
뜻하지 않은 정치적 어려움으로 송강은 출사한 이후 담양 창평으로 4번의 낙향을 한다.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창평, 그 대자연의 품을 찾은 송가의 심정은 어땠을까. 정신적인 쉼을 갖는 곳이기도 했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기분이 씁쓸했을 것 같다. 화려한 정치 무대 뒤안길로 밀려난 것이니 만큼 우울함과 서글픔의 정서가 더 짙었을 것 같다. 성공 흔히 말하는 입신양명의 모습이라기보다 힘들게 쫓겨 내려온 신세이니, 그의 심사 또한 착찹했으리라.
하지만 낙향하여서 창평, 그 성산 안에 머무르면서 유유히 흐르는 자미탄을 바라보며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을 앉고서 송강은 이 다음의 ‘도약’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쇠약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추스리며 면앙정을 일면 부러워하고 선계의 선인이 되어보기도 했을 그 내면의 소망을 맛보았을 것이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 서글픔, 회한의 마음들이 송강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힘들게 할 때 엄마 품속 같은 자연은 그의 마음에 크나큰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사실 그의 삶에 있어 네 번에 이어지는 낙향은 그의 문학적 성숙도를 한층 더 깊어지게 했다. 힘들고 외롭고 괴로울 때, 찾아가서 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눈 속에서 붉게 피어난 꽃 한 송이 발견하는 기쁨일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담양 창평은 송강 문학의 모태요, 낙향의 기간은 수많은 생명을 지닌 작품들을 낳게 한 기간이었던 같다. 정치가로서는 실패의 일면으로 보일 수 있는 기간들이었지만 정철이 ‘시인 정철’일 수 있게 한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Ⅵ. 글을 마치며
하지만 송강의 전 생애 흔적을 돌아볼 때 나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알 수 없는 아림이 가슴 한 켠에 남는다. 흔히 명량유쾌한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Happy Ending이 아니어서인지도 모른다. 송강은 쟁론의 한 중심부에서 많은 ‘칼’을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과 시련과 괴로움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이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그가 죽은 후 100년 동안이나 송강에 대한 엇갈린 평가로 여러 번 죽고 또 죽었다. 인생 말년에 그렇게 연모하던 선조에게서 유배지로 귀향 보내지고, 강화에서 우거하는 동안 먹을 것이 없어 비참해 했던 송강의 모습이 그려진다. 쇠약해진 몸으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을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어찌되었던 간에 임금에게 충성하고, 백성들 잘 다스려 보겠다고 아둥바둥하며 달려왔는데 그 끝의 모습은 그렇게도 유약한 모습 그 자체였으니까. 물론 이러한 모습은 우리네 인생의 끝자락에 남아있을 단면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송강은 자신의 정치 인생으로 인해 많이 고달파 했던 것은 사실이다. 자기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정치는 하지 말고 바른 마음을 닦는데 충실하라고 한다. 그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말이다.
송강 정철의 삶과 문학을 통해서 내 나름대로의 평을 하나 내려본다. 송강 정철, 그는 시인이요 정치가요 음악과 술, 자연을 알았던 풍류가였다. 그렇지만 인생의 많은 굴곡 곡선을 그리며 살았던 사나이기도 했다.
지금의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 좋은 것을 보면 즐길 줄 알고,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할 줄도 알고, 한 편 약한 부분도 있어 실수도 하고.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를 지니며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이었던 것 같다. 시대적 희생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정철로 인해 죽은 사람도 많았고, 다른 누군가에겐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했던 사람이다. 요리조리 봐도 ‘송강’은 참 다양한 인생의 맛을 보고 돌아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우리에게 그런 자신의 분신과 같은 ‘생명들’을 남기어 놓고 말이다.
<참고문헌>
1. 김전용, ‘정철 시가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1992.
2. 박언배, ‘정철과 윤선도의 국문시가 비교연구’, 인하대학교 1991.
3. 박정애, ‘정철의 훈민가 연구’,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1998.
4. 박영주, “정철 평전”, 중앙M&B, 1999.
사촌 김윤제를 통해 얻은 경제적, 정서적 안정 그리고 막역한 평생지기로 남은 김성원과의 만남도 그렇다. 어디 그뿐인가. 면앙정 송순을 비롯한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과 같은 스승 밑에서 학문적 소양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정철에게 있어서는 축복이 아니었나 싶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호남 시단의 맥을 이루는 문인들과의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율곡과 같은 친구를 둔 것도 정철에게 있어서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송강은 政界에서 그의 강직함, 강인함, 굳은 신념 내지는 타협하지 않는 고집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러한 송강을 변호해주고 믿어준 이가 율곡이 아니었던가. 또한 송강의 모난 부분에 대해 지적해 주고 많은 조언을 해준 이가 바로 율곡이다.
