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예수와 구약성서
3. 바울과 구약성서
4. 신약성서 안에 있는 구약성서
5. 제2세기의 성서
6. 알렉산드리아 학파
7. 안디옥 학파
8. 정통적 성서 해석
9. 중세의 성서
10. 성서와 종교개혁
11. 합리주의의 대두
12. 제19세기
13. 로마 가톨릭의 현대주의
14. 현대 프로테스탄트의 성서 해석
15. 성서의 해석
2. 예수와 구약성서
3. 바울과 구약성서
4. 신약성서 안에 있는 구약성서
5. 제2세기의 성서
6. 알렉산드리아 학파
7. 안디옥 학파
8. 정통적 성서 해석
9. 중세의 성서
10. 성서와 종교개혁
11. 합리주의의 대두
12. 제19세기
13. 로마 가톨릭의 현대주의
14. 현대 프로테스탄트의 성서 해석
15. 성서의 해석
본문내용
파 및 역사, 2013.9.16, 생명의 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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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잇티히(l.J. Ittig)가 사도교부문고(Bibliotheca Patrum Apostolicorum 1699년)를 간행하여, 이 명칭이 관용되게 되었다 http://bible.biblesmartphone.co.kr/m/deluxe_bible/view_lexicom.php?bo_id=bibled&idx=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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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제 1 클레멘트 편지 (95년 경 로마에서 작성)
-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들 (이그나티우스가 115년 경 그의 순교를 기다리고 있던 로마를 향하여 여행하던 중에 여러 수신자들에게 써 보낸 일곱 서신들)
- 폴리캅의 편지 (110년 경 서머나에서 작성)
- 바나바스의 편지 (130년 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 작성 장소는 이집트로 추정)
- 제 2 클레멘트 편지 (140년 경 로마 또는 고린도에서 작성)
- 헤르마스의 목자 (150년 경 로마에서 작성)
- 파피아스의 단편들 (150년경 프리기아의 히에라포리스에서 작성. 특히 이레니우스와 유세비우스의 글에 들어 있음)
-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소위 디다케) (2세기 전반부에 시리아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
1. 로마의 클레멘트 (A.D.95년)
생애: 속사도 교부들 가운데 최초의 인물인 그는 로마의 세 번째 감독이고 빌립보서 4:3에 언급된 클레멘트일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클레멘트는 그 시기의 목회 사역의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클레멘트 2서는 일반적인 용어로 기독교 생활의 특성과 회개의 의무를 설명하고 있으며 남아있는 기독교 설교 가운데 가장 최초의 설교이다. 그는 그의 아내 플라비우스 플라비아 도미틸라와 함께 처형당했으며 이름이 알려진 유일한 로마의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사상: 그의 서신을 통해 알 수 있는 그의 사상으로는 첫째, 분열을 타파하고 교회의 질서를 중시하였으며 둘째, 참다운 회개와 자신을 지키는 삶의 경건을 촉구하고 셋째, 믿음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하는 이신칭의를 주장하고 넷째, 교회의 질서를 위한 사랑과 겸손과 순종을 명령하였다.
클레멘트는 선행과 덕행에 관련된 실천적 가르침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교회의 분열을 비판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붙잡을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직분에 있어 질서 있는 계승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2.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A.D.110-117년)
생애: 사도요한의 제자로 37년간 안디옥의 감독으로 있던 그는 2세기 초 박해 가운데 체포되어 경기장에서 야수들에게 던져지기 위하여 로마로 압송되었다. 순교를 향해 가는 도중에 그는 적어도 7개의 편지를 썼다. 서머나에서 그는 에베소, 마그네시아, 트랄레스, 그리고 로마로 편지를 썼고 드로아에서 서머나와 빌라델비아와 서머나의 감독인 폴리갑에게 편지를 보냈다.
사상: 이러한 편지들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기독교 문서로 손꼽힌다. 이 편지들은 저자가 그리스도에게 열정적으로 헌신된 사람이고 순교를 열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교회에 다가오고 있는 논쟁들에 대한 특별한 통찰력과 함께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실재를, 그리고 감독의 직분을 기독교에서 통일에 대한 최선의 소망으로 강조했다.
