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 작가 연구 - 한국문학의 이해 - 나혜석을 찾아 수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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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답사기 - 작가 연구 - 한국문학의 이해 - 나혜석을 찾아 수원을 가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A 들어가는 말
- 왜 나혜석인가.

B - 나혜석의 생애


C. 작품 속에 드러난 가치관과 여성의식
-1. 경희
-2. 인형의 가(家)

D. 맺음말

F. 참고자료

본문내용

서 입센을 만났다. 원작 입센의 <인형의 집>은 1879년 독일에서 출간되자마자 부인 해방의 Bible이라고 극찬하는 사람, 결혼생활, 가정생활을 파괴하는 불량서적이라는 맹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는 동안 여주인공 노라는 어느새 신여성의 대명사가 되어 있었다. 여성해방운동이 각 처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나혜석이 「냇물」,「砂」를 비롯해 「인형의 家」를 발표한 1921년 당시에는 김우영의 아내로서 누리는 삶을 살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였으며, 사회적으로 명예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더구나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화가로서의 삶도 보장받던 시기였다. 그러한 시기에 이러한 작품을 발표한 것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학대받는 여자의 위치에서 위 시를 썼다면 삶이 그녀를 그렇게 몰아갔구나 하겠지만, 넉넉한 가정에서 귀부인으로 대접을 받는 와중에 인형이 아닌 사람이 되고자 했다는 것은 그녀의 가치관의 반영으로 보인다. 신교육을 받은 그녀답게 조선사회의 여성들의 모습을 보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D. 맺음말
지금까지 1920년대를 전후 나혜석의 문학작품 「경희」와 「인형의 家」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경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했으며 당시 일반적인 전통관에 맞선 계몽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수많은 ‘노라’에게 자아를 발견하고 참된 진리를 찾을 것을 당부한다
그녀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에서 나혜석을 떠올릴 수 있다. 페미니스트, 진보주의자, 자유로운 영혼, 신여성의 대표주자, 거기다 유학생 출신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 화가등 다양하다.
한국 초유의 여성 화가로서 직업적 활동, 미술사적 공헌은 물론 페미니스트였다는 점에서도 여성사적 의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오빠의 권유로 떠난 일본 유학 시기는 여성사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며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외침은 당위성을 갖는다. 그녀는 그곳서 노라를 만났으며, 엘렌케이 사상을 접했으며, 죽을 듯 사랑을 했고, 경희를 통해 말했다. 하지만 때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으며 특유의 고백적 글쓰기는 상처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에서는 그의 사생활과 이혼 과정 등을 들추어 그녀의 작품과 사상을 폄하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선의 여성으로서 자아각성을 하여 변화를 시도했고 뭇매를 견디어 냈으며 당당하게 살려했다는 점이다.
그녀를 추억한다. 누구보다 쓸쓸한 죽음에 이른 (1948,12월) 그녀를 ‘불운’으로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이 그리워 절규했던 그는 거의 잊혀질 뻔했다가 1999년 4월 제 1회 나혜석 바로 알기 심포지엄, 이듬해 2월에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되면서 이제야 다시 살아났다. 그녀를 궁지로 내몬 것은 그녀가 그렇게 꿈꾸었던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은 아직은 남성중심의 편협한 사회적 분위기 그것에 동조하는 여성 그리고 전통적 가치이다.
인류의 역사는 참으로 오랫동안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회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남성들은 ‘현숙한 아내’ 또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신화를 유포함으로써 여성들의 무의식까지 점령해버렸다.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시각을 지닌 여성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러한 신화가 우리의 삶에서 아직껏 현실적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지금도 그러할진대, 식민지 초기의 상황이 어떠했을지 그 사정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의지는 충만하지만 쓸쓸한 전사와도 같았던 나혜석이 21세기 현재를 어떻게 말할까? 남성중심의 사회와 전통적 여성관에 정면으로 도전한 그녀를 나혜석 거리에서 꼭 그녀를 만나보고 싶었다.
나혜석 동상
입구에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이 비석 하나가 나혜석 거리임을
말해줄 뿐
인적이라고는 찾기 힘들다...
죄송한 마음 그지 없어라.
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따뜻한 모습으로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쓸쓸한 거리, 지저분한 거리에 아름답지 않은 건조한 낙엽만 덩그라니 있을 뿐이었다.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나혜석거리에 나혜석의 자취는 없었다. 과연 누가 문화조성의 일환으로 마련한 ‘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약간의 기대는 엄청난 허무와 실망감이 대신했지만 내 마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곳은 밤거리 유흥가였다. 낮에는 문들이 다 닫혀 인적이 드물어 음산하였고 소주방, 돼지갈비, 호프집, 모텔, 그 옆에 다시 술집... 또 술집 밤이 되어야 조명이 살아나고 휘청거린다고 했다. 환락의 밤이라야 나혜석이 어울린다고 생각한 건가. 누가 의도적으로 그를 욕되게 하기 위한 계획이라는 생각까지 들을 정도였다면 할 말 다한 것 아닌가. 겨우 식당 하나를 찾아 동행친구와 함께 넘어 가지도 않는 밥을 억지로 먹고 돌아왔다.
수원의 문학적 안목의 수준도 의심스러웠으며, 아니 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파 서양화가라는데 미술가 들이라도 나서야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대로는 정말 아니었다. 동상 하나 있다고 그것이 누 구를 참되게 기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어디까지 계획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나혜석 문 학관 건립 이야기가 잠깐 돌았었다. 그곳은 어떨까?
올 가을은 화나게 쓸쓸했다.
나혜석은 참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
제대로 평가받는 그날을 다시 기대한다.
나혜석거리
1927~1928년 작품 ‘무희’
F. 참 고 문 헌
참 고 문 헌
*이상경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 영원한 신여성 나혜석> 한길사, 2009
*서동수 <한국여성작가연구 나혜석> 한국학술정보(주) , 2010
*이사경 책임 편집, <경희(외) 나혜석> 범우비평판, 2004
*김홍희 <나혜석의 양면성-페미니스트 나혜석VS 화가 나혜석> 한국근현대미술사학, 학회,1999
*이현정<나혜석 문학에 수용된 여성 담론 연구> -숙명여대 박사과정, 한국어와 문화 제4집, 2008
*송명희<나혜석의 페미니즘 연구>,한어문교육, 한국언어문학교육학희,1996
*서정자<나혜석의 문학과 일본체험-식민지기 조선문학자의 일본체험에 관한 종합적연구>,문명연지제23 한국문명학회,2009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2001년4월 26일자 한국일보, 2003년7월 10일자 한겨레 등 기사, 전용뷰어,인물한국사-나혜석. 인터넷 사설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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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14
  • 저작시기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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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90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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