힘들고 어려운 삶의 여정이긴 했지만 송강은 함께 시를 지으며 어울릴 수 있는 벗들과 좋은 스승들 그리고 힘이 되어주는 율곡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 물론 송강이 기질적으로 호방하고 활달하고 시원스럽고 정서적인 詩情이 풍부했기에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족만큼이나 소중하고 값진 사람들은 친구이다. 물론 스승을 비롯해서 말이다.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고 어렵기도 하지만 인간관계 안에서 살아 호흡하는 이 또한 사람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송강은 정치적으로 힘든 위치에 있었지만 그만큼 또한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값진 보화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3. 원하지 않았던 ‘忙中閑’ - 마음의 고향 ‘담양 창평’
송강의 삶을 보면서 담양 창평이라는 곳이 참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창평은 그의 유년시절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제 2의 고향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힘들고 어려운 정치 세계에서 잠시 내려와-낙향-쉼을 갖을 수 있는 안식처피난처이기도 했다.
뜻하지 않은 정치적 어려움으로 송강은 출사한 이후 담양 창평으로 4번의 낙향을 한다.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창평, 그 대자연의 품을 찾은 송가의 심정은 어땠을까. 정신적인 쉼을 갖는 곳이기도 했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기분이 씁쓸했을 것 같다. 화려한 정치 무대 뒤안길로 밀려난 것이니 만큼 우울함과 서글픔의 정서가 더 짙었을 것 같다. 성공 흔히 말하는 입신양명의 모습이라기보다 힘들게 쫓겨 내려온 신세이니, 그의 심사 또한 착찹했으리라.
하지만 낙향하여서 창평, 그 성산 안에 머무르면서 유유히 흐르는 자미탄을 바라보며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을 앉고서 송강은 이 다음의 ‘도약’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쇠약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추스리며 면앙정을 일면 부러워하고 선계의 선인이 되어보기도 했을 그 내면의 소망을 맛보았을 것이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 서글픔, 회한의 마음들이 송강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힘들게 할 때 엄마 품속 같은 자연은 그의 마음에 크나큰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사실 그의 삶에 있어 네 번에 이어지는 낙향은 그의 문학적 성숙도를 한층 더 깊어지게 했다. 힘들고 외롭고 괴로울 때, 찾아가서 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눈 속에서 붉게 피어난 꽃 한 송이 발견하는 기쁨일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담양 창평은 송강 문학의 모태요, 낙향의 기간은 수많은 생명을 지닌 작품들을 낳게 한 기간이었던 같다. 정치가로서는 실패의 일면으로 보일 수 있는 기간들이었지만 정철이 ‘시인 정철’일 수 있게 한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Ⅵ. 글을 마치며
하지만 송강의 전 생애 흔적을 돌아볼 때 나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알 수 없는 아림이 가슴 한 켠에 남는다. 흔히 명량유쾌한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Happy Ending이 아니어서인지도 모른다. 송강은 쟁론의 한 중심부에서 많은 ‘칼’을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과 시련과 괴로움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이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그가 죽은 후 100년 동안이나 송강에 대한 엇갈린 평가로 여러 번 죽고 또 죽었다. 인생 말년에 그렇게 연모하던 선조에게서 유배지로 귀향 보내지고, 강화에서 우거하는 동안 먹을 것이 없어 비참해 했던 송강의 모습이 그려진다. 쇠약해진 몸으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을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어찌되었던 간에 임금에게 충성하고, 백성들 잘 다스려 보겠다고 아둥바둥하며 달려왔는데 그 끝의 모습은 그렇게도 유약한 모습 그 자체였으니까. 물론 이러한 모습은 우리네 인생의 끝자락에 남아있을 단면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송강은 자신의 정치 인생으로 인해 많이 고달파 했던 것은 사실이다. 자기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정치는 하지 말고 바른 마음을 닦는데 충실하라고 한다. 그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말이다.
송강 정철의 삶과 문학을 통해서 내 나름대로의 평을 하나 내려본다. 송강 정철, 그는 시인이요 정치가요 음악과 술, 자연을 알았던 풍류가였다. 그렇지만 인생의 많은 굴곡 곡선을 그리며 살았던 사나이기도 했다.
지금의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 좋은 것을 보면 즐길 줄 알고,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할 줄도 알고, 한 편 약한 부분도 있어 실수도 하고.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를 지니며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이었던 것 같다. 시대적 희생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정철로 인해 죽은 사람도 많았고, 다른 누군가에겐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했던 사람이다. 요리조리 봐도 ‘송강’은 참 다양한 인생의 맛을 보고 돌아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우리에게 그런 자신의 분신과 같은 ‘생명들’을 남기어 놓고 말이다.
<참고문헌>
1. 김전용, ‘정철 시가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1992.
2. 박언배, ‘정철과 윤선도의 국문시가 비교연구’, 인하대학교 1991.
3. 박정애, ‘정철의 훈민가 연구’,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1998.
4. 박영주, “정철 평전”, 중앙M&B,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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