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 김동리의 문학세계 연구 - 작가 소개 김동리의 문학 세계 작가의 작품 순수문학의 진의와 휴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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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문학] 김동리의 문학세계 연구 - 작가 소개 김동리의 문학 세계 작가의 작품 순수문학의 진의와 휴머니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작가 소개
2. 김동리의 문학 세계

3. 김동리 작가의 작품

4. 김동리의 순수문학의 진의와 휴머니즘

본문내용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려고 했다. 김동리가 이성과 영혼이 단절되어 있지 않은 세계를 원시 종교의 모태인 이러한 토속적 샤머니즘과 같은 민간 신앙에서 찾은 것은 그것대로의 박진감이 있는 커다란 문학적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레비브륄이 지적한 것처럼 \'샤먼\'과 같은 원시인들은 정신적인 지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영혼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는 자연적인 현상과 초자연적인 현상 사이에 아무런 논리적 상응 관계가 필요치 않다. 그들은 현실에 대한 두 가지 질서, 즉 물질과 정신이 서로 접촉하며 삼투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하나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해한다. 그러면 <무녀도>와 <을화>의 경우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무녀도>에서 모화는 \'샤머니즘\'의 얼굴인 무당이다. 그녀는 두 사람의 다른 사내들로부터 \'욱이\'라는 아들과 \'낭이\'라는 딸을 두고 있다. 그런데 어릴 때 집을 나가 평양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고 돌아온 \'하느님\'을 믿는 \'욱이\'가 영원한 생명의 바다인 \'수국 용신님\'을 믿는 어머니 모화의 신앙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예수신\'을 쫓기 위하여 식칼로 굿을 벌이다 접신을 한 끝에 자기 자신도 모르게 아들 \'욱이\'의 가슴을 찌르게까지 된다. 그러나 우리들의 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이 작품에서 모화가 강물에 몸을 던진 어느 읍내 부잣집 며느리를 위한 굿을 하는 장면이다. 모화는 김씨 부인이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물에 빠져 죽을 때까지의 사연을 한참씩 넋두리하다가는 화랑이들의 장고, 피리, 해금에 맞추어 춤을 덩실거렸다. 그녀의 음성은 언제보다도 더 구슬펐고 몸뚱이는 뼈도 살도 없는 율동으로 화한 듯 너울거렸고……취한 양 얼이 빠진 양 구경하는 여인들의 숨결은 모화의 쾌자자락 따라 오르내렸다. 모화의 쾌자자락은 모화의 숨결을 따라 나부끼는 듯했고, 모화의 숨결은 한 많은 김씨 부인의 혼령을 받아 청승에 자지러진 채, 비밀을 품고 조용히 굽어 돌아 흐르는 강물(얘기 속의)과 함께 자리를 옮겨가는 하늘의 별들을 삼킨 듯했다.
여기서 모화가 \'김씨 부인\'의 혼령을 받기 위해 마술적인 묘기로 춤을 추는 것은 인간의 경험 가운데서 느끼는 황홀경이 접신의 길로 열리는 신적인 도취와 같은 것이다. 또 밤중이 되어서 혼백을 못 건져서 모화가 \'수국 용신님\'이 사는 물속으로 몸을 완전히 잠겨 버리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또한 칼 날 위에서 춤을 추듯 인간이 자신이 처해 있는 실존적 상황과 극한적으로 대결함으로부터 오는 희열, 즉 접신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을화\'의 경우도 \'모화\'의 경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또 모화와 을화가 신과 접촉할 수 있는 무당이지만 생명을 창조하고 그 흐름을 연결 짓는 모성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모화는 \'수국 용신님\'의 딸은 물론 \'하느님\'의 사자가 되는 \'욱이\'를 낳았고, \'을화\'는 월회와 영술을 각각 다른 사내들 사이에서 낳았다.
모화와 을화는 표면적으로 볼 때 성적으로는 문란하게 보이지만, 상징적으로 볼 때 그것은 무당이 불타는 생명의 바다와 연결되어 있고 또 생명을 창조하는 모성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다.
한편 김동리가 기독교와 불교를 상징체계로 사용했을 때도 언제나 그것은 인간 가운데 신의 발견을 중심으로 했었다. 그래서 그는 <사반의 십자가>에서 인간 의식 가운데, 즉 생명 가운데서 인간을 구원하는 단서를 찾아보려고 했다. \'사반\'이 육체를 상징하는 동굴 속에서 암별과 숫별을 만나는 날까지 수련을 해야 한다든지, 그리고 예수의 이적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차원에다 두려고 했다. 즉 <사반의 십자가>에서 작가는 <무녀도>에서처럼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대결시키면서 이적의 현상을 천상의 신이 아닌 인간적인 생명의 차원에서 수용하려고 했다. 그래서 <무녀도>에 나타난 \'기독교가 서양의 그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김병익의 분석은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 그가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사용했을 때 역시 이러한 그의 견해에는 변함이 없었다. <등신불>에서 \'만적이\'가 부처님이 된 것은 해탈과 미소로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정연하고 단아하게 석대를 쌓고 추녀와 현판에 금물을 입힌 금불각 속에 안치되어 있음직한 아름답고 거룩하고 존엄성 있는, 그러한 불상과는 하늘과 땅 사이라고 할까. 너무도 거리가 먼, 어이가 없는, 허리도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머리 위에 조그만 향로를 얹은 채 우는 듯한,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그러면서도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꽉 움켜잡는 듯한, 일찍이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그러한 가부좌상이었다.
이와 같이 김동리는 신과 접촉하고 신과 통할 수 있는 사제로 행동하고 있는 모화와 을화, <등신불>의 만적, 그리고 예수마저도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인간 가운데 있는 영혼과 결부시켜 생각한 것이지, 지상의 현세를 떠나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인간, 즉 \'생명\'이란 개념은 이성을 중심으로 한 서양 정신의 의식 세계와 예지와 직관을 중심으로 한 동양적인 무아의 세계 내지 무의식의 세계를 복합한 완전하고 건전한 총체적인 인간 정신의 세계를 말한다. 그래서 그의 문학인 \'자유로운 개성, 존경받는 인간성\'의 탐구를 목적으로 한 것은 기계적인 유물사관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세계를 창조적으로 융합하고 포괄한 유기적인 사관이다. <무녀도>와 <을화>의 비극은 결국 동서 정신의 창조적인 수용보다는 상호간의 단절을 주장한 데서 온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김동리가 일생을 두고 추구해 왔던 주제는 김병익이 말한 \'생명감과 조화 있는 인간\', 즉 생명의 조화 있는 형성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개성의 자유와, 이것을 위해 무엇보다 분열되지 않는 건전하고 총체적인 인간성을 옹호하는 데 그 역점을 두고 있다.
우리들이 김동리 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공간적 그리고 시간적 한계를 초월한 \'생명주의\'를 강조하고, 황폐한 현대 문명 가운데서 퇴색되어 가는 인간 가치를 회복하려난 처절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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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19.03.14
  • 저작시기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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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90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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