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39장 1-23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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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설교] 창세기 39장 1-23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하나님이 누구인가?’ 궁금해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도의 고난은 믿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 목사가 미국을 두루 여행하며 설교한 후 미국에 대해 느낀 점을 이야기 해달라는 질문에 “그들은 고난에 대해 부적합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비단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고난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두 가지 case에 대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한번 비교해보세요.
한 사람이 암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시한부인생인 된 그에게 죽마고우친구가 말을 건넸습니다.
이제 그만 하나님께 돌아오게.
그러자 그 친구는 쌍심지를 돋우며 버럭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나님이 있는데 어디 나를 이 꼴로 만들어.
그가 생각하기엔 나를 이렇게 만든 하나님은 있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나름 학생 때도 열심히 신앙생활 했는데 하나님은 뭐가 불만이냐고 나를 이 꼴로 만들었냐 말입니다.
교회문턱에도 안 가보고 나보다 더 나쁜 짓 하는 놈들도 건강하게 잘 사는데, 왜 내가 이 꼴로 죽어야 하느냐는 울분에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나에게 이처럼 많은 재물을 주셨고 보잘것없던 나를 이처럼 귀한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의 고백은 참 감동적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모든 것을 풍성히 채우시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자 이 두 사람을 생각해봅시다.
두 사람의 입장은 완전히 다릅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하나님이 없다고 분노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삶의 풍요를 만끽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소리 높여 외칩니다.
누가 보아도 이 두 사람은 불신앙과 신앙이라는 명백한 가름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모두 세상에서의 성공과 안녕입니다.
한 사람은 그걸 못 얻은 것이고 한 사람은 그걸 얻은 것입니다.
누가 더 많이 얻었느냐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실 두 사람은 모두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어떻게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줄 수 있는가?는 반대로 말하면 내가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하나님은 계시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내게 부와 지위를 주셨다는 확신은 부와 지위를 얻지 못했으면 하나님은 없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비록 한 사람은 신은 없다고 외치고 또 다른 사람은 신을 찬양하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동일하게 육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의 가치는 모두 육체에서 난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들의 상황과 환경은 중요치 않습니다.
어떠한 처지든 상황이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신뢰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단 예수를 믿게 되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든 고난과 역경은 다 사라지고 행복과 평화가 내 삶에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 삶의 고난은 당연히 신께서 막아주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실제로 러셀이나 볼테르 같은 안티 기독교인은 인간들이 겪는 전쟁과 기아, 범죄, 질병을 막아주지 않는 신은 믿을 필요가 없다고 기독교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세상에서 고통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고통 없는, 고난 없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어딘가에 고통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바로 한센병, 문둥병 환자들입니다.
한센병의 특징은 인간의 몸에 있는 고통을 느끼는 점들이 무뎌지는 것입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들이 감염이 되어 가면서 전혀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되는 것이 한센병입니다.
우리 몸은 알게 모르게 통증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눈을 오래 부릅뜨고 있으면 눈이 시려서 눈물을 흘리게 되거나 눈을 깜빡이게 됩니다.
고통이 눈의 시력을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손이 난로 가까이에 가면 뜨겁습니다.
그래서 난로에 데지 않게 손을 얼른 불러들입니다.
역시 고통이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뼈가 어긋나면 통증 때문에 팔을 묶어 목에 맵니다.
우리는 고통 때문에 더 이상 뼈가 어긋나지 않게 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은 때로 우리를 더 큰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센병 환자들은 고통을 모르기에 시력을 잃기 일쑤입니다.
그들은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면서 빗자루를 쥔 손에 너무 힘을 주어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알지 못합니다.
너무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가도 뜨거움을 모르기에 그냥 그 물로 세수를 하다가 화상을 입기도 합니다.
고통이 없기에 일어나는 돌이킬 수 없는 더 큰 고통들입니다.
고통이 없는 삶이 생명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유일한 소원은 고통을 느껴야 할 때 고통을 느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멸되어져 가는 고통의 상실을 막기 위해서 치료를 합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자녀로 지어져 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지, 이곳에서의 무사태평, 행복, 번영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고통과 고난은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 고난은 반드시 우리를 영생의 목적지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 삶에 고난이 가득하다고 고난을 거부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것은 난 하나님이 원하는 목적지에 가기 싫다는 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허락하신 고난을 잘 참고 이겨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진의를 깨닫고 또 우리의 고난 받는 삶을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우리 서로 손을 잡고 함께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찬양)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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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10
  • 저작시기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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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8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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