3. 서머나의 폴리갑 (A.D.79-165년)
생애: 사도요한의 제자이자 이그나티우스의 친구인 그는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생존당시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소아시아 교회의 대변자였다. 그는 서머나에서 열린 이교도 축제기간 동안에 체포되어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명령받았다. 그는 “86년 동안 그를 섬겼으나 나를 한 번도 저버리신 일이 없다.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저주할 수 있겠는가?”하며 그의 신앙을 취소하기를 거부했고 화형을 당했지만 불에 타지 않아 병졸의 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사상: 그는 신앙의 주체는 예수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신앙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교적 신앙을 유지하기를 강조했다. 그는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했다. 그의 삶을 통해 고결한 영성을 발견할 수 있다.
4. 로마의 헤르마스 (A.D.100년경)
생애: 초기에 기독교 노예였던 헤르마스는 그를 해방시켜주었던 여인에게 팔렸지만 이후 부유한 상인이 되었다. 박해 속에서 그는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고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비난을 받았다.
사상: 그가 저술 한 것으로 보이는 ‘헤르마스의 목자’에서 그는 세례이후에 범한 죄의 용서 문제와 세례를 받도록 유도하는 회개, 세례시에 과거의 모든 죄는 용서받는 다는 사실이 기록되어있다. 또한 신적 위격의 복수성, 신을 통한 인간의 창조, 원죄와 세례의 필수 불가결성, 인간의 자유, 우리가 간구해야 할 은총의 필수성, 계명의 준수 및 선한 행실의 반복을 통한 완전성으로의 노력, 부의 위험성, 부활과 영원한 보상에 관한 내용 등. 그의 저술은 교리적이며 도덕적으로도 좋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5. 파피아스
생애: 소아시아에 있는 히에라 폴리스의 감독이었던 그는 폴리갑과 동시대인으로 사도요한의 제자였음. 그는 굉장한 학식과 성경 지식을 가졌으며 주님의 생애와 말씀에 대한 모든 전승을 수집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사상: 그는 A.D.130-150년 사이에 저작한 13개의 단편으로 된 주님의 말씀 강해를 남겼는데 이 중 10개가 유세비우스에 의해 보존되었다. 내용은 포도나무들에 각각 천 개의 싹이 나고 그 싹에 천개의 가지가 생기고 그 가지에 천 개의 순이 생기고 그 순에 천 개의 포도송이가 열리고 그 송이마다 천 개의 포도 알이 달려서 그 포도로 25개의 항아리에 포도주를 채울 때 재림은 온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는 그리스도의 목격자들의 구전 전승을 문서 기록보다 선호했다는 것이며 교회사적으로 볼 때 그는 제일 먼저 천년왕국설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http://himm.net/zboard/zboard.php?id=b8&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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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잇티히(l.J. Ittig)가 사도교부문고(Bibliotheca Patrum Apostolicorum 1699년)를 간행하여, 이 명칭이 관용되게 되었다 http://bible.biblesmartphone.co.kr/m/deluxe_bible/view_lexicom.php?bo_id=bibled&idx=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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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제 1 클레멘트 편지 (95년 경 로마에서 작성)
-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들 (이그나티우스가 115년 경 그의 순교를 기다리고 있던 로마를 향하여 여행하던 중에 여러 수신자들에게 써 보낸 일곱 서신들)
- 폴리캅의 편지 (110년 경 서머나에서 작성)
- 바나바스의 편지 (130년 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 작성 장소는 이집트로 추정)
- 제 2 클레멘트 편지 (140년 경 로마 또는 고린도에서 작성)
- 헤르마스의 목자 (150년 경 로마에서 작성)
- 파피아스의 단편들 (150년경 프리기아의 히에라포리스에서 작성. 특히 이레니우스와 유세비우스의 글에 들어 있음)
-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소위 디다케) (2세기 전반부에 시리아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
1. 로마의 클레멘트 (A.D.95년)
생애: 속사도 교부들 가운데 최초의 인물인 그는 로마의 세 번째 감독이고 빌립보서 4:3에 언급된 클레멘트일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클레멘트는 그 시기의 목회 사역의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클레멘트 2서는 일반적인 용어로 기독교 생활의 특성과 회개의 의무를 설명하고 있으며 남아있는 기독교 설교 가운데 가장 최초의 설교이다. 그는 그의 아내 플라비우스 플라비아 도미틸라와 함께 처형당했으며 이름이 알려진 유일한 로마의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사상: 그의 서신을 통해 알 수 있는 그의 사상으로는 첫째, 분열을 타파하고 교회의 질서를 중시하였으며 둘째, 참다운 회개와 자신을 지키는 삶의 경건을 촉구하고 셋째, 믿음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하는 이신칭의를 주장하고 넷째, 교회의 질서를 위한 사랑과 겸손과 순종을 명령하였다.
