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살아있는 기억 - 43일의 기억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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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끝나지 않은 살아있는 기억 - 43일의 기억에 대해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제주 4.3의 배경과 전개 과정
2. 제주 4.3 평화 공원 답사
3. 제주 4.3의 피해와 현재

Ⅲ. 결론

본문내용

고, 과거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도 없다. 그런 사회에는 미래도 없다."
유대인 법학자 라파엘 렘킨은 <점령된 유럽에서의 추축국 통치>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것도,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잘못된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과제다. 진실은 절대 왜곡되어서도 왜곡해서도 안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주 4. 3사건은 단순히 제주도민이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하여 ‘폭도화’한다는 단순한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다. 제주도는 미군정 시대의 집권자, 우익 단체 및 경찰들의 과오, 다시 말해 제주도민을 핍박하고 압박하는 횡포를 이해하여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4.3사건을 이념이 남긴 상처, 좌우익의 대결구도로 풀이한다면 미군정시기의 집권자를 옹호 혹은 과오를 은폐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제주 4.3 운동은 미군정이 이승만과 한민당의 우익세력을 지지하게 되면서 제주도민을 좌파세력으로 인식하여 그들에 대한 학살을 묵인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오히려 독려하게 되면서 4.3사건이후 남한의 우익화 과정의 가속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우익세력은 좌익세력에 대한 숙군을 단행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1948년에 공포된 국가보안법에서 군에게 광범위한 경찰권이 부여되었으며, 이후 백선엽의 지시 하에 군 정보 부대와 헌병을 심사하게 되었고 혐의를 받은 장병 천여 명은 대부분 제대 처분을 당하고 400명 이상의 장교와 사병들은 반란ㆍ살인ㆍ항명 그리고 기타 중죄로 구속을 선고받았다. 500명 이상의 장병들이 사형을 선고를 받았고, 이들 중 200명은 실제로 사형에 처해졌다.
이렇게 4.3 사건은 남한의 우익화를 단행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에 미군정은 이를 독려함으로써 결국에는 5.10선거에서 남한단독정부를 수립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는 남한 내의 좌익세력을 축출하고 제주도민의 우익세력에 대한 항쟁의식을 소멸시키는 국가적 폭력이라고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2만여 명의 억울한 도민들이 학살을 당했던 제주 4.3사건. 이 참혹한 사건의 원인을 이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당시의 제주 민중의 우익세력에 대한 항쟁의식과 미군정과 우익세력들의 지배권 획득의 야욕으로 인한 측면에서까지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의 무고한 제주도민의 대량학살은 정확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확실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미군정의 잘못인지, 이승만 정부의 잘못인지를 밝혀서 추궁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러한 아픈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 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원인을 명백히 알아내려는 것이다. 원인을 모르고 치료제를 만들 수도 예방을 할 수도 없다. 우리는 반드시 그 원인을 알아야 그에 맞는 처방을 하고 예방을 할 수 있기에 진실을 찾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살아있는 4.3일의 기억을 내 가족의 이야기라 생각하며 진실을 끝까지 찾게 되고, 매년 이 날을 가슴깊이 기억하고,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보고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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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8.12.11
  • 저작시기2018.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7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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