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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따라 달려있다고 했지만, 인간이 신이 아닌 인간인 이상 그것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는 만약 당신이 통제하지 않는다면 통제의 대상이 되는 존재는 다른 어떤 사람에게든 통제를 당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 다른 어떤 사람은 강도가 될 수도 있고 성직자가 될 수도 있고 교육자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스키너의 이 말이 변명으로 들린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내가 통제할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누군가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타인과 상호작용을 해나가며 사는 현실에서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을 낼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배려, 용서, 희망, 사랑, 인간존중 등의 덕목들이 애초에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내적인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어떤 사람이 역으로 99%의 노력이 있다고 해도 1%의 영감이 없으면 천재가 아니라고 해석했듯이 스키너는 1%의 내적인 요인마저 부정할 테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행동주의에 백보 양보하여 만약 인간의 행동이 99%의 외적인 요인과 1%의 내적인 요인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나는 그 1%의 내적인 요인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교사가 되면 ‘무시할 수 없는’ 외적인 요인 속에서 ‘무시될 수 있는’ 내적인 요인을 늘 염두하며 가르치겠다.
출처- 스키너의 행동주의적 인간관 (임의영)
누군가가 나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누군가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타인과 상호작용을 해나가며 사는 현실에서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을 낼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배려, 용서, 희망, 사랑, 인간존중 등의 덕목들이 애초에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내적인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어떤 사람이 역으로 99%의 노력이 있다고 해도 1%의 영감이 없으면 천재가 아니라고 해석했듯이 스키너는 1%의 내적인 요인마저 부정할 테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행동주의에 백보 양보하여 만약 인간의 행동이 99%의 외적인 요인과 1%의 내적인 요인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나는 그 1%의 내적인 요인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교사가 되면 ‘무시할 수 없는’ 외적인 요인 속에서 ‘무시될 수 있는’ 내적인 요인을 늘 염두하며 가르치겠다.
출처- 스키너의 행동주의적 인간관 (임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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