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답사보고서 - 김유정 문학관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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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인답사보고서 - 김유정 문학관을 다녀와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춘문예 당선작인 「소나기」는 노름빚 때문에 돈을 구하기 위해 아내를 모양내어 이 주사에게 보내는 춘호를 그림으로써, 가난한 현실 속에서 비리의 구렁으로 떨어지는 농촌 사회의 현실적 모순과 도착(倒錯)된 인간상을 풍자했다.
「봄 봄」은<점순이>라는 주인집 딸에게 장가들려고 품삯 하나 받지 않고 일하는 <나>라는 한 머슴의 얘기인데, 마름의 횡포 앞에 자신을 내맡긴 채 노동과 인신의 반매매적인 정략적인 것을 묘사함으로써 약자를 기만하는 지식과 법률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유린당하는가 하는 것을 풍자해 놓은 작품이다.
『---번이 마름이란 욕 잘하고 사람 잘치고 그리고 생김 생기길 호박개 같애야 쓰는 거지만 장인님은 외양이 똑 됐다. 작인이 닭 마리나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 때 품을 좀 안 준다든가 하면 그해 가을에는 영낙 없이 땅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돈도 먹이고 술도 먹이고 안달재신으로 돌아치든 놈이 그 땅을 슬쩍 돌아 안는다. 이 바람에 장인님 집 외양간에는 눈깔 커다란 황소 한놈이 절로 엉금엉금 기여들고 동리사람은 그 욕을 다 먹어가면서도 그래도 굽신 굽신 하는게 아닌가---봄·봄 중에서, 원본 김유정 전집. 1987 』
소설 \'봄·봄\'에는 읍내 사는 배참봉댁 마름인 봉필영감이 등장한다. 그리고 \'봄·봄\'과 \'동백꽃\' 이 외의 작품에서도 마름과 소작인의 관계가 드러난다. 지주는 토지 소유자로 농지가 없는 소작농민에게 토지를 빌려주고,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마름을 시켜 소작 농민을 감독하고, 소작료를 징수했다. 그런 과정에서 마름은 소작농민을 노예처럼 함부로 다루었고, 지주와는 별개로 수탈을 하기도 했다. 당시 지주는 수리조합비·비료대 등의 각종 부담까지 소작농민에게 전가하여 80%의 소작료를 수탈하였다. 소작료 이외에 노력봉사·경조사 비용 등 각종 명목을 소작농민에게 부담시켰다. 소작농민은 지주에게 신분적,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노예나 다름없었다. 이에 따라 조선인 빈농 약 29만 9천명이 토지를 상실하고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관념적 피상적 농촌소설과 달리 김유정은 실감나는 농촌소설을 썼다. 그것은 체험과 관계가 깊다. 그는 서민적인 것을 좋아했다. 또 소박하면서도 황소고집이었다. 그것은 산골에서 직접 살며 농촌 분위기를 가까이 접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유정 시대의 가난한 농촌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음은 「금 따는 콩밭」의 예를 보자. 이 「금 따는 콩밭」에서 수재의 꾐에 빠진 영식은 일확천금에 눈이 어두운 아내의 충동질에 편승하여 콩밭을 망치게 된다. 여기서 김유정은 \"인간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이 사행심(射倖心)이 얼마나 어리석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파멸의 구덩이로 떨어뜨리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무지와 사행심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무지와 빈곤을 풍자한 것으로는 또 「땡볕」이 있다. 아내의 생명이 위험한 데도 오히려 병원에 입원하면 월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덕순의 행동은 무지와 우직 바로 그것이며, 그것을 유정은 풍자하고 있다. 위의 몇 작품들에서 보듯이, 그의 작품세계는 1930년대 궁핍한 농촌의 실상과 함께 농민·서민들의 어려움을 묘사함으로써 끈질기게 인간다움을 추구했고, 나아가 \"부조리한 인간의 속물주의(俗物主義)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으로 충만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유정에 있어서의 풍자는 이상의 소설이나 김기림의 시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날카로운 감각성은 없지만 오히려 유현 (幽玄)한 가운데 꼬집는 그윽함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유정의 풍자는 \"암시적이고 해학을 지니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그 풍자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독서를 요구\"하게 하고, 또한 풍자의 기법을 표면에서 숨기는 독특한 스타일을 구사함으로써 이것이 김유정 작품에 나타난 풍자성의 한 특징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Ⅲ. 결론
김유정 문학관을 돌아 보고 나서....
‘김유정’이라고 하면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우기 때문에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그냥 어렴풋이 ‘아, 그사람’하면서 「봄봄」이나 「동백꽃」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춘천에 가서 김유정의 생가와 문학관을 둘러보고 소설 속에 나오는 배경과 인물들에 대해서 들어보니 그 동안 알고 있던 김유정이라는 인물이 나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듯 했다. 마을에서 저 멀리 눈에 보이는 곳까지 김유정 집안의 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 지주계급 출신이자 인텔리였다. 그러나 유정은 문학으로 자신의 신분을 하강시키며 농촌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하고자 했다. 실제 그는 그의 고향 금병산 아래에 ‘금병의숙’이라는 야학을 세워 자신의 지식을 농촌에 나누고자 했으며 금병의숙은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마을 공동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농촌에서 민중들과 어울려 살면서 농촌의 삶을 직접 겪어본 유정이기에 그의 작품의 언어들이 정겹고 사랑스러운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3~6월에 김유정 문학제가 있다고 한다. 꼭 한번 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폐결핵과 치질로 고생을 하던 김유정이 세상을 떠나기 7일전에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필승(안희남)에게 썼다는 편지이다. 편지 내용을 보면... 몸이 너무 쇠약하여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태이나 꼭 살고 싶다. 몸을 보양하기 위하여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을 모으기 위해서 외국소설을 번역해서 보낼 터이니 그것으로 돈을 마련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이 편지를 보내고 7일후에 김유정은 29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편지을 읽고 마음이 짠하였다. 내 마음속에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요절한 문인이 또 한명 늘어났다. 내가 소녀시절부터 너무나 좋아하던, 일제 강점기에 항일운동 혐의로 끌려가 일본의 마루타로 희생되어 이국땅 교도소에서 28세의 꽃다운 나이로 운명을 달리했던 비운의 윤동주시인..늘 그이 시를 생각할 때 마다 콧날이 찡하곤 했었는데, 오늘 김유정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 또 한번 가슴이 싸하고 콧날이 시큰해 졌다.
아~! 이 젊은이들이 좋은 시절, 좋은 시대를 만났었다면...어쩌면 우리나라 문학의 큰 기둥들이 되었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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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14
  • 저작시기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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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9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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