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속에 나타난 유교사상에 대하여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금오신화」속에 나타난 유교사상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유교사상이 무엇인가?
2. <금오신화>작품에 나타난 유교사상
(1). 삼강오륜사상
(2). 충 사상
(3). 효 사상
(4). 정절 관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말씀에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예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후에도 예절로써 장사지내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일을 부인이 실천했소” 전영진, Ibid, p.63
라고 하여 부인의 행실을 칭찬하였는데 여기서도 부모에 대한 효성스러움을 알 수 있다.
(4) 정절 관
정절은 남녀간에 지켜야하는 절개로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고 하는 것이 봉건적 유교사회의 윤리 도덕이었다. 그래서 유고를 국가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사회가 유교사상에 의해 지배되었다. 또한 당시는 남성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과 함께 유교의 정절관념은 굳어졌는데 정절에 대한 요구는 여성에게만 요구되어, 여자가 한 남자를 섬기는 것만이 사회적 미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금오신화>도 예외는 아니며 작품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에 보면 한 女鬼가 부처님 앞에 내놓은 축원문 내용을 보면,
“저는 가냘픈 몸으로서 멀리는 피난가지 못해 깊숙한 골방으로 숨어들어 끝내 굳건히 정절을 지키고 벗어난 행실을 저지르지 않고서 난리의 화를 면했습니다.” 전영진, Ibid, p.15
라고 하여 난리를 당하고서도 굳건히 정조를 지켰다고 하였다.
또한 양생이 女鬼를 따라가 노닐 적에 유씨라는 여인이 읊는 시 가운데,
“금석같이 굳은 절개 지켜온 지 몇 해 런고
옥같이 깊은 얼굴 구천에 깊이 묻혀
우습구나 도리화는 봄바람을 못 이겨서
이리저리 나부끼어 남의 집에 떨어지니
백옥 같은 나의 마음 금갈 줄이 있으랴“ 전영진, Ibid, p.27
라고 하여 금석같이 절개를 지켰으며 도리화가 봄바람에 못 이겨 이리저리 떨어지는 것을 정조를 지키지 못함에 비유하여 정조가 없음을 비웃으며, 자신의 백옥 같은 절개는 금이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함으로써 굳은 정절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정절은 남녀가 만나 함부로 정을 맺지는 않았는데, 양생과 女鬼가 처음 만나서 정을 맺기에 앞서 女鬼가 하는 말속에서 드러난다.
“낭군께서는 저를 멀리하여 저버리지 않으신다면 끝내 낭군의 시중을 들까 하오며, 만일 저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영원히 멀리 떠나겠습니다.” 전영진, Ibid, p.19
라고 한 것으로 한번 맺은 가약은 끝까지 정절로써 지켜야 할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정절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정절은 육체적인 것만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데 김씨가 오씨의 시가 너무 음탕하다고 꾸짖으면서 한 말에 보면,
“오늘의 모임에서는 여러 말 할 것 없이 다만 이 자리의 광경만을 읊어야 할텐데, 어째서 마음의 회포를 털어놓아 우리들의 절조를 잃어야 할 것이냐?” 전영진, Ibid, p.25
라고 하여 마음의 정절도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에서도 崔娘이 부모님께 이생과의 관계를 털어놓은 말 가운데 보면,
“부모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남은 생명이나 보전되겠습니다만, 만약 저의 이 간곡한 청을 거절하신다면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도련님과 저승에서 다시 함께 만날지언정 절대로 다른 가문에는 시집가지 않겠습니다.” 전영진, Ibid, p.56
라고 하여 이생에게 한번 몸과 마음을 허락한 후에는 어떠한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일부종사 하려는 굳은 정절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정절은 여자뿐만이 아니라 남자에게도 있었음을 볼 수 있는데,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에서 양생이 女鬼와 이별한 뒤에,
“서생은 그 후 다시는 장가가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살아갔다 하는데, 그가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아는 이가 없다.” 전영진, Ibid, p.37
라고 하여 양생이 다시 장가가지 않고 절개를 지켰음을 알 수 있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에서도,
“서생이 아내를 지극히 생각한 나머지 병이 나서 두 서너 달만에 그도 세상을 떠났다.” 전영진, Ibid, p.64
라고 하여 이생이 아내를 생각한 나머지 병으로 죽어 절개를 지켰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에서 이생과 崔娘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가 그의 절개를 사모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전영진, Ibid, p.64
라고 하여 당시 사회 속에서 정절은 남녀를 막론하고 자랑할만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금오신화>에 나타난 정절 관을 보면 여자에게 있어서 정절은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소중한 것이었으며, 남자도 정절을 지켰음을 알 수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금오신화>속에 나타난 유교사상을 살펴보았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최초의 한문소설로서 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지만, 실제로 최초의 한문소설로서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상적 흐름이 유교, 불교, 도교와 민간신앙까지 모두 담고 있어 조선 전기 중요한 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금오신화>속에 담긴 여러 종교사상 중에서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당시의 유학자로서 갖고 있는 현실인식이 어떠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작품에 드러났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문학에 드러난 유교사상을 살펴봄으로써 문학과 유교의 상호관계에서 유학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교사상이 긍정적인 영향만을 끼쳤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전문학의 발전의 중심에 위치하는 한 축으로 작용하여왔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교사상과 작품에 대한 자료의 준비가 매우 미흡했던 점을 반성하며 유교사상 뿐만 아니라 불교, 도교, 기타 사상으로 나아가 깊이 있는 고찰이 이루어져야만 <금오신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박성의, 「한국문학배경연구 (상)」, (이우 출판사, 1980)
서정기, 「민중유교사상」 (조선문화출판사, 1990)
김원경, 「한국문학의 사상적 연구」, (태학사, 1981)
전영진, 금오신화, (홍신 문화사, 1995)
naver 백과사전
참고논문
석형란, 금오신화연구 -사상중심- ,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어문계열 한문 교육전공, 1990)
조동천, 금오신화연구-작품에 나타난 종교사상 중심으로-, (인하대학교 교육대 학원 한문교육전공, 1986)
  • 가격1,6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8.11.24
  • 저작시기2018.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7137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