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답사 보고서 - 엘살바도르 호야 데 세렌(세렌의 보물) 199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민속답사 보고서 - 엘살바도르 호야 데 세렌(세렌의 보물) 199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마야문명 유적지

1.Joya de Ceren


마야의 서민 유적


토속품


2. 엘살바도르 마야문명 유적지 "San Andres"



3. 타주말 (Tazumal)

본문내용

공시설 공사 중이던 불도저가 지하의 벽돌더미를 파낸 것이 계기가 됐다. 종교시설로 보이는 피라미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지하 창고, 경작지, 공동목욕탕 등 서민들의 생활시설이다.  
이 유적 발굴을 통해 마야의 주식이 옥수수와 코카였음이 확인됐다.

엘살바도르는 환태평양지진대에 자리해 국토의 90% 이상이 화산지형이다.
하지만 때로 잦은 지진과 화산분출로 재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곳 역시 화산으로 인해 마을이 사라졌으나 후대에 와서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예산이 부족해 아주 서서히 진행하고 있음.
공사 중이던 불도저가 찾아낸 Joya de Ceren(호야 데 세렌)은 ‘세렌의 보물’이라는 뜻으로, 1,400년 전의 비밀이 숨어 있다.
- 스페인 시대 농업 공동체 유적
- 600년경 화산 폭발로 도시가 매몰되었음
- 현존유물들의 상태는 당시 중앙아메리카인들의 일상생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 옛날 주거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국내 건축의 예이다.
내전의 상흔과 가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의 내일을 일구는 엘살바도르 사람들!
그들의 조상 마야인들의 상징물이다.
개장은 화요일~일요일/오전 9시~4시까지이며 요청하면, 우리나라 문화유산해설사와 같은 안내자가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엘살바도르 마야문명 유적지 \"San Andres\"



Ruinas de San Andres는 1910년 농원을 측량하다 발견되었다.
중심 피라미드는 높이 22m의 1호 신전으로 이 지역 지배자를 모셨다고 전해진다.
모두 15개의 나지막한 봉우리들이 녹색 융단 같은 잔디로 덮여있는 아름다운 유적공원이다. 유적에서는 멕시코 중앙고원의 똘떼까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 발견된단다.


스페인인들이 16세기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곳은 멕시코 부족인 나후아어족 똘떽(Toltec)과 아스떽(Aztec)인들의 후손인 피필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피필은 마야 왕조가 무너지고 곧바로 11세기에 엘살바도르 중앙으로 이주해왔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문화는 아스떽 문명과 흡사하였고 마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옥수수를 기반으로 한 농경 경제를 통해 여러 도시와 상형문자나 천문학, 수학 등을 포함한 복잡한 문명을 유지하였다. 스페인은 1525년 이 지역에 도착한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를 통해 영유권을 주장했다. 스페인인들은 이 지역에 목화, 발삼, 인디고 농장을 발전시켰다.

1700년대를 통해 농업이 성행하였으나 토지 대부분은 14개의 유럽 엘리트 가문에 의해 지배되었고 토착민과 아프리카로부터 수입된 노예를 부려 경작케하였다. 국부인 호세 마티아스 델가도(Jose Matias Delgado)는 1811년 스페인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곧 진압되었다. 이듬해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입은 개혁을 촉진시켰고 엘살바도르는 결국 1821년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독립도 토지 소유의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으며 이 문제는 아나스타시오 아끼노(Anastasio Aquino)가 이끈 1833년 실패한 인디언 반란의 주요 쟁점이었다. 1841년 중앙 아메리카 연방(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사이에 형성된 연합)이 해체되면서 엘살바도르는 주권 독립 국가가 되었다.
타주말 (Tazumal)
이곳에는 32m의 피라미드가 있다. 멕시코나 깐쿤이나 과테말라에 띠깔에 비하면 피라미드유적이 빈약해 보인다. 발굴 후 복원이 시멘트로 뒤집어 씌워 놓은 점이 아쉬웠다.이곳의 위치는 산살바도르에서 약 6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으며 산타아나 디스트릭트에 포함되어 있다.
기원전 17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이곳은 올맥 -> 마야 -> 아즈텍 이렇게 3번에 걸쳐 각기 조금씩 다른 주인을 맞게 된다.
(마야인들 서기 200년경부터, 아즈텍인들이 900년부터 1500년대 초반까지)

이 사람은 누군데 갑옷을 입고 있지?
바로 이곳의 초대왕 시페토텍 (Xipetotec) 으로 좀 엽기적인 왕이다.
일단 복장이 갑옷을 입은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의 특징상 옷을 최소한의 가리개 빼고는 걸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바로 좀 징그럽지만 저 왕의 피부가 저랬다고 한다.

왕은 피부가 벗겨지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치료책으로노예들의 살가죽을 벗겨 자신의 피부에 붙였다고 한다.
또한 내려오는 구전으로 바람을 핀 왕비에게 저주를 걸었는데 그 저주란 와이프가 평생을
아름다운 여자로 사나 남자가 그 미모에 반해 접근하면 머미로 변하는 저주를 걸었다 한다
  • 가격1,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9.03.13
  • 저작시기201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8991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