클레멘트는 선행과 덕행에 관련된 실천적 가르침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교회의 분열을 비판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붙잡을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직분에 있어 질서 있는 계승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2.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A.D.110-117년)
생애: 사도요한의 제자로 37년간 안디옥의 감독으로 있던 그는 2세기 초 박해 가운데 체포되어 경기장에서 야수들에게 던져지기 위하여 로마로 압송되었다. 순교를 향해 가는 도중에 그는 적어도 7개의 편지를 썼다. 서머나에서 그는 에베소, 마그네시아, 트랄레스, 그리고 로마로 편지를 썼고 드로아에서 서머나와 빌라델비아와 서머나의 감독인 폴리갑에게 편지를 보냈다.
사상: 이러한 편지들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기독교 문서로 손꼽힌다. 이 편지들은 저자가 그리스도에게 열정적으로 헌신된 사람이고 순교를 열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교회에 다가오고 있는 논쟁들에 대한 특별한 통찰력과 함께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실재를, 그리고 감독의 직분을 기독교에서 통일에 대한 최선의 소망으로 강조했다.
3. 서머나의 폴리갑 (A.D.79-165년)
생애: 사도요한의 제자이자 이그나티우스의 친구인 그는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생존당시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소아시아 교회의 대변자였다. 그는 서머나에서 열린 이교도 축제기간 동안에 체포되어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명령받았다. 그는 “86년 동안 그를 섬겼으나 나를 한 번도 저버리신 일이 없다.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저주할 수 있겠는가?”하며 그의 신앙을 취소하기를 거부했고 화형을 당했지만 불에 타지 않아 병졸의 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사상: 그는 신앙의 주체는 예수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신앙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교적 신앙을 유지하기를 강조했다. 그는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했다. 그의 삶을 통해 고결한 영성을 발견할 수 있다.
4. 로마의 헤르마스 (A.D.100년경)
생애: 초기에 기독교 노예였던 헤르마스는 그를 해방시켜주었던 여인에게 팔렸지만 이후 부유한 상인이 되었다. 박해 속에서 그는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고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비난을 받았다.
사상: 그가 저술 한 것으로 보이는 ‘헤르마스의 목자’에서 그는 세례이후에 범한 죄의 용서 문제와 세례를 받도록 유도하는 회개, 세례시에 과거의 모든 죄는 용서받는 다는 사실이 기록되어있다. 또한 신적 위격의 복수성, 신을 통한 인간의 창조, 원죄와 세례의 필수 불가결성, 인간의 자유, 우리가 간구해야 할 은총의 필수성, 계명의 준수 및 선한 행실의 반복을 통한 완전성으로의 노력, 부의 위험성, 부활과 영원한 보상에 관한 내용 등. 그의 저술은 교리적이며 도덕적으로도 좋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5. 파피아스
생애: 소아시아에 있는 히에라 폴리스의 감독이었던 그는 폴리갑과 동시대인으로 사도요한의 제자였음. 그는 굉장한 학식과 성경 지식을 가졌으며 주님의 생애와 말씀에 대한 모든 전승을 수집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사상: 그는 A.D.130-150년 사이에 저작한 13개의 단편으로 된 주님의 말씀 강해를 남겼는데 이 중 10개가 유세비우스에 의해 보존되었다. 내용은 포도나무들에 각각 천 개의 싹이 나고 그 싹에 천개의 가지가 생기고 그 가지에 천 개의 순이 생기고 그 순에 천 개의 포도송이가 열리고 그 송이마다 천 개의 포도 알이 달려서 그 포도로 25개의 항아리에 포도주를 채울 때 재림은 온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는 그리스도의 목격자들의 구전 전승을 문서 기록보다 선호했다는 것이며 교회사적으로 볼 때 그는 제일 먼저 천년왕국설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http://himm.net/zboard/zboard.php?id=b8&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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