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의 도교사상과 그의 문학세계 - [금오신화]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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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시습의 도교사상과 그의 문학세계 - [금오신화]를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김시습의 생애를 통해 본 유․불교적 사상

2. 김시습의 생애를 통해 본 도교적 사상

3. <금오신화>를 통해 본 도교적 사상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에 안치한 지 3, 4일이 지나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는다.’
‘취유부벽정기’의 양생은 김시습 자신으로 간주할 수 있고, 산계의 동경과 산신이 되어서 자신을 속박하는 것으로부터 탈피하고픈 강한 욕망을 보인 작품이라 하겠다.
한편, <용궁부연록>에서 \'용궁\'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도 이 사상의 반영이다.
‘남염부주지’에서 시습은 유학에 뜻을 둔 박생이 염부주왕과의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그의 정치 이론과 우주관, 종교관 등을 피력하였다. 대화의 내용은 유교사상이 대의를 이루려함이지만 작품 마지막에 박생이 염라대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은 도교적 사상, 산신을 통해 전달됨을 볼 수 있다.
<금오신화>는 이렇듯 삼교가 혼합된 형식의 구조를 보이다가 결말에 가서는 도교적 색채를 매우 강하게 내뿜는다. 도교적 일생을 마치는 선거(仙去) 형식의 결말 구조를 취한 것이라 하겠다. 국문학사에서 조선 중기로 넘어 오면서 인물을 중심으로 선거설화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 <금오신화>가 많은 영향력을 끼쳤을 것으로 본다.
Ⅲ. 결론
숭불 정책을 국시로 삼아 유학의 실천적 이상이 강조되던 시기 조선 초. 당시의 조선 사회는 오직 유(儒)만이 존재했고 유자로서의 일관된 획일적인 사회 구조만이 존속되고 있었다. 이런 유교적 분위기가 지배적인 시대의 선비라 하면 설령 도불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쉽사리 자신의 이런 관심사를 드러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습 또한 그러했으니, 그는 항상 그의 뛰어난 도가적불가적 재능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다. 한 일화에 따르면 시습은 그에게 ‘도’를 배우기 위해 좇아 다니던 자를 일부러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고 한다. 시습이 당대 사람들에게 보인 기이한 행적은 한편으로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당연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그의 모순된 행동 이면에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한 그의 번뇌가 담겨있을 것이다.
시습은 이러한 현실적 상황 속에서 소설을 쓰고 시를 지었다. 우리가 김시습이란 인물과 <금오신화>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당대 사회의 사상적 양상과 배경을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체계에 있어 도교 사상 역시 유불교와의 같은 위치 선상에서 함께 다루어져 할 연구 대상임을 밝힌다. 당시 사회에 도교가 종교로서의 형태나 조직이 한미하다고 해서 이를 논하지 않고 그의 문학 사상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올바른 시습 문학의 이해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금오신화>는 현실의 김시습과 이상의 김시습이 동시에 나타나서 이상이 현실을 이기고 그 꿈을 실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꿈의 실현은 곧 도교적 생각이다. 그는 도교를 심적 도피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에 분명하다.
◎ 참고문헌 ◎
1. 최삼룡, 「한국문학과 도교사상」, 새문사, 1990
2. 최창록, 「한국도교문학사」, 국학자료원, 1997
3. 박삼서, 「한국문학과 도교사상」, 국학자료원, 1998
4. 김광순, 「한국고소설사」, 국학자료원, 2001
5. 인터넷 사이트
http://chosun.uri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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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11.25
  • 저작시기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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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7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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