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윤리와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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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배려윤리와 정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학교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이 두 부족사이에 짓게 된 경우가 그 예로 볼 수 있다. 학교에 가면 서로 앙숙인 학생들끼리 만나게 되고, 이들의 부모는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한다. 또, 기본적으로 아직 유목을 하는 민족이 다수인 나라에 학교를 지은 경우도 있다. 학교를 거액을 투자하여 지었으나, 학교를 다 건설하고 나니 사람들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들은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게 자신과 동일한 상황을 만들어주면, 그것이 평등하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해서 빚어진 결과라 볼 수 있다. 그 결과 ODA는 다른 형태로 접근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 예의 경우엔 서로 다른 부족은 다른 반에 편성함으로써 해결하였고, 두 번째 예의 경우엔 우선 유목민족들이 정착하도록 배려하거나, 건물을 짓는 학교가 아닌 텐트로 이동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듦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와 같이 ‘지속되는 관계의 망’을 유지하여 공적 원조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이 혜택을 받는 입장에서는 더욱 좋은 경우들이 있다.
두 번째는 ‘후원’에 대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후원을 할 때, 자기 자신의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해하며, 헛되게 쓰는 것을 용납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후원의 가장 적극적인 형태는 자신이 직접 후원자를 찾고 후원하는 것인데, 이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택하고 있는 것이 이를 대행하는 기구에 돈을 기부하는 것을 택한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자신의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항목별로 나뉘어져 적혀있는 종이를 보는 것보다, 내가 전혀 모르는 활동에 쓰이거나 내게 돌아올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데 기부하는 것보다 내가 ‘특정한 누군가’에게 후원하여 그 결과를 직접 눈에 볼 수 있는 것을 원한다. 이런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이 굿네이버스와 월드비전이다. 월드비전은 나딩스의 배려윤리 이론의 한계인 아프리카 난민 처럼 나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을 돕는 데에는 배려윤리를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1:1로 후원자를 매칭하는 형태를 취한다.
나 역시 이에 끌려 월드비전에 후원하였지만, 지금은 그 후원금을 유니세프에 내고 있다. 처음 후원자들이 편지를 보내올 때 생각보다 성의 없는 글과 편지에 사실 놀랐다. 많이 못배우거나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계속 비슷한 편지가 와 의심을 품게 되었다. 과연 내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나름 큰 금액을 매달 후원받고 있는데, 편지를 쓰라고 하면 저렇게 쓸까? 하고 말이다.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던 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음은 월드비전의 해외사업란의 “아동에게 직접 후원금을 전달하면 안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월드비전의 대답이다.
\"왜 꼭 지역개발사업을 통해서만 아동을 후원할 수 있죠? 그냥 아동에게 직접적으로 후원금을 전달하면 안되나요?\" 가끔 월드비전에 물어오시는 후원자님의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월드비전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예! 후원자님. 그 방법이 후원아동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저희도 그렇게 하고 싶답니다.\"
하지만 마을에 우물이 없고 학교가 없다면 마을에 사는 아이가 아무리 돈이 있다 해도 어떻게 깨끗한 물을 마시고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요? 가난한 마을의 아동에게 혹은 그 부모에게 후원금을 직접 준다면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누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또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웃은 어떨까요? 후원을 받는 집과 못 받는 집이 함께 살아야 할 그 마을에 혹시 그로 인한 분란이 생기지는 않을까요? 이렇듯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생각지 못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올바로 전해지도록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즉, 월드비전의 사업 역시 본질적으로 우물을 파거나, 학교를 짓는 등의 지역개발사업을 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원인을 모집하기 힘들다거나, 개인에게 후원하면 관리가 되지 않을 위험성이 있고, 마을 내의 관계 유지를 위해 지역후원을 하는 것은 정의윤리와 배려윤리의 접합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1:1로 후원하여 내 후원금이 오롯이 후원인에게만 간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은 어찌보면 후원인에 대한 기만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옹졸해 보일 수 있지만 내가 6년동안 정성이 담긴 편지 한통를 받지 못한 것은 서울대학교에 신양학술정보관이 3곳 째 들어선다 해서 학생들이 고마움을 가끔씩 느낄지언정 이 건물을 지은 정석규님께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들지 않는 것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며, 월드비전을 통해 배려윤리의 의의와 한계점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5. 나가며
배려윤리가 여성적 특성을 가지고 남성적 특성을 가진 정의윤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보편화 가능성이 없는 윤리는 완전한 직접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거시적인 관점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보편윤리와 배려윤리의 바람직한 관계는 한국에서의 성문법과 판례의 관계로 치환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성문법은 보편적인 것을 정해놓고 이를 성문화 한 것이고 판례는 성문법의 해석 과정에서 각각의 사례들에 적용하여 판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판례가 성문법에 근거하기 때문에 성문법이 판례보다 더 우수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문법은 최소로 하고, 대부분을 판례에 의존하는 국가들도 많은 것을 보면 꼭 어느 하나가 우세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판례가 깨어질 수는 있지만 판례들이 모여 유사한 다른 경우에 보편적인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을 보면, 역시나 보편성을 결여한 윤리는 시대를 대표하는 윤리로 거듭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박병춘, 『배려윤리와 도덕교육』, 울력 2002, pp19-34 참조
카츠, 윤현진 옮김, 『정의와 배려』,인간사랑
Held, Virginia (2005). The Ethics of Car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Slote, Michael A. (2007). The Ethics of Care and Empathy. London ; New York: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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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9.03.12
  • 저작시기201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8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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