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상의 상재상서(上宰相書) - 황사영의 백서와 비교 연구 [한국천주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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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하상의 상재상서(上宰相書) - 황사영의 백서와 비교 연구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들어가는 글

1. 정하상의 삶의 배경
가.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천주교 수용
나. 정약종의 천주교 수용

2. 상재상서의 내용

3. 황사영의 생애

4. 백서의 내용

5. 상재상서와 백서 비교

나가는 글

※ 참고문헌

본문내용

외세를 이용해 한바탕 조선을 뒤집고 무언가 세력을 취하려 한 것인가. 아무튼 그의 생각과 제안은 굉장히 파격적이고 혁신적이었다. 이에 반해 정하상의 상재상서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는 임금을 향하여 충성과 눈물로 호소한다. 어떻게든 천주교를 향한 왜곡된 시선과 잘못 알려진 교리들을 바로 잡고 이 땅의 천주교 신자들도 다 같은 임금의 백성임을 진심어린 마음과 논리적 필체를 가지고 아뢰고 있다. 상재상서는 공개적으로 쓴 편지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위정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비교를 해 본다면 황사영은 백서를 통해 과감하게 천주교를 ‘국교’로 수용할 것을 주장한 데 비해, 정하상은 국교를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만 경교나 불교, 심지어는 풍수, 미신 등과 같은 것들과 동일하게만 봐달라고까지 요청하였다.
나가는 글
지금까지 정하상의 상재상서를 중심으로 백서와의 비교를 살펴보았다. 상재상서는 한문으로 3400여 자에 이르는 비교적 간단한 문헌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숭고한 신앙이 담겨 있고 민족에 대한 깊은 사랑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아버지와 형을 어린 나이에 잃고 자신의 삶과 신앙에 대해 무던히도 고민하고 투쟁했을 그의 처절한 젊은 날의 시간들이 바쳐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마침내 본인도 아버지와 형의 뒤를 따라 1839년 8월 16일 서소문 네거리에서 목이 잘려 순교했다. 그의 어머니 유소사와 동생 정정혜도 연이어 순교의 길을 걸었다. 이들 세 사람은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1984년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정하상과 황사영. 이 둘 모두 오늘의 천주교가 있기까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숭고한 신앙과 단순히 말로 그치지 않고 목숨을 건 행동으로 보여준 그들의 삶은 후세에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신앙인들은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한 편, 불과 40여년의 차이밖에는 두고 있지 않지만 그들이 취한 방식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행동의 모습을 보면서 역사는 당시의 정치 사회학적 상황을 떠나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음을 절감한다. 그들이 태어나고 성장한 배경, 그리고 그 시대 환경과 상황이 그들을 만들고 나아가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 참고문헌
유홍렬,「한국천주교회사」, 서울: 가톨릭 출판사, 1962.
여진천,「황사영 백서 연구 - 원본과 이본 비교 검토」,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2009.
민경배,「한국기독교회사」,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7
조광, “거침없이 전개된 호교의 글 -정하상의 상재상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0년 12월호
경향잡지
차기진, “초기 교회 시대 경기 북부 지역의 천주교 -경기도 마재의 나주 정씨 가문을 중심으로-”, 「교회사연구」제31집, 2008.
권평, “정하상과 상재상서 -생애와 천주론을 중심으로-”,「교회사학」제6권 제1호, 2007.
박종현, “초기 한국 천주교의 변증론”,「교회사학」제4권 제1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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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1.11
  • 저작시기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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