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박해 - 왕만 바뀌면 재개되는 천주교 박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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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해박해 - 왕만 바뀌면 재개되는 천주교 박해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간의 첨예한 분기점이 되었다. 즉 제사거부 문제는 박해 초기부터 일관되게 박해의 근본원인이 된 것 이다. 최재건, 조선후기 서학의 수용과 발전, (서울 : 한들출판사, 2005), 301-302요약.
다음으로 서학서들은 조선조 통치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군주는 백성의 부모요 군신간의 의리는 절대적이고 불변한다는 육 윤리상의 절대적인 군주관에 도전하게 됨으로 박해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최재건, 조선후기 서학의 수용과 발전, (서울 : 한들출판사, 2005), 307-308요약.
또 한 천주교에서 통치자인 교황이 결혼 하지 않으므로 세습되지 않고 선택된 다는 것 또한 이질감을 가져다준다.
마지막으로 남녀관계에 있어서 교회는 자유 결혼을 허용했고 당사자가 원치 않으면 강제 적으로 하는 결혼을 금지시켰다. 신앙인들끼리의 자유결혼과 함께 기존 통혼제도를 거부했고 유교적 가족제도를 부정했다. 이로써 신분관계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인격이 있다고 인정하고 평등의 개념을 선보였다. 그들의 평등사상은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된 것 이다.
◆ 결론
기해박해가 단순히 조선의 전통의 사상적인 문제의 부딪힘 때문에 일어난 천주교의 박해 사건일 것이라고 추측만 했었는데 그 이면에 배경적으로 깔린 정치, 사회, 역사적인 이유들조사 해본 결과 결국에 기해박해는 풍양 조씨계와 안동김씨계의 세력다툼이 주된 원인이었다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의 세도정치 즉 소수의 귀족가문이 상호 연대하여 실권을 장악하여 이로 인해서 천주교가 어려움을 입게되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다 준 것이다. 기해박해가 천주교를 근절하기 위해 자행된 대학살의 참극이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조씨 일파의 말로는 비참하게 마감되었으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박해를 전후로 하여 개종을 한 새 교인들이 생겨났고 그 이유는 박해속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는 순교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것 이었다. 조씨 일파가 안동김씨가문의 숨통을 죽이려고 했던 방책 중 하나였지만 오히려 그의 덫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고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어버린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 참고문헌
강준만, 한국근대사산책, (서울 : 인물과 사상사, 2007).
유홍열, 한국천주교회사, (서울 : 가톨릭출판사, 1962).
최재건, 조선후기 서학의 수용과 발전, (서울 : 한들출판사, 2005).
홍연주, 己亥敎難 관련 자료 연구, (교회사연구 제2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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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14
  • 저작시기201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9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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